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5월 모차르트는 프러시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베를린 궁전을 방문했다. 그는 왕의 실내악 연주자들과 함께 현악 4중주를 연주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왕은 “이곳에서 이러한 현악 4중주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모차르트에게 궁전에서 지위를 제안했지만, 빈의 황제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베를린을 떠나며 왕을 위한 6개로 구성된 현악 4중주 세트와 함께 프리데리케 여왕을 위한 6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위촉받았다. 그가 흔히 사용하지 않던 필사본 종이를 사용했다는 사실로 인해 언제쯤 이 4중주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지만,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에 작곡하다 중지한 몇몇 단편들을 복원하여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분명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D장조 현악 4중주(No.21, K.575)에 1789년 6월이라는 날짜를 적어 자신의 작품 목록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프러시아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작곡
모차르트가 두 번째 4중주를 작곡할 무렵 저 유명한 오페라인 <코지 판 투테>의 의뢰가 들어오며 스케줄이 겹쳐버렸다. 6개로 계획했던 피아노 소나타 역시 단 한 작품만이 작곡되어 있었고, 현악 4중주는 1790년 6월 5월에 완성한 B플랫장조(No.22, K.589)와 F장조(No.23, K.590)만을 더 작곡한 상태였다. 이 시기 모차르트는 고질적인 재정적 어려움이 최악의 상태에 빠졌을 당시로서 병에 걸린 아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컸다. 1790년 5월경 그의 동료인 메이슨 미카엘 푸쉬베르크에게 빈번하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집에서 현악 4중주들을 들려주고자 초대를 했다. 다음 달 편지에서는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기 위해 하찮은 보수의 이 4중주들(이 공들인 작품들)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빈의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이 현악 4중주들을 팔아버린 이유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작곡가가 사망하기 겨우 몇 주 전인 1791년 말 경에 출판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현악 4중주 세 곡은 프러시아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작곡되어 일명 ‘프러시안 세트’로 불린다.
그는 프러시아의 궁전에서 적은 보수를 받는 대신 빈 출판사 가운데 한 곳에 현악 4중주 악보를 팔았고 여기서 필사본을 만들어 다른 곳에 팔아넘겼거나, 아니면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는 부유한 상인인 요한 토스트와 같은 자신의 후원자에게 팔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존재하는데, 모차르트가 기록한 것처럼 이 작품은 거래가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이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모차르트는 왕으로부터 헌정의 대가를 받는다는 생각을 전적으로 포기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고, 아르타리아 에디션에서도 헌정자를 게재하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이 ‘프러시안’ 4중주들을 “공들인 작품”이라고 언급한 것으로부터 위촉과 둘러싼 특별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직접 첼로를 연주할 수 있었던 왕은 장-피에르 뒤포르와 같은 유럽에서 제일가는 첼리스트들을 고용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일반적으로 반주의 기능을 담당하는 첼로에 앙상블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특별함을 부여해야만 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솔리스트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는데, 첫 번째 바이올리니스트(전통적으로나 음향에 있어서 상성부를 담당하기 위해서)와 첼리스트(왕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를 다른 두 연주자들보다 조금 더 두각을 보이게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세 개의 4중주들은 고전주의 시대 동안 모든 네 개의 성부들에게 평등함을 부여하고자 끊임없이 표현 수단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String Quartet No.21 in D major, K. 575
왕의 위촉에 대한 첫 번째 응답으로 모차르트는 D장조(No.21, K.575)를 선택했다. 처음 등장하는 주제는 소토 보체(sotto voce)임에도 불구하고 상승 3화음을 예견하는 팡파르처럼 등장한다. 왕을 조롱하는 듯 첼로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주제를 재현하는 비올라를 반주하기 위해 일련의 대범한 D코드만을 연주하다가 결국 상성부로 편입되며 멜로디를 이끌어 나간다. 또한 부주제에서는 상당 부분을 담당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상승 3화음이 등장하면서는 전개부의 대부분을 연주한다.
