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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 고대 미술 속 강아지: 인간 사회에 들어온 개

라라와복래 2018. 7. 21. 14:19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고대 미술 속 강아지

인간 사회에 들어온 개


<개가 그려진 그릇>, 기원전 4000년경. 채색 테라코타, 수사. 이 그릇은 긴 다리와 꼬리로 특징되는 하운드를 패턴으로 반복하고 있다. 그릇에 새겨진 하운드는 그만큼 인간의 삶에 가까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개,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다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이번 회부터는 미술사의 큰 흐름 속에서 서양미술에 등장하는 개와 그 그림을 소개할 예정이다. 개가 어떤 맥락 속에서 인간 사회에 받아들여졌고,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 시대에 개의 역할과 위치가 어떠했는지, 또한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하도록 하겠다. 자, 그렇다면 개는 과연 언제부터 인간의 친구 역할을 해 왔을까?

현대인에게 개는 충성심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반려인이 반려동물인 개를 집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버려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네 발로 수십 리를 걷고 뛰어 제 주인을 찾으러 돌아온다거나, 제 몸을 던져 위험에서 반려인을 구해낸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인간에게 처음부터 개가 충성과 충직함을 대표하는 동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개는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정말 개 같은 처지였다. 물론 몇몇 권력자에게 총애를 받거나, 하운드 종 같은 사냥개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았다.

프랑스의 라스코 벽화1)는 개와 아이들이 우연히 발견했다. 그림, 판화, 스케치 등의 기법으로 기록된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소, 들소, 사슴, 말 같은 사냥감들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동물들을 잡으려는 이유는 고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기 전,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야생동물에서 얻은 고기나 과일과 야채 등을 채집해야만 했다.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랜 기간 동물은 인간 생존의 절대적 조건이었다. 성경에 기록되었듯 양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환영받았다. 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털을 깎아 옷을 만들고, 젖은 짜서 마시고, 죽어서는 고기를 제공했다. 인간에게 알뜰하게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일체의 해를 끼치지 않았다. 소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런 초식동물의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만 야생동물을 키웠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개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사냥 때문이었다. 사냥에서 개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개는 인간 사회에서 살기 시작했을까?

개는 인간의 사냥 파트너


<타실리엔 아제르 벽화>, 기원전 7000년경, 알제리

문화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는 인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최초의 야생동물로 간주된다. 현재와 같은 생김새의 개의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는데, 회색 늑대(Canis lupus)의 후손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설이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40만 년 전, 인간과 늑대의 삶의 터전은 같았다. 같은 영역을 공유하며 서로 각기 다른 대상을 사냥했고, B.C 14,000년 전에는 늑대로부터 진화한 개가 가축으로 길러졌던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유럽의 후대 구석기에 속한다. 야생동물의 뼈와 암각화가 지금까지 보존된 알타미라 동굴의 유적이 만들어진 시기가 대체로 B.C 18,500~14,000년 전경이니, 야생동물과 인간의 생활 터전은 겹쳤다.

인간이 개를 곁에 두고 길렀던 이유는 실용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개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혜택은 사냥의 편리성이다.2) 맨손 혹은 간단한 도구(돌)만으로 야생동물과 마주해서 싸워야 했던 인간들에게 시각과 후각, 청각이 몇 백 배 발달했고 인간이 원하는 대로 길들일 수 있는 개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냥 파트너였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과 한 팀이 되어 소, 사슴, 하이에나 등을 사냥하는 개의 모습이 다양한 문화권의 동굴 벽화 속에서 발견된다.

신석기 시대에 그려졌을 <타실리엔 아제르 벽화> 속에서 인간은 (물)소에게 화살을 맞췄고, 네 마리의 개가 그 소를 맹렬하게 쫓고 있다. 혹은 개들이 잘 몰아준 덕분에 인간은 소를 명중시켰고, 개들은 이 사냥을 끝내기 위해 소를 더욱 추격하고 있다. 저 전력 질주하는 네 마리의 개는 제 조상이 인간 곁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온몸으로 증명한다. 이처럼 인간과 동거하던 초기의 개는 대부분 사냥개로 기록되어 있다. 고양이와 달리 개는 종(種)이 아주 다양한데, 그것들은 대부분 하운드 종(잉글리시 그레이하운드)에서부터 분화하기 시작했으리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초기 지중해 연안 시대에 살았던 종의 개(‘크레타섬 추적자’ 혹은 ‘Kritikos Ichnilatis’)들은 이 벽화에 등장하는 개들처럼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별하게 타고난 운동 능력은 모든 하운드 종이 갖고 있는 특질이다. 드넓고 광활한 초원에서 원래 서식했기 때문에, 냄새보다는 탁월한 시각(그래서 하운드 종의 다른 이름은 시각하운드(Sighthound)이다)으로 사냥감의 아주 작은 움직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인간과 개는 야생동물 사냥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개, 가축과 집을 지키다


