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논어 명언명구] 관즉득중(寬則得衆) - 너그러우면 사람을 얻는다

라라와복래 2015. 2. 7. 07:12

[논어 명언명구]

관즉득중(寬則得衆)

너그러우면 사람을 얻는다

나와 남의 잘못을 칼같이 자를까, 아니면 눈감고 넘어갈까?

원칙과 인정의 갈등 상황에서 공자는 ‘사람’을 우선시했다..

 

“그럴 수 있지? 누가 처음부터 잘하나, 다음에 잘해!”

“아니, 이것도 못해?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전자는 실수를 너그럽게 대하고 있다. 즉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며 기회를 주고 있다. 후자는 실수를 엄격하게 대하고 있다. 즉 실수를 한 사실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당사자의 능력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물론 실수의 횟수와 피해가 상황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너그러워야 한다거나 엄격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무 너그럽게 굴면 규정이 무시될 수 있고, 너무 엄격하게 굴면 사람이 기를 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려운 상황은 너그러움과 엄격함 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이다.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하면 상대가 받아들이지만, 엄격하지 말아야 할 때 엄격하면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대가 견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람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공자는 고민 끝에 ‘엄격함’보다 ‘너그러움’을 앞세우라고 제안하고 있다.

<논어> 양화(陽貨)편 6장

— 457번째 원문

자장이 공자에게 사람다움의 길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하늘 아래에 실행할 수 있다면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자장이 하나씩 자세히 알려달라고 청했다.

공자가 대답했다.

“다섯 가지 덕목이란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재빠름, 나눔이라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지.

너그러우면 사람을 얻게 되지.

믿음이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일을 맡기지.

재빠르면 기회가 올 때 공적을 세우게 되지.

함께 나누면 어려운 일도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할 수 있다네.“

자장(子張)의 본명은 전손사(顓孫師)이다. 자장이란 이름은 성인이 되어 붙여진 새로운 이름, 즉 ‘자(字)’이다. 당시에는 자(字)’가 생기면 태어났을 때 붙여진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자장은 진(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나이가 48세가 적었다.

문(問)은 묻다, 물음의 뜻이다. 보통 제자가 공자에게 질문을 할 때 “제자의 이름+문(問)+질문 내용”이 기본 문형이 된다. 이 경우 “자장문인(子張問仁)”이면 충분하다. 대답할 사람이 ‘공자’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공자를 밝히려고 하면 ‘자(子)’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위의 원문과 같이, <논어> 제18번째의 ‘양화(陽貨)’편은 기본 문형에 ‘어공자(於孔子)’라는 세 글자가 추가되어 있다. 이런 표현 방식은 <논어>의 다른 편들과 차이가 난다. 공자의 권위에 대한 변화, 제자들의 위상 변화 등이 이러한 차이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책에서 같은 사람에 대한 지칭이 다름으로 인해 ‘양화’편을 비롯한 <논어>의 후반부 내용이 자료로서의 신뢰성이 앞부분에 비해 떨어지게 되었다.

천하(天下)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의 뜻으로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데, 세상을 의미한다. 청(請)은 영어 please와 같은 뜻으로 부탁을 할 때, 격식을 차려서 “해주세요”라는 어감을 나타낸다. 공(恭)은 공손하다, 관(寬)은 너그럽다, 신(信)은 믿다, 믿음, 민(敏)은 재빠르다, 영리하다, 혜(惠)는 함께 나누다, 베풀다, 은혜의 뜻으로 쓰인다. 칙/즉(則)은 법, 규칙, 본받다의 뜻으로 쓰이면 ‘칙’으로 읽고, 곧, 가깝다, ~하면 ~하다의 조건절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이면 ‘즉’으로 읽는다.

인(仁), 곧 ‘사람다움’이야말로 공자 사상의 중심이다

인(仁)은 글꼴에서 보이듯 사람 인(人)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仁)은 사람이 둘이 있으면서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덕목을 가리킨다. 간단히 인(仁)은 사람다움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풀이하면 인(仁)은 추상적인 가치이자 덕목으로만 여겨져서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2014년 12월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수퍼 갑질’이라는 말이 급격히 퍼졌다. “어떻게 땅콩 서비스 문제를 가지고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모욕적인 대우를 하고 심지어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할 수 있느냐?”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것은 조 부사장의 행동이 사무장과 승무원을 직원이기 이전에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를 하지 않은 데에 있다.

2014년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처음에 온 나라가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시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가자 금세 보상금과 특례입학 이야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죽은 아이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고 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시민은 공동체의 사안에 대해 누구나 개인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뻔히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자식과 가족을 잃어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해 문제를 제기하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면 합당한 인간적 태도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는 상식 이하의 언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생김새는 버젓한데 하는 언행이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두 사건도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것이고 사람답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고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수기안인(修己安人)에서 사람다움의 길을 찾고자 했다. 인터넷에서 욕설과 비방의 글을 쓰거나 직장에서 성추행과 성희롱의 언행을 일삼거나 업무를 추진할 때 과도하게 개인의 소신을 앞세우며 갈등을 부추기는 등의 언행은 ‘수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안인’과도 거리가 멀다. 공자는 당시 상식 이하의 언행으로 보이는 각종 꼴불견, 막무가내, 수퍼 갑질을 목격하고 그것을 뛰어넘은 ‘사람다움의 세상’, 즉 인(仁)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다움의 요건, 공손과 신뢰

공자는 사람다움의 요건을 모두 다섯 가지로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공손’이다. 공자는 사람이 공손하게 처신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는 ‘신뢰’이다.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면 그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자고 하거나 일감을 건네게 된다.