A장조 안단테에서 첼로는 확장된 중간 멜로디 부분을 전면적으로 이끌며 시작부의 반복과 코다를 주도한다. 미뉴에트 악장은 업비트 형태의 네 개의 16분음표를 처음부터 집중적으로 사용하며 옥타브의 급작스러운 분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트리오는 첼로의 멜로디컬한 프레이즈를 인도하는 보조 역할로서의 바이올린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알레그레토 악장에서 첼로에 의해 유도되는 주제는 상승 3화음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 창의적인 악장을 강조하는 많은 발전부 에피소드들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난다.
String Quartet No.22 in B-flat major, K. 589
B플랫장조(No.22, K.589)의 첫 악장 알레그로는 4분의 3박자로서 첫 주제는 각 성부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고 두 번째 주제는 솟구치는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특히 첼로와 에너지감 넘치는 셋잇단음표의 보조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발전부에서는 주제들이 대위법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이어지며 발전한다. 주제들의 시퀀스들과 첼로에 의한 두 마디 브릿지, 수정 및 확장된 모든 주제들의 재변형에 의해 구성된 E플랫 장조 라르게토는 화려한 멜로디를 가진 악장으로서 첼로와 제1바이올린이 서로 대화를 하듯 교대로 담당한다.
마지막 두 개의 악장의 비중은 이례적인 것이다. 비교적 길고 발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미뉴에트는 기계적인 16분음표 음형으로 시작하며 겹세로줄 이후 드라마틱함이 펼쳐지는 대단히 긴 트리오로 잘 알려져 있다. 피날레는 8분의 6박자의 압축된 형식의 악장이다. 단일 주제는 하이든의 1781년작 현악 4중주 ‘농담’ Op.33 No.2를 모델 삼아 아이디어를 찾은 것이 분명하고, 발전부의 중심부에서의 강도 높은 처리 방식 또한 지극히 하이든적이다. 그러나 하이든의 ‘농담’에서는 결말을 코믹하게 이끄는 반면, 모차르트는 씩씩하게 마무리 짓는다.
String Quartet No.23 in F major, K. 590
F장조(No.23, K.590)의 첫 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의 주제를 적나라한 옥타브로 시작하여 점차 상승 3화음으로 발전시키는 대범한 진행(마치 이 작품이 프러시아 세트의 첫 작품인 양)을 선보인다. 이것은 곧 첼로에 의해 다른 형태로 재등장하고, 이후 제시부의 마지막 아이디어로 수정된다. 그러나 현저하게 드러나는 발전부의 부재는 논의를 위한 재료의 다른 단편들로 채워진다.
C장조의 안단테 악장은 주요 주제의 변주 이후에 변주를 떠나 첫 두 마디의 리듬을 집요하게 사용하면서 소나타 형식의 완성을 구축해 나가는 대단히 놀라운 모습을 담고 있다. 트리오를 포함하고 있는 미뉴에트 악장은 몇몇 이례적인 길이의 프레이즈의 모습을 띄고 있는데, 미뉴에트 부분(악장 전체와 대조되는 듯한 깔끔한 네 마디의 코다로 마무리된다)의 7마디와 트리오 부분의 5마디가 그러하다.
마지막 피날레는 무궁동적인 악장이다. 이 악장은 전체적으로 주제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꾸로 변조되기도 하거나 래그타임의 예언적인 형태로 싱코페이션 처리되기도 한다. 이 악장의 대부분은 대위법적 텍스추어로 처리되면서 왕의 첼로를 포함한 네 개의 악기들은 완벽하게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어진다.
추천음반
1. 아마데우스 4중주단의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의 연주(DG)를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2. 이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서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Teldec 시절 리코딩을 모차르트 현악 4중주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멋진 앙상블을 들려주는 음반으로 손꼽을 수 있다.
3. 하겐 4중주단의 연주(DG)도 훌륭한 사운드와 여유로운 앙상블을 보여주는 명연이다.
4. 바릴리 4중주단의 연주(Westminster)는 '프러시아' 세트의 고전적인 명연으로 그 명성이 높다.
글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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