<작은 개 펜던트>, 기원전 3300년경, 금, 1,4x1.5cm, 수사

수사3)에서 발견되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 중인 금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크기는 제목의 ‘펜던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크기는 높이 1.4센티미터, 길이1.5센티미터로 아주 작다. 등에 동그란 고리가 줄을 연결해서 목걸이처럼 액서서리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날카롭게 세운 두 귀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말려든 꼬리에서 만든 이가 개에 대해 가졌을 애정과 친근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개를 키운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귀여운 반려견이었을까? 목 부근을 자세히 관찰하면 골이 살짝 패여 있다. 개의 목줄이 묶여 있던 흔적일 테니, 인간에게 훈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다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즉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들을 지키는 중일 가능성이 높다.

개는 한눈팔지 않는다. 시각의 집중력과 청각의 예민함으로 개는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집을 지키기 좋은 경비원이었다.


<개조심(Cave Canem)>, 폼페이. 모자이크 벽돌 속의 빨간 목줄을 맨 개는 지금도 관광객들을 향해 짖을 것처럼 생동감 있다.

개는 주인을 향한 충성심이 강하다. 내 편이 아닌 세상 모두를 향해 조심하고 경계한다. 낯선 대상이나 낯선 냄새를 인지하면 그것에 대해 시선을 집중하고 몸을 긴장시킨다. 온 신경이 귀와 눈, 앞다리에 집중되면서 낯섦의 근원을 헤아린다.

같은 편이라 판단되면 경계를 풀지만, 그 대상이 조금이라도 위협적이라 판단되면 곧바로 앞다리를 낮추어 공격 태세로 전환된다. 개의 종에 따라 그 대응이 다르다. 낮고 위협적으로 으르릉거리거나, 맹렬하게 짖어서 대상을 쫓아버리려 하기도 하고, 맹수의 본능을 간직한 종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대상이 공격 가능한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버린다. 모든 개는 아무리 온순하더라도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의 잠재태이다. 따라서 개가 지키는 집은 안전하다.


<개조심(Cave Canem)>, 모자이크,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개조심’이 글자로 적혀 있지 않지만, 개의 귀와 생김새를 보면 이 모자이크 작품을 만든 목적을 쉽게 알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표현 양식인 모자이크 채색 벽돌로 만들어진 <개조심>은 실제 개의 크기에 가깝게 제작되어 ‘비극 시인의 집’ 입구를 지켰다. 폼페이 유적 발굴 때,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대문자로 ‘개조심’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이 조형물의 목적은 확실하다.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다는 메시지를 방문자들에게 주는 동시에, 도둑 같은 외부의 침입자를 겁주려는 위협이다. 까만 눈동자, 하얀 이빨, 자주색 목줄과 노란 리본 등 묘사가 대단히 세부적이고, 개의 생김새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개는 사실적이다

그리스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자 문화이다. 유럽 문명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서, 철학이나 미술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의 원형을 형성했다. 그 핵심은 인간과 인간성이다. 어떤 이념이나 권력, 종교도 인간 그 자체를 압도할 수 없었으니, 예술 작품이나 신화 속 신들조차 인간의 모습을 가졌다.

인간이 모여 사는 세상이니 인간만이 중심이라는 세계관은 자칫 오만해질 수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신의 세계를 만들어내어 그 오만함을 경계했다. 인간화된 신과 신에 비추어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 어울려 살던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은 위압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았다.


1. <하인과 그의 개들과 함께 있는 운동선수>, 고대 로마 묘석, 기원전 36-350년경, 대리석, 아테네. 2. <하인과 그의 개들과 함께 있는 운동선수>(부분).

