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세계의 명시/ 자크 프레베르 - 쓰기공책

라라와복래 2015. 8. 16. 21:33

세계의 명시/ 자크 프레베르

쓰기공책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다시! 선생님은 말하고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한데 저기 하늘을 지나가는

거문고새가 있네

아이는 새를 보고

아이는 새소리를 듣고

아이는 새를 부르네:

날 좀 구해 줘

나랑 놀아 줘

새야!

그러자 새가 내려오고

아이와 함께 노네

둘에 둘은 넷…

다시! 선생님은 말하고

아이는 놀고

새는 아이와 함께 놀고…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이고

그럼 열여섯에 열여섯은 얼마지?

열여섯에 열여섯은 아무것도 아니고

절대로 서른둘은 아니네

어쨌든 아니고

그런 건 멀리 사라지네.

아이가 새를

책상 속에 감추고

모든 아이들은

새의 노래를 듣고

모든 아이들은

새의 음악을 듣고

여덟에 여덟은 차례 되어 사라지고

넷에 넷도 둘에 둘도

차례차례 꺼져 버리고

하나에 하나는 하나도 둘도 아니고

역시 하나씩 사라지네.

거문고새는 놀고

아이는 노래하고

선생님은 소리치네:

장난질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러나 모든 아이들은

음악 소리를 듣고

교실의 벽은

조용히 무너지네.

유리창은 모래가 되고

잉크는 물이 되고

책상들은 숲이 되고

분필은 절벽이 되고

펜대는 새가 되네.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뭐니 뭐니 해도 자크 프레베르는 내게 이브 몽탕이 부른 샹송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의 작시자로 먼저 떠오른다. ‘고엽’은, 프레베르가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 1946)>에서, 주인공이었던 몽탕이 직접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낙엽이 거친 삽 속에 쓸려 담기듯 우리의 추억 또한 무정한 삶 속에 쓸려 담기지만, 세월은 그렇게 그대와 나를 갈라놓고 사랑의 흔적마저 지워버리지만, 여름날의 태양 같았던 우리의 사랑을 그대 또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노래였던가. 그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음률, 노랫말 덕분에 “투아 튀 메메 에 wm 테메”(Toi, tu m'aimais et je t'aimais, 그대 날 사랑했고 난 그대를 사랑했네)”와 “투아 키 메메 에 무아 키 테메(Toi qui m'aimais, et moi qui t'aimais, 날 사랑했던 그대 그대를 사랑했던 나)라는 불어 문장이 저절로 외워지기도 했던. 자크 프레베르. 그의 사진이나 초상화는 거의 담배를 문 모습이다.

프레베르가 이렇듯 멜랑콜리한 사랑시만을 썼던 건 아니다. 시인 레몽 크노는 그를 1940~1950년대 프랑스 젊은이들의 지도자로 칭했다. 부르주아 계급과 신(神)과 학교와 기성세대를 조롱했던 프레베르의 목소리가 당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보다 더 젊었기 때문이다. ‘쓰기공책’ 또한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풍자한 시다. ‘거문고새(l’oiseau-lyre, 금조琴鳥)’는 꽁지깃을 펼친 모습이 리라(하프)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특히 주변의 모든 소리를 그대로 따라하는 새라 한다. 이 거문고새와 함께 아이들이 글자나 숫자 등을 배울 때 베껴 쓰곤 하는 쓰기공책 또한 단순한 모방 교육을 상징한다.

프레베르 시에는 ‘아이’와 ‘새’가 자주 등장한다. “피처럼 따뜻하고 붉은 새/ 그토록 유연하게 날아오르는 새/ 예쁜 아가 그것은 네 마음”(‘새잡이의 노래’)에서처럼, 그는 생명과 사랑과 자유와 순수를 간직한 그 모든 것들을 ‘새’ 혹은 ‘예쁜 아가(마음)’라 부르곤 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뛰어 놀 수 없고”,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닐 수 없는”(‘절망은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상황이란 그에게 ‘절망’ 그 자체였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새를 나누어주는(‘유리장수의 노래’) ‘새 장수’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희구했던 프레베르는 거짓과 권위로 상징되는 숨 막히는 질서와 경직된 삶을 일관되게 희화화하고 부정하곤 했던 것이다.

