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논어 명언명구] 눌언민행(訥言敏行) - 말은 느리게 행동은 재빠르게

라라와복래 2015. 1. 27. 09:45

[논어 명언명구]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느리게 행동은 재빠르게

세상의 많은 분쟁은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공자는 말의 속도를 조절하여 허풍쟁이가 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지키지 못할 말은 아예 하지를 마라.” “뱉은 말에는 책임을 지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다.” 흔히들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바라지만, 그 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그래서 약속, 계약, 조약, 규약 등과 같이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규제 장치가 많다. 말대로만 되었다면 이 세상은 싸움이 없는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각종 약속에 담긴 말(글)이 실현되었다면 현실의 문제가 거의 대부분 해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을 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온갖 말썽이 생긴다.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전에 말로 인한 다툼이 생겨나기도 한다. 분명 말을 할 때는 “행동을 하겠다”라고 약속을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래된 의문이 생기게 된다. “사람은 왜 무엇을 한다고 말하고서 말한 그대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공자는 사람들이 행동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는 말의 속도를 돌아보면 말과 행동이 하나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논어 리인(里仁)편 24장

— 90번째 원문

군(君)은 임금, 치자의 뜻이다. 욕(欲)은 무엇을 하려고 하다, 바라다, 욕망의 뜻인데, 여기서 눌(訥)과 민(敏)하려고 한다의 맥락으로 쓰이고 있다. 눌(訥)은 듣는 사람을 힘들게 할 정도로 말이 느리다, 말을 더듬거린다는 뜻이다. 이 눌(訥)은 다음에 나오는 민(敏)과 반대된다. 민(敏)은 빠르다, 애쓰다, 영리하다의 뜻이다. 두 단어의 의미가 선명하지 않으면 눌(訥)은 나무늘보를, 민(敏)은 우사인 볼트를 연상하면 좋다. 어(於)는 뜻이 없고 영어의 전치사처럼 목적어와 함께 쓰인다. 언(言)은 말하다, 말의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 명사로 기능한다. 행(行)은 가다, 걷다, 행하다, 행위의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 명사로 기능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의 진정한 의미

군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다스리는 사람의 뜻으로 임금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대인배’와 비슷하게 도량이 넓고 관대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공자는 군자가 후자의 의미로 쓰이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공자 이전에 ‘군자’는 세습으로 부여된 권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하지만 공자 당대에 주나라 경왕(敬王)과 노나라 소공(昭公)처럼 지위는 군자이지만 군자답지 못한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 실패한 지도자는 개인적으로는 불행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재앙과 같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일으켰다. 무절제한 사치, 과도한 세금, 통제력 없는 감정 표현, 비합리적 의사 결정 등으로 인해 공동체는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공자는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남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수기안인(修己安人)으로 표현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수기치인’이 뭘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신분제 사회를 살면서 당시 집권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려면 먼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라!”고 정면으로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강이 없는 곳에 다리를 놓겠다”는 식으로 허풍을 떨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식으로 입을 닦는 사람을 많이 본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쟁이이자 허풍쟁이이며 공자의 말로 하면 ‘수기치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자는 ‘수기치인’이 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르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던 것이다. 즉 군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상가는 기존에 쓰이던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생명을 창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서양철학에서도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근대의 칸트, 현대의 하이데거와 니체 모두 시대에 쓰이던 말을 갈고 닦아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낸 사상가들이다.

언행(言行)의 불일치는 왜 일어나는가?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고, 일치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사람을 둘러싼 상황은 그때그때 달라지기 쉽다. 말할 때랑 말하고서 시간이 지난 때랑 상황이 달라지면 이전에 했던 말을 꼭 지켜야 할까라는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말할 때는 “꼭 해야 한다”고 맹세했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이 달라지다보니 “꼭 하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단 약속을 했으니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다보니 언행의 불일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둘째, 말(글)은 몸과 마음의 일부가 관여하지만 행동은 몸과 마음의 전부가 관여해야 한다. 말만 할 때는 앞으로 할 일이 쉬워 보였지만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 덜컹 겁도 나고 불안해지게 된다. 아침마다 운동을 해야지 결심했다가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라는 예보를 들으면 집밖을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은 심신 전부가 움직여야 해서 말대로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셋째, 말은 주로 화자의 처지를 중심으로 고려하지만 행동은 화자만이 아니라 주위의 숱한 사람들과 관련이 된다. 친구끼리 여행을 가는 경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처음에 간다고 했던 친구들이 나중에 못가겠다고 한다. 말은 주로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행동은 생각과 현실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행동은 말과 달리 그만큼 변수가 많으니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허풍쟁이가 되지 않으려고 했던 자로

