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슈베르트 ‘실 잣는 그레첸’(Schubert, Gretchen am Spinnrade, D.118)

라라와복래 2018. 9. 10. 21:59

Schubert, Gretchen am Spinnrade, D.118 (Op.2)

슈베르트 ‘실 잣는 그레첸’

Franz Schbert

1797-1828

Renée Fleming, soprano

Claudio Abbado,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Gala concert of the Lucerne Festival 2005


Renée Fleming - Schubert, Gretchen am Spinnrade, D.118 (Op.2)


1821년에 슈베르트는 자신의 첫 공식 출판 작품인 〈마왕>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왕>이 그의 작품번호 1번이 된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마왕>으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이 성공은 슈베르트에게 리트(Lied, 가곡) 작곡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많은 연주 기회를 안겨주었습니다. 〈마왕>이 빛을 보기 전까지 슈베르트는 19세기 초 빈에서 무명 작곡가에 지나지 않았죠. 슈베르트가 〈마왕>으로 거둔 성공은 1821년 한 해 동안 연이은 출판물로 입증이 됩니다 이 한 해 동안 슈베르트의 작품번호는 7개로 늘어났고, 〈마왕>으로 거둔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슈베르트가 Op.2로 택한 작품이 〈실 잣는 그레첸>입니다. 그런데 〈실 잣는 그레첸>은 사실 <마왕>보다 반년 앞서 1814년 10월 17세 때 작곡한 작품입니다. 작곡 시기와 출판 시기가 달랐기 때문에 작품번호(Opus)가 뒤바뀐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가곡을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의 시작이라고 일컫습니다.

<실 잣는 그레첸>은 슈베르트가 처음으로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하여 쓴 작품입니다. 괴테의 시는 낭만파 예술가곡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는데, 모차르트나 베토벤에게서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괴테의 시가 슈베르트에게는 양적(70곡 이상)으로나 질적으로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첫 작곡가입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에게는 괴테 이외에도 실러, 하이네 등 문학사상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의 명작과 함께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 예를 들면 마이어호퍼, 쇼버 등의 작품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개 슈베르트의 친구들이었죠. <실 잣는 그레첸>은 오늘날 자주 불리는 슈베르트의 가곡 중에서 가장 이른 나이의 작품이지만 기교가 뛰어나고 표현력이 풍부하여 훗날의 걸작들에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가사

Meine Ruh ist hin, 나의 안식은 사라지고,

Mein Herz ist schwer, 내 마음은 무거워,

Ich finde sie nimmer 다시는 그런 안식

Und nimmermehr. 영원히 없으리. (이 부분은 절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됩니다.)

Wo ich ihn nicht hab, 그분이 없는 곳,

Ist mir das Grab, 어디나 무덤 같고,

Die ganze Welt 넓은 이 세상

Ist mir vergällt. 나에겐 괴롭기만 하네.

Mein armer Kopf 내 머리는 미칠 듯

Ist mir verrückt, 나를 괴롭히고,

Mein aremer Sinn 가련한 내 마음은

Ist mir zerstückt. 찢겨나가네.

Nach ihm nur schau ich 오로지 그분이 오시려나

Zum Fenster hinaus, 창밖만 바라보고,

Nach ihm nur geh ich 오로지 그분 그리움에

Aus dem Haus. 문밖으로 달려 나가네.

Sein hoher Gang, 그분의 걸음걸이,

Sein' edle Gestalt, 그분의 고귀한 모습,

Seines Mundes Lächeln, 그분 입가의 미소,

Seiner Augen Gewalt, 그분의 불타는 눈길.

Und seiner Rede 그분의 말소리

Zauberfluss, 마법 같은 목소리,

Sein Händedruck, 그분이 잡는 손길,

Und ach, sein Kuss. 그리고 아, 그분의 키스.

Mein Busen drängt 내 마음은 오로지

Sich nach ihm hin. 그분을 그리노라.

Auch dürf ich fassen 아, 내가 그분을 붙잡고

Und halten ihn, 포옹할 수 있다면.

Und küssen ihn, 내 마음대로,

So wie ich wollt, 그분과 키스하고,

An seinen Küssen 키스를 하다가

Vergehen sollt!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가사는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 그레첸이 물레를 돌리며 파우스트 생각에 혼잣말로 노래하는 부분에서 가져왔습니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소녀 그레첸은 교회를 다녀오다가 우연히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파우스트를 만나게 됩니다. 파우스트는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메피스토펠레스는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마법의 힘으로 파우스트를 연모하게 된 그레첸은 물레를 돌리면서 오매불망 그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입니다.

6/6박자, d단조. 지시어는 ‘너무 빠르지 않게’이며, 변화가 있는 유절가곡. 오른손으로는 조성만 조금씩 바꾸며 같은 멜로디를 끊임없이 연주하여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를, 왼손으로는 물레의 페달을 밟는 소리를 표현해 실제로 그레첸이 옆에서 실을 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른손으로 표현하는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는 작품 전체에서 딱 한 번 멈추는데, 그 부분은 바로 ‘Und ach, sein Kuss(그리고 아, 그분의 키스)’입니다. 그레첸이 파우스트와의 키스를 회상하며 감정에 북받쳐 자신도 모르게 실 잣는 일을 멈춘 것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또, 연이 바뀔 때마다 계속 반복되는 시구 ‘Meine Ruh ist hin/ Mein Herz ist schwer(나의 안식은 사라지고/ 내 마음은 무거워)’는 시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부여합니다. 괴테의 원작에서는 1연의 반복이 두 번만 이루어지지만, 슈베르트는 맨 마지막에 한 번 더 반복시켜 사랑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레첸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노래를 마무리 짓습니다.

모차르트의 쾨헬 번호(K.)를 개정하여 정립한 공적을 세운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먼 친척이라고 함)은 “시가 음악을 위해 있는 것인지 음악이 시를 위해서 있는 것인지 슈베르트의 경우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Yuja Wang - Schubert, Gretchen am Spinnrade, D.118 (piano solo)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