흔히 서양미술의 핵심적 속성을 실체가 아닌 환영(幻影)에 대한 탐닉으로 본다.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에 해당하는4) 고대 그리스 시대의 그림과 조각 등도 때때로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마치 정답인 양 표현했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과 그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로마 미술에서 이념은 표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과 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과 화합을 향해 있다. 초기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졌으나, 헬레니즘 양식에서는 감상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본주의 덕분에 우리는 묘석에 새겨진 두 마리의 그리스 개를 만날 수 있다. 이름 모를 그리스 석공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듯이 개를 개로서 보았고, 땅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고, 주인의 손에 들린 것에 이끌려 고개를 치켜든 개의 일상적인 모습을 새겼다. 대단히 소박하고 현실적이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개를 바라보는 후대 인들은 작품과 현재의 시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시선은 주인을 향하고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 하인(소년)의 모습도 다소곳하다. 이렇듯 유머와 감동이 묻어나는 그리스 문화의 특징을 개는 온 몸으로 증언한다.


<한 쌍의 개(The Townley Greyhounds)>, 로마 동상, 대리석, 59.69cm. 손재주만으로 예술가는 되지 못한다. 현실에 깃든 진실을 느껴야 한다. 사람들의 눈은 속여도 마음은 얻기 힘들다.

동물의 애정 표현은 원초적이라 뜨겁다. 사람에겐 말과 글 같은 언어가 주 표현 도구라 간접적이라면, 동물은 제 몸이 언어의 전부라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허용되지 않는다. 거짓 ’말’은 있어도 거짓 ’눈빛’은 없다. 그래서 동물은 진심일 경우에만 몸과 울음소리로 연인에게 다가가 마음을 표현하고 구애한다.

그들에게 본능만큼 정확한 진심은 없다. 서기 1~2세기 무렵, 로마에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한 쌍의 개>는 그 구애의 솔직 담백함을 재현한다. 한 손을 어깨에 살포시 얹고, 귓불을 핥듯이 부드럽게 깨문다. 두 마리의 개가 주고받는 포근한 마음의 결은 정확한 신체 비율, 얼굴 표정과 생김새의 묘사로 인해 현실감을 획득한다. 저토록 차가운 대리석을 깨고 갈고 빚어서 사랑의 따스함이 깃들게 만든 로마 석공의 솜씨는 여느 유명 조각가들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어쩌면, 석공의 가장 큰 재능은 개의 행위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일 듯싶다.

대리석 덩어리를 깨어 개의 형상을 만들어 갈 때, 석공은 자신이 보고 느낀 개의 진실을 그 안에 불어넣으려 노력했다. 개의 진실이 개의 형상 안으로 깃들자, 돌은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조각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개의 진심이 눈으로는 모두 담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면 볼수록 갈증이 더해질 뿐이다. 인간도 동물처럼 소리와 몸동작으로만 마음을 표현한다면, 로댕의 조각은 더욱더 크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주석

1) 1940년에 발견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 미술사적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물 100여 마리를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세밀한 세부 묘사와 풍부한 색채,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주목할 만하다. 1963년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베제르 계곡의 선사 유적지와 동굴 벽화(Prehistoric Sites and Decorated Caves of the Vézère Valley)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 인간의 곡식 창고를 공격하던 쥐와 설치류를 잡기 위해 인간은 고양이를 길들였다.

3) 수사(Susa): 이란 서부에 있는 유적. 고대 Elam(Susiana)의 수도. 여기서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 쓰여 있는 석비가 발견되었다. 성서 명은 Shushan. 출처: 네이버 사전

4) 약 1000년에 걸치는 그리스 미술의 역사는 기하학 양식(B.C.11~B.C.8세기), 아르카익 미술 (B.C.7~B.C.6세기),클래식 미술 (B.C.5~B.C.4세기),헬레니즘 (B.C.3~B.C.1세기) 양식의 4대 발전 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시대의 정확한 구분에는 이설이 많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미술, 미술대사전(용어 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파리 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 『파리 로망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뮤지컬 토크 2.0』, 『뮤지컬의 이해』,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등을 쓰고, 『파리 스케치북』,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번역하고,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사진을 찍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미술의 세계> 테마로 보는 미술>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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