<논어>에는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많은 제자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말과 행동의 관계에 대해 자로(子路)만큼 예민한 사람이 없었다. 자로는 수업에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실생활에서 100퍼센트 실천하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일단 약속을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는 버릇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자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앎과 행동도 합일하려고 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로도 사람인 한 늘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지킬 수만은 없었다. <논어>에 보면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자로는 약속하면 그 말을 묵히지 않았다.”(안연顔淵편) 즉 자로는 한번 하겠다고 다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과 신뢰를 갖춘 사람인 셈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약속을 하면 그 말을 묵히지 않았다.

그런 자로에게 걱정거리가 있었다. “자로는 누구로부터 좋은 말을 듣고서 아직 실천하지 않았을 경우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까봐 두려워했다.”(공야장公冶長편) 사실 좋은 말은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좋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은 사람이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로가 완벽한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는 좋을 말을 듣거나 올바른 사실을 알게 되면,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갖고 있지 않고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분투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쓴다면

공자가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걱정하고 둘의 일치를 강조한 데에는 당시 또 다른 사회적 맥락이 있었다. 공자는 “말이 곧 행동이다”라고 생각해 왔다. 예컨대 결혼식에서 신부와 신랑이 “상대를 배려하며 살겠다”라고 서약할 경우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말한 그 순간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는 학업에 열중하겠다고 해 놓고 혼자 낮잠을 잤다. 낮잠을 가지고 시비를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낮잠이 의욕상실의 기호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자는 재여가 말과 달리 행동하자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나는 처음에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동하리라 믿었지만 이제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봐야겠다!”(공야장公冶長편) 공자의 제자 자로는 언행일치를 생명처럼 여겼지만 재여는 말을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재여는 학업에 열중하겠다고 말해 놓고선 낮잠을 자는 등 말과 다른 행동을 보였다.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은 ‘통달[달(達)]’ 개념을 ‘인기[문(聞)]’의 뜻으로 자의적으로 풀이했다. 이치를 환히 꿰뚫어서 잘 아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리게 된다. 누군가 그 사람을 찾아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대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이치를 꿰뚫은 결과로 인해 생기는 부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자장은 대중의 인기에 더 주목하여 달(達)을 문(聞)의 뜻으로 혼동했던 것이다.(안연顔淵편)

공자는 제자들의 언행을 통해 ‘언어 혼란’의 징후를 읽어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쓰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두 사람은 말을 하고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된다. 공자는 언어의 위기가 언어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 규범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공자는 행동과 분리되는 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말을 목격하고서 다시금 언행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장은 달(達)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언행일치의 미덕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람 사이의 믿음이 무너지게 된다. 말로 약속을 하면 얼마 뒤에 그대로 되리라고 믿는다. “내일 5시에 명동에서 만나자”라고 하면, 상대가 그날 그 자리에 나오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놓고 그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다음에 그 사람이 약속을 한다고 해도 그 약속을 지키리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은 당선되기 위해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공약(公約)으로 내건다. 국회의원, 대통령, 교육감의 선거를 치르고 나면 공약을 지키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별다른 해명과 사과 없이 공약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되면 유권자들은 정치를 불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으레 “정치인은 거짓말쟁이다”라며 혀를 차며 넘어가버린다.

공자는 언행일치를 위해 말과 행동의 속도를 점검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말은 원래 빠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도를 늦추고, 행동은 원래 느린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말은 실행이 준비된 뒤에야 말하게 되고, 행동은 말에 이어서 일어나게 된다. 말과 행동의 시차가 없으니 둘이 어긋날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감동과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오랜 인종의 갈등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과거에 있었던 인종 차별의 진상을 정확하게 조사하여 그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 재발을 막고자 했다.

만델라는 인종의 차별이 편견에 불과할 뿐 그 어떠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부색이나 배경, 종교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인종 차별을 위한 움직임이 한 번의 시도로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 숱한 실패와 곤경을 겪었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종 차별을 비판하고 긍정적 변화를 역설하는 만델라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말보다 감동을 준다. 만델라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종 차별을 비판하고 긍정적 변화를 역설한 만델라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만델라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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