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논어 명언명구] 택선종지(擇善從之) - 좋은 것을 골라 따라 해라

라라와복래 2015. 2. 13. 22:13

[논어 명언명구]

택선종지(擇善從之)

좋은 것을 골라 따라 해라

‘모방’은 사람들이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의 움직임이다.

공자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이전에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내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를 아무리 돌아봐도 발전의 씨앗을 쉽사리 찾을 수 없다. 나아가야겠다는 바람은 들끓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자신을 계속 들여다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다. 시선이 절로 다른 사람으로 향하게 된다. 내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벌써 저만치 앞서나간다. 이때 사람은 무시, 허영, 질투, 모방, 존경 등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 다섯 가지 감정이 얼마만큼씩 뒤섞여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군상으로 나타난다.

‘무시’는 다른 사람의 성취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그 성취를 깎아내리는 태도이다. ‘허영’은 자신에게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마치 넉넉한 것처럼 보이려는 태도이다. ‘질투’는 나에게 없고 남에게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 내가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기보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태도이다. ‘모방’은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남이 하는 언행을 따라하려는 태도이다. ‘존경’은 남이 가진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만 자신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공자는 자신이 모자란다고 생각할 때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롤 모델로 삼는 ‘모방’의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공자가 태어나기 이전과 살아가던 당대의 지적 성취들이 모두 ‘공자’라는 문화 용광로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모방이야말로 공자가 문화의 틀을 창조해낸 자양분이었다.

질투는 나에게 없고 남에게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 내가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기보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태도이다.

<논어> 술이(述而)편 22장

— 173번째 원문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속에 반드시 우리가 보고 배울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사람들의 뛰어난 점을 골라서 따라 해보고,

반대로 모자라는 점을 찾으면

나에게 있는 그런 점을 고칠 수 있다.

삼인(三人)은 글자 그대로 하면 세 사람이지만 꼭 삼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두세 사람 또는 서너 사람, 네다섯 사람 등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필(必)은 부사로는 꼭, 반드시, 오로지의 뜻으로 쓰이고, 동사로는 꼭 하리라고 약속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사(師)는 스승의 뜻이다. 택(擇)은 고르다, 가리다의 뜻이다. 선(善)은 좋다, 착하다의 뜻이고, 선자(善者)는 좋은 것의 뜻이다. 종(從)은 따르다, 나아가다의 뜻이다. 개(改)는 개혁(改革)처럼 고치다, 바꾸다의 뜻이다.

기(其)는 영어의 정관사처럼 한정하는 맥락으로 쓰인다. 이(而)는 접속사로 앞뒤의 의미가 비슷한 순접과 상반되는 역접이 있다. 지(之)는 용법이 아주 다양한데, 그것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고, 주격 또는 소유격 조사로 쓰이기도 하며, 가다라는 동사로 쓰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어의 용법이 정해져 있지 않고 문맥에 따라 달라지므로 고대 한문은 해석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문 문장의 구조에 익숙해지면 지(之)가 어떤 용법인지 쉽게 파악된다. 예컨대 여기서 지(之)는 동사 다음에 쓰이고 있으므로 불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지, 주격 조사나 동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방에서 길을 찾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릴 적에 읽은 책을 들춰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콩쥐팥쥐>의 이야기는 착한 콩쥐가 행복을 누리고 나쁜 팥쥐가 벌을 받게 되는 걸로 끝이 난다. 결말에만 주목하면 해피엔딩이지만 과정에 주목하면 악인이 선인을 괴롭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어릴 때 결말이 아니라 과정에 주목했다면 <콩쥐팥쥐>는 ‘누군가를 괴롭혀도 된다’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놀부전>의 경우 결말은 <콩쥐팥쥐>와 비슷하다. 놀부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그는 부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괜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을 부수기도 하고 흥부의 행운을 가로채려고 한다. 그 결과 놀부의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한 뼘도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공자는 팥쥐와도 다르고 놀부와도 달랐다. 그는 자신이 없고 남이 가진 것을 보면 자신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남에게서 빼앗거나 남을 괴롭히는 방식이 아니었다. 공자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남이 가진 것을 배우려고 했다. 즉 남의 의사에 반해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지게 된 맥락을 관찰하여 자신도 그것을 가지려고 했다.

이런 공자의 태도를 보면 내가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축구 시합에서 바나나킥을 본 뒤에 운동장에서 선수들의 동작을 따라 해보곤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아가 공자는 자신에게 없지만 남에게 있는 것을 선별적으로 따라 하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공자의 선별적 모방은 제자 안연에게서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자기 혁명’의 용기로 이어졌다. 맹자의 전언에 따르면 안연은 모방이 도전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서 다음처럼 말했다.

위대한 성왕 순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舜何人也? 予何人也?) ― <맹자> ‘등문공’

공자와 안연의 이야기는 박찬호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류현진, 강정호 등 한국 프로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실력을 인정받아서 곧바로 미국의 MLB로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박찬호 시절만 해도 MLB는 상상할 수 있을 뿐 결코 현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박찬호는 1991년에 한·미·일 고교대표팀 친선 대회에서 우승하고서 다저스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관중석 제일 뒤에서 경기를 바라보면서 ‘내가 어디에서 뛸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품었다. 그 상상이 아시아 선수가 MLB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음처럼 말했다.

