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브루크너 교향곡 1번 C단조(Bruckner, Symphony No.1 in C minor, WAB 101)

라라와복래 2018. 9. 20. 15:55

Bruckner, Symphony No.1 in C minor, WAB 101

브루크너 교향곡 1번 C단조

Anton Bruckner

1824-1896

Paavo Järvi, conductor

hr-Sinfonieorchester (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Alte Oper Frankfurt

2017.02.07


Paavo Järvi/hr-Sinfonieorchester - Bruckner, Symphony No.1 in C minor, WAB* 101


일찍이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를 바흐와 베토벤과 더불어 ‘3대 B’(drei grossen B)라 칭하며 독일 음악의 계승자로 점찍었지만, 사실 빈에는 또 한 사람의 ‘대 B’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안톤 브루크너이다.

“신을 찾은 음악”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상당히 독특하다. 대단히 신비로우며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음악적 표현이 애매모호하고 비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브람스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의 논리성을 모범으로 몰락해 가는 교향곡 형식을 구원했다면, 브루크너는 베토벤의 9번을 모델로 교향곡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태초에 우주가 생성되듯 서서히 상승해 가는 베토벤 9번 1악장 도입부의 신비로움은 브루크너의 거의 모든 교향곡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브루크너 교향곡 특유의 우주적인 소리는 듣는 이를 종교적 신비와 신을 향한 경외감으로 인도한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브루크너의 음악을 가리켜 “신을 찾은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브루크너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42세가 되던 1866년이다. 베토벤이 만 29세에 교향곡 1번을 완성한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늦은 편이다. 그러나 평생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브루크너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다.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 이후에 여덟 곡의 교향곡을 더 작곡해 교향곡의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브루크너가 첫 교향곡을 내놓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30세가 되던 1854년부터 1861년까지 무려 7년간 시몬 제히터와 함께 공부하며 대위법의 달인이 되었지만 브루크너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1861년부터 1863년까지는 오토 키츨러와, 1863년부터 1865년까지는 이그나츠 도른과 수업하며 작곡법과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가다듬었다. 도른과 공부하며 관현악곡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브루크너는 1863년에 슈만과 멘델스존을 모델로 한 연주회용 서곡 g단조를 작곡해 관현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교향곡이 나오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종교음악 작곡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브루크너는 <d단조 미사>(1864)와 고풍스러운 <e단조 미사>(1866), 바그너풍의 <f단조 미사>(1868)를 내놓으며 ‘19세기의 중세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종교음악 대작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그리고 바로 1865년부터 1866년에 걸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두 곡의 습작 교향곡을 완성했지만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습작에는 각각 00번과 0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번호가 붙게 되었다. 그러니 브루크너의 교향곡 1번의 의미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작곡가 스스로가 1번이란 번호를 당당하게 붙일 수 있었던 최초의 작품이니 말이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1번을 가리켜 “자유로운 성숙기의 첫 번째 교향곡”이라 칭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으며, ‘건방진 부랑아’(das kecke Beserl)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이 별칭은 교향곡 1번이 뿜어내는 충만한 에너지를 잘 표현해준다.

교향곡 1번을 완성한 후 자신감에 차 있던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의 피아노 편곡 악보를 당대 유명 음악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가운데는 음악평론가이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도 있었다. 브루크너가 뷜로 앞에서 1악장을 연주해 보이자 뷜로는 특히 트롬본이 나오는 94마디 이후에 대해 “매우 드라마틱하군!”이라 말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을 몇 차례 개정하여 빈 개정판을 완성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교향곡은 1865~66년의 ‘린츠 버전’과 1890~91년의 ‘빈 버전’의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1악장: 알레그로

어두운 c단조의 행진곡으로 시작한다. 당시에 행진곡으로 교향곡을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에 이런 도입부는 당대 청중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1악장이 진행될수록 도입부의 행진곡이 점차 새로운 음악으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1악장의 제2주제는 노래하듯 서정적인 성격을 보여주며 제1주제와 대비되는 듯하나 사실 제2주제도 제1주제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준다.

92마디(빈 버전의 경우)에 이르면 뷜로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트롬본의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트롬본의 포효가 전하는 장대한 악상은 듣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며,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순례자의 합창’을 떠올리게 하는 신성함과 장엄함을 지니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종결부에 이르면 다시 어두운 c단조가 중심을 이루지만 간혹 C장조의 빛을 내비치며 4악장에서 펼쳐질 긍정적 결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2악장: 아다지오

2악장의 느린 아다지오는 브루크너가 특히 사랑했던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브루크너의 열렬한 숭배자 헬름은 2악장을 가리켜 “베토벤의 아다지오 이후 매우 깊이 있고 중요한 아다지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2악장을 들어보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느린 악장을 연상시키는 점도 있지만 브루크너의 아다지오가 한결 변화무쌍하다. 첫 스무 마디가 진행되는 동안 쉴 새 없이 전진하며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풍부한 악상은 놀랍기만 하다.

3악장: 스케르초

3악장 스케르초는 처음부터 그 리듬이 강렬해 처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올 것이다. 브루크너 시대에도 3악장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 베토벤의 스케르초와 비슷하게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는 스케르초 부분은, 느린 템포 속에 목가적인 악상이 펼쳐지는 중간 트리오 부분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4악장: 피날레

4악장 피날레는 처음부터 선언문을 낭독하듯이 자신 있게 시작한다. 이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악장 도입부로서는 조금 예외적이다. 브루크너가 이 교향곡에 ‘건방진 부랑아’라는 별명을 지은 것도 4악장의 자신감 넘치는 도입 주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브루크너는 피날레의 첫 부분에 대해 “이 건방진 부랑아는 곧장 ‘여기 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5번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 1번 역시 1악장을 c단조의 어둠으로 시작해 4악장에서 C장조의 광명으로 끝맺는데 브루크너는 이 과정을 좀 더 서서히 진행시킨다. c단조로 시작된 피날레는 하나씩 단계를 밟아 C장조로 향하고 마침내 금관악기의 벅찬 연주로 이어진다. 이때 금관악기군의 연주는 마치 합창과 같은 충만한 음량을 뿜어내며 브루크너 음악 특유의 음색을 만들어낸다.

*WAB는 Werkverzeichnis Anton Bruckner의 약자로 안톤 브루크너의 작품번호라는 뜻이다. 레나테 그라스베르거(Renate Grasberger)가 브루크너의 작품번호를 정리했다.

**필자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교향곡 0번이 1번 이전에 완성되었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교향곡 0번의 최초 스케치는 1863년에 시작되었지만 완성된 것은 1869년이며 따라서 교향곡 0번은 1866년에 완성한 교향곡 1번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 것이다. 필자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_라라와복래

Bruckner, Symphony No.1 in C minor, WAB 101

Claudio Abbado,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Sofiensaal, Wien

1969.11.20

최은규 (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출처 : 최은규, 『교향곡 - 듣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 도서출판 마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