지루한 산수 시간. 아이는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그리고 “다시!”에서처럼 단순 반복의 암기식 수업에 흥미가 없다. 아이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꿈꾸고 싶어 한다. 그러고는 “모든 걸 지운다/ 숫자와 말과/ 날짜와 이름과/ 문장과 함정을/ 갖가지 빛깔의 분필로/ 불행의 흑판에다/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선생님의 야단에도 아랑곳없이/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도 못들은 척”(‘열등생’)한다. 새의 노래를 따라 하는 아이를 향해 선생님은 “당장 그만두지 못해!”라고 소리를 쳐보지만, 아이의 마음을 흉내 내며 노래하는 거문고새의 자유로운 노랫소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긴다. 한 아이에게서 시작된 거문고새의 노랫소리를 모든 아이들이 따라하게 될 때, ‘교실의 벽’은 무너지고 온갖 교육의 도구들은 모래·물·숲·깃털 등 자연 그 자체로 환원된다. ‘프레’는 ‘초원’이라는 뜻이고 ‘베르’는 ‘초록’이라는 뜻이다. ‘프레베르’라는 그의 이름처럼 프레베르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시 정신을 잃지 않았던 시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살아라)’ 하라던 키팅 선생을 ‘오, 마이 캡틴!’이라 외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르고, 공책과 책장은 물론 세상 모든 것들 위에 ‘자유’라고 쓰고 또 쓰던 폴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가 떠오른다.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내 사투리로 내가 늘어놓을래”로 시작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떠오르고,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인생이 결정된다”라는 슬로건 아래 ‘공부 기계’ ‘학원 기계’로 전락해 가는 우리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프레베르의 다른 시 “오, 어린 시절은 얼마나 비참한가/ 지구는 회전을 멈추고/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려 들지 않고/ 태양은 빛나기를 거부하고/ 모든 풍경은 움직이지 않는다/ (…) 우리는 안개 속에서/ 나이 든 늙은이들의 안개 속에서 숨이 가쁘다”(‘어린 시절’)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프레베르의 시는 쉽다. ‘그가 표현한 그대로’가 바로 그의 시의 의미다. 보들레르에서 랭보로 이어지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이 쌓아 놓은 그 난해하고 현란한 상징의 장벽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고나 할까? 입말에 가까운 그의 시는 자연스러운 언어로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들을 포착하곤 한다. 새의 노래처럼 가볍게! 소리와 의미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반복의 형식은 시 전체에 동적인 분위기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아이의 노래처럼 즐겁게! 때문에 그의 시는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담백하면서 시원한 시의 맛이 완성된다. 읽고 나서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 노래하게 되는 시, 그게 바로 프레베르의 시다.

자연을 사랑한 자크 프레베르에게 헌정된 생제르멩데보(Saint-Germain-des-Vaux) 숲의 정원

자크 프레베르 (Jacques Prévert, 1900.2.4-1977.4.11) 파리 서쪽 변두리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태어났다. 사립중학교를 졸업한 뒤 열다섯 살 때부터 시장과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뜻이 있어 스물여섯 살에 당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나 브르통, 아라공 등과 뜻이 맞지 않아 그룹에서 나왔다. 이때부터 동생 피에르 프레베르와 친구 마르셀 뒤아멜 등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제니의 집>, <안개 낀 부두>, <저녁의 손님>, <천국의 아이들>, <밤의 문> 등 유명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샹송 가사도 썼다. 마흔여섯 살에 시집 <말>을 펴냈다. 발간된 지 수주일 만에 10만여 부가 팔리며 일약 스타 시인이 되었으며 그 후 <구경거리>, <비와 좋은 날씨>, <잡동사니>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시뿐만 아니라 영화, 사진, 샹송 등 다방면의 일을 했으며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사진과 그림을 곁들인 동화를 상당수 출판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1977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ㆍ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