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논어 명언명구] 임사이구(臨事而懼) - 어떤 일도 만만하게 보지 마라

라라와복래 2015. 2. 9. 07:46

[논어 명언명구]

임사이구(臨事而懼)

어떤 일도 만만하게 보지 마라

공자는 매사 일을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처음에 웹툰으로 연재되었다가 드라마가 되면서 <미생>은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대개 기업 드라마가 업무보다 연애 이야기를 주로 다루지만 <미생>은 계약직과 정규직 등 직장 세계의 생생한 민낯을 그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드라마 속 장그래는 초반에 ‘이면지 사건’으로 곤혹을 치fms다. 이면지에 영수증을 붙이던 장그래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인턴 동료가 풀을 빌리러 왔다 풀이 묻은 이면지를 그대로 달고 나가 회사 로비에 떨어뜨린다. 회사에서 생산한 문건은 기밀 보안 때문에 파쇄가 원칙인데 본의 아니게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장그래의 상사 오과장이 나중에 이면지 사건이 장그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과장과 장그래는 화해하게 된다. 이면지 처리는 업무 난이도로 따지자면 0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일도 순간 방심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된다. 일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일을 만만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공자는 일을 먼저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사소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도 줄어들고, 기존에 해결하지 못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 11장

— 162번째 원문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이 지휘관으로 전군을 통솔한다면 누구랑 함께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으려다 물려 죽거나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허무하게 빠져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과 나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

반드시 할 일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고

미리 꾀(계획)를 내서 일을 잘 하려는

이와 함께할 것이다.“

자로(子路)는 자(字, 성인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고 본명은 중유(仲由)이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에 가장 연장자로 공자와 나이 차이가 9살밖에 나지 않았다. 자로는 직선적인 성격으로 공자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로는 위(衛)나라의 내분에 휩싸여 공자보다 일찍 죽음을 당했다. 자로의 시신으로 젓갈을 담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공자는 집안의 젓갈을 모두 내다버렸다고 한다.

행(行)은 다니다, 움직이다, 실행하다의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 운용하다, 지휘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오늘날 삼군(三軍) 하면 육군ㆍ해군ㆍ공군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는 육군이 주력이고 수군이 보조 전력으로 쓰였으며, 삼군은 상군(上軍)ㆍ중군(中軍)ㆍ하군(下軍)이나 좌익(左翼)ㆍ중군ㆍ우익(右翼)처럼 군대의 편제를 가리켰다. 여기서 삼군은 군자의 편제나 대군(大軍)처럼 엄청 많은 군사를 말한다. 수(誰)는 누구를 뜻하는 의문 부사이다. 여(與)는 이 문장에서 동사로 함께하다, 참여하다, 돕다의 뜻으로 쓰였으며, 의문형 문장의 마지막에 허사로 쓰이기도 하고, 명사로 무리, 한패, 집권당의 쓰이기도 한다.

暴은 갑자기, 사납다, 해치다의 뜻으로 쓰일 때 폭우(暴雨)나 폭행(暴行), 횡포(橫暴)나 포악(暴惡)처럼 ‘폭’과 ‘포’ 두 가지로 읽지만, 폭서(暴書)나 폭로(暴露)처럼 햇빛을 쬐이다, 드러내다의 뜻으로 쓰일 때 ‘폭’으로만 읽는다. 여기서는 무기를 갖추지 않고 맨손으로 싸우다는 뜻으로 포로 읽는다. 馮은 사람의 성을 나타내면 ‘풍’으로 읽고, 타다, 오르다의 뜻이면 ‘빙’으로 읽는다. 여기서 馮은 후자의 뜻으로 배를 타지 않고 강을 헤엄쳐서 건넌다는 맥락이다. 하(河)는 강(江)과 함께 큰 물줄기를 나타낸다. 하(河)와 강(江)은 일반명사로도 쓰이지만 하는 황하(黃河), 강은 장강(長江)의 약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회(悔)는 뉘우치다, 후회의 뜻이다. 임(臨)은 임하다, 닥치다, 내려다보다의 뜻이다. 구(懼)는 두려워하다, 두려움, 위태로워하다의 뜻이다. 모(謀)는 꾀하다, 헤아리다, 꾀, 책략의 뜻이다.

