슈만 피아노 4중주 E플랫장조(Schumann,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47)
라라와복래2014. 11. 5. 09:33
Schumann,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47
슈만 피아노 4중주 E플랫장조
Robert Schumann
1810-1856
ATOS Trio
Annette von Hehn, violin
Thomas Hoppe, piano
Stefan Heinemeyer, cello
Isabel Charisius, viola (guest)
Heimathafen Neukölln, Berlin
2015.04.17
ATOS Trio & Isabel Charisius(Va.) - Schumann,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47
1840년 가을, 슈만은 오랜 법정 투쟁 끝에 필생의 연인 클라라와 결혼한다. 이 사건은 그의 창작 인생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기도 했는데, 이전까지 거의 피아노 음악만을 써 왔던 그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장르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우선 그해 120여 곡에 달하는 가곡들이 집중적으로 작곡되었고, 이듬해에는 두 편의 교향곡을 비롯한 관현악곡들이 나왔다. 그래서 1840년을 슈만의 '노래의 해', 1841년을 '교향곡의 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일련의 실내악곡들이 탄생한 1842년은 '실내악의 해'로 불린다. 그해 여름, 슈만은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들을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세 편의 현악 4중주곡을 잇달아 완성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자신의 본령인 피아노를 활용한 곡을 쓰기 시작해서 피아노 5중주곡과 피아노 4중주곡을 잇달아 완성한다.
이 가운데 피아노 4중주곡(Op.47)은 바로 앞서 완성된 피아노 5중주곡(Op.44)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 심지어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조차 5중주곡은 완성 직후부터 연주하기 시작하여 평생 동안 남편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자주 무대에 올렸으나, 이 4중주곡은 완성 후 7년이 지나서야 대중 앞에서 처음 연주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슈만 자신은 이 4중주곡에 대해서 “매우 매력적이며, 5중주곡보다 더 감동적”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피아노 4중주 장르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이 곡이 작곡될 때만 하더라도 (오늘날과는 달리) 피아노 4중주가 피아노 5중주보다 일반적인 장르였지만, 다분히 실용적이거나 유희적인 용도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슈만은 이 장르에 사뭇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여 모차르트 이후 단연 돋보이는 수확을 거두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업적은 그의 멘티였던 요하네스 브람스에게로 계승되었다.
영화 <클라라> 중 한 장면. 좌로부터 클라라, 브람스, 슈만
피아노 5중주곡의 자매작
이미 언급했듯이 이 4중주곡은 5중주곡을 완성한 직후에 작곡되었다. 피아노 5중주곡이 완성된 것인 1842년 10월 16일이었고, 이 곡의 스케치가 시작된 것은 10월 24일이었다. 스케치는 10월 30일에 마무리되었고, 전곡의 악보는 11월 26일에 완성되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5중주곡을 쓰는 동안 떠올랐던 다른 방향의 아이디어들이 이 곡에 투입되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슈만은 이 곡을 5중주곡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썼는데, 일단 전반적으로 한결 경쾌한 성향을 띠는 것은 5중주곡에 비해 4중주곡이 가지는 텍스처의 두께와 무게가 경감된 데 기인한다 하겠다. 이것은 또한 이 곡에 사용된 네 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사이에 보다 고른 균형을 가져와 악상이 보다 미묘하고 정제된 형태로 다듬어진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중간 두 악장의 순서가 5중주곡의 느린 악장 - 스케르초 악장에서 스케르초 악장 – 느린 악장으로 변경된 부분도 눈에 띄는데, 이 가운데 더없이 매혹적인 안단테 칸타빌레 악장의 주제는 슈만이 남긴 가장 감성적인 선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악장: 소스테누토 아사이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E플랫장조 4/4박자 - E플랫장조 2/2박자. 느린 서주로 시작되는데, 현악기들이 오르간의 울림을 연상시키는 그윽하고 신비로운 화음을 펼쳐 놓으면 피아노가 그에 응답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주제를 암시한다. 이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를 떠올리게 하는 수법으로, 슈만이 이 곡 이전에 현악 4중주를 쓰기 위해 쌓았던 수련의 여파로 볼 수 있겠다.
