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미니 시리즈 - 오은

라라와복래 2015. 9. 5. 09:18

 

미니 시리즈

오은

느닷없이 접촉사고

느닷없이 삼각관계

느닷없이 시기질투

느닷없이 풍전등화

느닷없이 수호천사

느닷없이 재벌2세

느닷없이 신데렐라

느닷없이 승승장구

느닷없이 이복형재

느닷없이 행방불명

느닷없이 폐암진단

느닷없이 양심고백

느닷없이 눈물바다

느닷없이 무사귀환

느닷없이 갈등해소

느닷없이 해피엔딩

16부작이 끝났습니다

꿈 깰 시간입니다

출전 :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

시를 배달하며

활자로 보았을 때와, 낭송으로 들었을 때 매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소음과 속도에 지쳐 집으로 돌아와 산만한 노동자로 TV 앞에 멍하니 앉아 말도 안 되는 미니 시리즈를 멍하니 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엉성하고 부실한 카오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미니 시리즈가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기승전결도, 극적 전환도 없이 느닷없는 악다구니와 느닷없는 필연과 상황 돌출…. 어쩌면 가장 리얼한 삶의 묘사가 아닐까 싶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시-낭송 오은 1982년생.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음악 심태한 / 애니메이션 강성진 / 프로듀서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