시교(詩敎), 시에 담긴 진리 찾기 놀이

포호빙하(暴虎馮河)는 공자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시경(詩經)> 소아(小雅)편 소민(小旻)에 나오는 구절을 조합한 표현이다.

감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지 못하고, 不敢暴虎

황하를 배 없이 건너지 못한다네. 不敢憑河

사람들은 죽을 수 있는 가까운 일은 알지만, 人知其一

나라가 망하는 먼 일을 알지 못하네. 莫知其他

두려워 벌벌 떨며, 戰戰兢兢

깊은 연못 앞에 이른 듯이 하고, 如臨深淵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如履薄氷

공자는 “불감포호(不敢暴虎), 불감빙하(不敢憑河)”의 시 구절에서 포호(暴虎)와 빙하(憑河)를 한 구절로 묶어서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호랑이를 잡고 황하를 건너려면 반드시 먼저 도구를 갖춰야 한다. 구약성서의 삼손도 아니고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도 아닌 다음에야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를 어떻게 맨손으로 때려잡고, 오늘날 첨단 기기의 도움도 없이 넓고 넓은 황하를 어떻게 맨발로 건널 수 있겠는가? 포호빙하라는 말은 용기는 가상할지 몰라도 실제로 해낼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무모(無謀)한 행동을 나타낸다.

공자만이 아니라 후대 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펼치면서 <시경>의 시를 즐겨 인용한다. 즉 시를 통해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시교(詩敎), 즉 시에 의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만이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시인은 철학자와 함께 진리를 밝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플라톤이 말하듯이 화가는 현실에 있는 사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다.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의 세계를 본뜬 것이다. 화가는 사물의 순수한 진짜 모습이 아니라 진짜를 몇 차례 복사한 모습을 그리는 셈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진짜를 만나거나 드러내지 못하므로 그림은 철학이나 시에 비해서 뒤떨어진다고 보았다. 반면 시와 철학은 언어를 매체로 삼기 때문에 진리와 직접 대면한다고 보았다.

고대 중국에서도 시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진리를 포착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포호빙하는 진리에 이르는 합당한 길을 찾지 않고 성급하게 구는 어리석은 행동을 간명하게 잘 포착했다고 할 수 있다.

자로와 공자의 동상이몽

위의 <논어> 원문에서 사실 자로가 공자에게 다소 무례해 보이는 말을 하게 된 맥락이 있다. 자로가 말하기에 앞서 공자는 안연과 말하면서 다소 자로를 자극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써주면 생각하던 이상을 실행하고, 자신을 내버려두면 자신의 존재를 묻어두면 된다. 오직 나랑 너랑 이럴 수 있겠지!(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공자가 안연을 자신의 정신적 동반자로 인정한 셈이다.

옆에 있던 자로는 공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안연에게 극찬을 하자 오기가 발동했다. 자신은 안연과 다른 측면에서 공자의 정신적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난 자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삼군을 지휘하는 상황이었다. ‘용기’라면 제자 중에 자기를 따라올 사람이 없으므로 공자가 당연히 자신과 함께 삼군을 지휘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는 자로의 기대를 너무나도 차갑게 내쳤다. 냉정하다고 할 정도이다. 삼군의 지휘는 지휘관 한 사람의 승패가 아니라 대군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다. 용기만을 앞세우고 앞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턱대고 “돌격, 앞으로!” 하는 식으로 삼군을 지휘할 수가 없다. 공자는 자로의 마음을 읽었지만 엄중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공자는 때로는 이렇게 냉혹하기도 했다. 아무리 제자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일을 맡아서 그르칠 수 있는 가능성은 잘라내야 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공자는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하고, 엄격할 때는 어떠한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쪽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공자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기획자