주부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일신되어 음악은 갑자기 경쾌한 흐름을 타게 되는데, 먼저 현과 피아노의 힘차고 명쾌한 화음 연주에 이어 피아노와 첼로로 연결되는 제1주제를 꺼내 놓는다. 이어서 첼로가 표정 풍부한 선율을 노래하고, 계속해서 피아노의 마르카토 상승 음계로 출발하는 제2주제가 나온다. 이 g단조 주제는 카논 풍으로 다루어지며, 발전부로 넘어가기 전에 서주의 소스테누토 흐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지며, 재현부에서는 제시부에 비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재현부 말미에서 다시금 오르간 풍 울림과 코랄 풍 진행이 나타나고, 마지막은 힘차고 명쾌한 울림으로 마무리된다.
2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B플랫장조 3/4박자. 두 개의 트리오를 가진 스케르초 악장. 어딘지 장난스럽기도, 수수께끼 같기도 한 스케르초에서는 피아노와 첼로에서 8분 음표들이 끊임없이 스타카토로 연결된 주제가 나타나 카논 풍 진행을 보이며, 중간에 스쳐 지나가듯 삽입된 두 개의 트리오는 부드럽고 소박한 가곡 풍의 흐름을 지닌다. 특히 싱커페이션이 가미된 화음 진행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트리오는 전형적인 슈만 풍이다.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B플랫장조 3/4박자. 이 서정적인 느린 악장은 그야말로 ‘슈만적 낭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슬프도록 감미로운 주제 선율은 처음에 첼로에서 흘러나와 그윽하게 노래되고, 다음에는 바이올린으로 옮겨 가 첼로 선율과 카논 풍으로 어우러지며 우아하기 그지없는 2중주를 이룬다. 피아노의 영롱한 탄주가 이어지고, 중간부에서는 G플랫장조의 새로운 선율이 흘러나와 한층 깊이 있는 음률로 파고든다.
이제 비올라가 처음의 주제 선율을 노래하고 바이올린이 그것을 매혹적으로 장식한다. 계속해서 주제는 세 악기에 의해 3중창처럼 노래되고, 다시 첼로로 한 번 더 노래된다. 도입부와 종결부마저 매우 인상적인 이 악장은 마치 행복과 우울,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듯한데, 이야말로 슈만 특유의 양가적 감수성을 온전히 담아낸 곡이라 하겠다.
4악장: 비바체
E플랫장조, 3/4박자. 활기와 열정이 넘치는 피날레 악장으로, 슈만이 바흐를 연구하면서 쌓은 대위법 수련의 성과가 다시 한 번 자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의 유니슨으로 제시된 제1주제는 곧바로 비올라-피아노-바이올린의 순으로 이어지는 푸가토가 되며, 발전부와 종결부에서는 제1주제에 의한 스트레타(푸가 등에서 어떤 성부의 주제 가락이 끝나기 전에 다른 성부를 겹쳐 나타내어 긴박감을 자아내는 수법)도 나타난다.
아울러 이 악장의 주제들은 앞선 악장에 나왔던 소재들과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는데, 우선 제1주제 첫머리의 움직임은 스케르초 악장의 두 번째 트리오 내지 앞선 악장의 코다에서 암시되었던 것이다. 또 제시부에서 제1주제에 의한 푸가토가 마무리되면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c단조 제2주제는 느린 악장에 등장하는 변주들 가운데 하나와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 이 악장은 고도의 음악적 기법을 향한 슈만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이루어낸 즐거움과 여유로 가득하다. 다시 말해 앞서의 느린 악장에서 그의 감성이 부각된다면, 이 악장에서는 그의 지적 유희가 두드러진다고 해야겠다.
Notos Quartett - Schumann,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47
Sindri Lederer, violin
Andrea Burger, viola
Philip Graham, cello
Antonia Köster, piano
Madrid Auditorio Sony
2015.10.16
추천음반
1. 플로레스탄 트리오, 토머스 리블(비올라), Hyperion, CD
2, 도라 슈바르츠베르크(바이올린), 노부코 이마이(비올라), 나탈리 구트만(첼로), 알렉산더 라비노비치(피아노), Warner/EMI, CD
3. 게반트하우스 콰르텟, 페터 뢰젤(피아노), Berlin Classics, CD
4. 보자르 트리오, 새뮤얼 로즈(피아노), Decca/Philips, CD
5. 바릴리 콰르텟, 외르크 데무스(피아노), Westminster, CD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