“꿈은 상상력에서 생기는 거예요. 상상력이 조금씩 깊어질 때 비로소 꿈이 만들어져요. 다시 꿈이 깊어지면 목표가 만들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목표가 만들어지면 그때부턴 몸과 마음이 만들어져요.” ― <매거진 S> ‘개척자’ 박찬호와 마포대교 그리고 영웅

공자는 자신을 앞서가는 사람을 보고서 좌절하지도 시기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다. 즉 그들은 나의 미래인 것이다. 그 미래를 예사로 보지 않고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그 만큼 ‘미래의 나’가 뚜렷하게 ‘현재의 나’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반면교사

우리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기가 죽고, 못난 사람을 보면 기를 편다. 남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기보다 어떻게 해서 깎아내리려고 한다. “내가 누구보다 못하다”라는 것은 죽기보다 싫을 뿐만 아니라 삶의 욕망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인간의 성향으로 인해 우리는 남의 단점이라면 티끌만큼 작아도 잘 찾아내고 자신의 단점은 기둥만큼 커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성경에서는 “자기 눈의 들보와 남 눈의 티”로 대비시키고 있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 루가의 복음서 6:41~42, 공동번역

공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 엄격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직접 들여다보지 못하니 먼저 남의 잘못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자신을 살피면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남의 잘못을 보며 인간의 약점을 읽어낸다면, 한 번 잘못을 한 사람을 무조건 나무라기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따뜻한 태도를 지니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학생이면서 선생인 것이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모방의 정면교사(正面敎師)가 되고 교훈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기 때문이다.

학교가 아닌 곳이 없다

공자는 모방에서 길을 찾는 “택선종지(擇善從之)”를 말하고 남의 잘못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반면교사를 말했다. 이때 우리는 배움이 일어나는 곳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배움’하면 바로 학교와 학원을 떠올린다. 가정, 사회, 자연은 더 이상 배움의 장이 아니다. 반면 공자는 “택선종지”와 반면교사를 말하면서 “서너 사람이 서로 어울려서 지내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분명 책걸상이 놓여 있고 칠판과 교탁이 있는 교실이 아니다. 이곳은 생활이 일어나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공자의 배움과 지금의 교육 현실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다. 일단 배움의 내용이 다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문제를 빨리 잘 풀어서 정답을 찾아내는 ‘기계-학생’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니면 문제를 보자마자 답을 찍어내는 ‘족집게-학생’을 만들고 있다. 반면 공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여정을 잘 가꾸는 배우는 ‘여행자-학생’을 말하고 있다. 어울리는 사람이 잘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어울리는 사람이 잘못을 하면 내 안의 잘못을 찾아서 고치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점점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여행자)이 되어 간다. 사람을 기계 아니면 족집게로 만드는 교육과 행복한 여행자로 만드는 교육의 차이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배움이 일어난 장소가 다르다. 오늘날 교육은 학교(학원)의 안과 밖으로 구분하고, 안은 공부하는 곳이고 밖은 공부에 방해되는 곳이다. 따라서 자연히 학생이 학교(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면 좋고 적으면 나쁘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교육은 학교의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배움은 학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밖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공부하러 학교에 갑니다”라고 말하지만 공자는 “이 세상 모든 곳이 학교다”라고 말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낯설고 색다르며 긴장감을 주는 여행은 우리를 길을 찾고 여정을 짜고 의미를 깨닫는 탐구자로 만든다.

여행은 최고의 배움터

“삼인행(三人行)”을 좀 더 적극적으로 풀이하면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여행으로 볼 수 있다. 고향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아늑하다. 하지만 자극이 없으니 호기심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물을 일도 없다. 뭔가를 찾는 탐구는 없고 주위를 즐기는 향유가 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낯설고 색달라서 긴장감이 생긴다. 몸이 조금 아파도 약을 어디에서 살지 모르니 알 만한 사람을 잡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많지 않은 시간에 많을 것을 보려고 하니 효율을 생각하고 다시 오지 못할 듯하니 깊게 느끼려고 한다. 세포와 신경이 모두 날이 서서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한다. 이렇듯 여행은 우리를 길을 찾고 여정을 짜고 의미를 깨닫는 탐구자로 만드는 것이다.

“삼인행”을 보자. 세 사람이나 열 사람이나 서른 사람이 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문제를 풀어보자. 수업을 듣는 태도와 문제를 푸는 실력에는 차이가 난다. 그 이외의 차이가 드러날 틈이 없다. 하지만 세 사람이 길을 나서보라. 걸음을 걷는 걸음새가 다르다. 벌써 물음이 생긴다. “당신은 왜 그렇게 걸어요?” 대답이 이어지며 대화가 피어난다. 교실에서 침묵은 권장되지만 대화는 거절된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침묵은 의미를 삭이는 과정이고 대화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닫힌 공간 안에서만 배움을 찾는 교육 중독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공자는 우리의 손을 잡고 발을 교실 밖으로 이끈다. 닫힌 곳에서만 날개를 피는 주인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툭 트인 곳에서 손님이 되어 미래의 나를 빚으라고 권하고 있다. 바람의 딸 한비야도 교실에만 갇혀 있었다면 오늘의 한비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비야가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을 돌고 지도 밖으로 행군했기에 깨달음을 얻는 행복한 여행자가 된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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