공자는 ‘높은 하늘’을 뜻하는 ‘소민(小旻)’이란 시에서 자로와 같이 무모하게 덤비는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표현을 끌어냈다. 이러한 표현을 보면 ‘괜히 공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경>을 평소에 몇 차례 읽었고 자로와 이야기하면서 바로 ‘소민(小旻)’을 떠올렸고 시구 중에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표현을 찾아낸 것이다. <시경>을 통째로 외우고 시의 뜻을 환히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의 놀라운 기억력과 번뜩이는 연상력 그리고 뛰어난 조어 능력을 볼 수 있다. 제자들도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서 그런지 공자와 대화하면서 고전에서 적절한 구절을 찾아내서 스승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자는 <시경>에서 ‘포호빙하(暴虎馮河)’의 새로운 표현을 찾아내서 그 말을 말끝마다 용기를 내세우는 군상에다 연결시켰다. 용기만을 앞세우다 죽으면 명백히 무모한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태에는 ‘포호빙하(暴虎馮河)’의 사람을 죽음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다는 사이무회(死而無悔)의 용사로 풀이했던 것이다. 공자는 그것이 올바른 언행이라고 보지 않았다.

사람이 일하다가 싸우다가 죽을 수는 있다. 이순신이 “꼭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꼭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必生卽死, 必死卽生)”라고 한 말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용기도 개죽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공자는 ‘포호빙하(暴虎馮河)’와 대비되는 말로 일을 하려면 하나하나 대책을 세워서 성사시키려고 노력하려는 ‘호모이성(好謀而成)’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공자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노련한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례를 들자면 공자는 노나라 정공(定公)을 모시고 협곡(夾谷)에서 이웃에 있으면서 자국을 자주 괴롭히는 제나라 경공(景公)과 회담을 하게 되었다. 두 군주의 회동이 끝나자 제나라 측에서 흥을 돋운다며 창칼과 방패를 들고 무대에서 춤을 추려고 했다. 공자는 이런 군무가 군주의 회동에 어울리지 않다며 제지했다. 하지만 다시 또 제나라 측의 광대와 난장이가 무대에 나와 춤을 추려고 했다. 공자는 군주의 신성한 회동을 어지럽히는 자를 처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노나라 측 장수가 춤추려는 자들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제나라 경공은 자신들의 예에 어긋난 행동에 사과하며 이전에 노나라로부터 빼앗았던 영토를 반환했다. 이로써 공자는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일을 보면 공자는 결코 유약한 샌님이 아니라 과단성이 있고 위기의 순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일생을 그린 공자성적도의 ‘협곡회제(夾谷會齊)’. 공자가 노나라의 정공을 모시고, 협곡에서 제나라 임금을 만나 회담하는 장면

왜 일을 두려워해야 할까?

공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일을 두려워해야 할까? 일하고 친해지는 게 좋은 게 아냐?”라는 의구심이 든다. 일과 친해지려고 해야 일을 잘하게 되지, 일을 두려워하면 오히려 긴장을 많이 해서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임사이구(臨事而懼)’와 같은 말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 부분 진리이다. 즉 “일을 두려워하라”는 말은 “일과 친해져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이치를 각각 다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신입이 일을 겁내서 달려들지 못하고 주춤주춤거리면 당연히 “일과 친해져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일을 쉽게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할 경우 “일을 두려워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 일을 두려워해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익숙한 것에 대해 긴장을 하지 않는다. 신발을 갓 샀을 때 신발을 신으면 꽤 신경을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신는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만에 하나라도 실수할까 신경 쓰지만 매너리즘에 빠지면 누워서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나에게 속하지 않았던 것은 익숙해질 뿐이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한 순간의 방심이 큰 일을 낼 수 있다. <미생>의 장그래가 ‘이면지 사건’에 걸려든 것도 “별일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데에 빚어진 일이다. 공자는 일과 관련해서 낯설든 친숙하든 적절한 거리감을 늘 유지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거리감을 유지할 때 매너리즘을 막을 수 있고 실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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