<논어>의 다른 편을 보면 공자는 교만하거나 건방지게 구는 언행을 삼가라고 했다. 축구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골이다. 간혹 메시 같은 선수가 골키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뒤 수비수를 젖혀 가며 수십 미터 드리블을 해서 골을 넣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축구 경기에서는 공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간 뒤 같은 팀의 선수들끼리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골을 넣게 된다. 전자는 혼자 북치고 장구를 쳤으므로 승리의 결정적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골을 넣은 선수가 공을 세웠지만 그 공은 혼자 해낸 것이 아닌데도 마치 혼자 승패를 결정지은 것처럼 말한다면 ‘공손’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공손하지 않으면 다른 동료나 팬들로부터 자신이 한 것보다 더 많은 공을 자랑하는 것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동시에 사람들부터 ‘믿음’도 잃게 된다. 공을 함께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려고 한다면, 누구라도 같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가 공손을 강조했다고 해서 간과 쓸개까지 빼놓고 행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공자는 “지나친 공손은 예와 어긋난다”는 뜻의 과공비례(過恭非禮)를 경고하고 있다.

사람다움의 요건, 민첩과 나눔

세 번째로 민첩하다는 것은 언제까지 끝내기로 한 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하기만 하면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는데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꾸물꾸물 하는 것과 반대되는 방식을 말한다. 일을 맡으면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한 최대로 빨리 끝내는 것, 그것이 바로 ‘민첩’이다. 누가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싫어하겠는가? 이렇게 민첩하게 하다보면 자연스레 일할 기회를 더 갖게 되고, 일할 기회를 더 갖게 되니 업적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로 자신이 가진 것을 틀어쥐지 않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자신이 돈을 벌고 잘 되는 것도 혼자서 잘한 측면도 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개인의 성공에는 당사자의 기여가 제일 크겠지만 100퍼센트 그 개인의 공로라고만은 할 수 없다. 보통 눈에 보이는 도움이나 남몰래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기에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안다면 성공한 ‘내’가 주위 사람들도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은 도움의 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도움을 준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받지 않아도 ‘따뜻한 손’의 역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받은 것이 많다.

요컨대, 공손하지 않고 교만하게 굴고, 신뢰를 주기보다 불신을 자아내고, 재빠르게 굴기보다 늑장을 부리고, 가진 것이 많으면서 자신의 공로로만 여기고 독차지한다면,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의 거리가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결코 가까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진나라 문공의 패업을 이룬 비밀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풍운의 인물이었다. 제후가 되기 전에 이름은 중이(重耳)였다. 그는 헌공(獻公)의 아들로 공자 신분이었지만 만년에 자신의 소생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부왕의 애첩 여희(驪姬)의 야욕 때문에 19년에 걸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문공은 기나긴 망명 생활에 지쳐 명예의 회복이나 왕위의 등극을 잊고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식견을 넓힌 뒤에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62세에 제후가 되었다. 그는 내정을 수습하고 외교를 강화시킨 뒤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이어서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었다.

문공이 조국으로 돌아오자 망명 다닐 때 재정을 관리하다 몽땅 재물을 훔쳐 달아났던 두수(頭須)가 면담을 요청했다. 두수의 절도로 인해 문공은 망명 시절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그는 평소 두수에게 이를 갈고 있었지만 이제 막 귀국한 시점에 두수를 처벌하기가 부담스러워 면담을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라고 했다. 이때 두수는 “문공이 자신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의 작은 죄를 마음에 담고 있으면 진나라 문공을 두려워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진나라는 헌공에서부터 문공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내분을 겪었던 터라 민심이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문공이 두수의 말을 듣고 그를 용서하자 불안해하던 사람들이 모두 문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좌전(左傳)> 희공 24년) 문공이 너그러운 정치를 펼치자 그를 원래 지지하던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못마땅해하던 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문공이 진나라를 넘어 중원 지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진(晉)나라의 문공이 19년 동안의 망명에서 귀국하는 과정을 그린 남송 화가 이당의 <진문공복국도>

너그러움과 엄격함의 중용(中庸)

사람은 학습과 일에서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한다. 이때 시행착오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위의 원문에서 공자는 엄격함보다 너그러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모든 경우에 너그럽게 대하라”는 말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공자 스스로도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면 원칙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도(道)와 같은 삶의 원칙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공자의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너그러움을 우선하라!”는 너그러움의 우선 적용이다. 용의자의 범행이 확실해 보이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처리하는 것처럼 책임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으면 너그러움의 가치를 앞세워야 한다. 삶의 원칙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생각할 때 당연하다.

둘째,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하고 너그러워야 할 때 너그러워야 한다”는 중용(中庸) 사상이다. 엄격과 너그러움은 사실 양극단에 있지만 그 사이에 엄청난 중도(中道)가 있다. 일마다 사건마다 똑같지 않고 각각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때 일의 처리를 양극단 중 하나에 적용하게 되면 사실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에 들어맞지 않으면 사람들의 공감과 동의를 받을 수 없다.

공자는 일의 특성에 맞는 고유한 방식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모든 원칙이 ‘사람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 너그러움보다 엄격함에 치우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엄격함만으로는 그가 프로야구 감독으로 있으면서 세운 공적과 인기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엄격함은 선수들로 하여금 야구에 집중하게 할 수는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실력을 안정적으로 끌어낼 수 없다. 그는 엄격함에 기울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중용을 찾아서 선수단을 이끌었기 때문에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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