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몬테베르디 오페라 ‘오르페오’(Monteverdi, L'Orfeo)

라라와복래 2018. 9. 17. 09:59

Monteverdi, L'Orfeo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Claudio Monteverdi

1567-1643

La Música: Montserrat Figueras

Orfeo: Furio Zanasi

Eurídice: Arianna Savall

Messaggiera: Sara Mingardo

Caronte: Antonio Abete

Proserpina: Adriana Fernández

Plutón: Daniele Carnovich

La Capella Reial de Catalunya

Le Concert des Nations

Conductor: Jordi Savall

Gran Teatre del Liceu, Barcelona

2002.01.31


Gran Teatre del Liceu 2002 - Monteverdi, L'Orfeo


우리는 음악의 기틀을 닦은 작곡가에게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이길 좋아한다. 바흐에게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따라다니고 하이든에게는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오페라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아마도 이탈리아의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몬테베르디는 고음악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저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화석화된 인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의 음악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방송국 자료실 같은 곳에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원전연주 단체의 눈부신 활동을 통해 몬테베르디의 음악은 오늘날 대대적인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인 1607년에 초연된 오페라 <오르페오>의 발굴은 중요 유적 발견에 맞먹는 대사건이라 하겠다. 이제 몬테베르디의 음악은 여러 단체에 의해 활발하게 녹음되고 있으며 일반 감상자들의 애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르페오>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창세기 혹은 ‘종의 기원’에 해당된다.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르네상스 음악이 점차 수명을 다해 가고 바로크 음악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문주의자이자 철학자이며 문학자이기도 했던 백작 조반니 데 바르디는 고대 그리스 음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바르디는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인 작곡가 빈첸초 갈릴레이의 도움을 받아 고대 그리스의 음악정신을 되살리려고 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노디(monody) 즉 독창에 의한 단선율 음악을 기본으로 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의 음악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종교음악이든 세속음악이든 폴리포니(polyphony) 즉 다성음악이 대세였다. 때문에 가사의 전달이 쉽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갈 여지가 적었다.

바르디는 자신의 집을 피렌체의 문화적 엘리트들에게 개방하여 ‘카메라타’(Camerat)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작곡가 중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49-1618)가 있었다. 카치니는 독창 단선율에 통주저음(通奏低音)의 기법을 결합시켜 음악 기법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통주저음이라 함은 저음에 약식부호나 숫자 등을 기록해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화성을 채워 넣는 양식을 가리킨다. ‘통주(通奏)’라는 용어는 독주자나 독창자가 쉬더라도 통주저음을 맡은 악기 연주자는 연주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악보에 코드만 적으면 반주자들이 알아서 연주하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기법과 유사한 방법이다.

통주저음으로 인해 모노디 기법이 확립됨으로써 오페라로의 길은 한 잘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오셨어요?” 같은 일상적인 대사들을 어떻게 노래로 소화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이를 긴 호흡으로 노래 부르면 우스운 코미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처음부처 끝까지 음악이 관통하는 음악극을 만들 수 없었다. 이전에는 연극 사이사이에 노래를 삽입하는 막간극 형태로 극을 진행해야만 했다.

따라서 말하는 속도로 노래 부를 수 있는 창법이 필수적이었다. 이에 레치타티보(recitativo)라는 기법이 개발되었다. 레치타티보는 음고(音高)는 있으나 멜로디가 거의 없이 내뱉는 듯 노래를 부르는 창법으로서, 요즈음 대중음악으로 치자면 랩과 유사하다. 레치타티보 창법의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곡가는 카치니의 라이벌인 작곡가 야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였다.

이제 모노디와 레치타티보 기법의 확립으로 최초의 오페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1600년 초연된 페리의 오페라 <에우리디체>는 악보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오페라로 기록되고 있다. 최초의 오페라가 오르페우스 신화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데, 이는 고대 그리스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피렌체 작곡가들의 도전정신을 생각해볼 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러나 <에우리디체>는 기법과 완성도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오페라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결국 오늘날 감상용으로 적합한 오페라는 피렌체와 문화적으로 경쟁자였던 만토바의 궁정악장 몬테베르디에 의해 이루어진다.

몬테베르디는 카치니와 페리보다 오페라에의 시도는 늦었지만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틈틈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1607년 오페라 <오르페오>가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페리의 <에우리디체>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는 했지만 천재성과 독창성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을 구사하였다. 이로써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예술이라는 오페라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르페오>는 토카타(toccata: 연주음악을 뜻하는 용어로 기교적인 음악이 주종을 이룬다)와 서막 이후 다섯 개의 막이 이어진다. 토카타는 트럼펫, 색벗(sackbuk: 트롬본의 전신 악기)으로 연주되는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이다. 이는 극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몬테베르디의 주인인 프란체스코 곤차가 공작을 위한 음악이었다. 이런 관습은 17세기에는 흔한 것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바로크 작곡가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도 극음악에서 국왕을 위한 음악을 프롤로그에 배치했다. 공연 시작 전에 의무적으로 애국가를 삽입해야 했던 제5공화국 시절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서막에는 무지카(La Musica)가 등장하여 앞으로 진행될 장면에 대해 설명한다. ‘무지카’라는 배역은 이 오페라에서 연기하지 않고 오로지 노래만 부른다. 1막은 오르페오(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에우리디케)의 결혼식 장면이다. 신랑과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목동과 요정들이 여럿 모여 있고 결혼을 축하하는 춤이 이어진다. 이 부분의 음악은 발랄하고 경쾌하며 남미의 월드뮤직과 흡사하게 들린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결혼식 장면

2막은 오르페오가 목동들에게 아내를 찬미하는 유쾌한 노래를 불러주면서 시작한다. 목동이 앙코르를 외치는 순간 메신저라는 배역이 갑자기 끼어들어 아내가 죽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전한다. 메신저가 부르는 노래 ‘그녀는 꽃이 만발한 초원에서(In un fiorito prato)’는 일종의 ‘탄식의 아리아’로 이후의 바로크 오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이 극중 미친 상태에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가 대 열풍을 이루었던 것처럼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탄식의 아리아’가 그러하였다. 훗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무색할 정도로 음악이 염세적이고 어둡다.

장면이 바뀌어 지옥을 다룬 3막이 시작된다. 지옥의 뱃사공 카론이 “겁도 없이 죽음의 문턱에 다가오다니 당장 멈추어라”면서 오르페오에게 호통을 친다. 오르페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능한 영과 공포의 신이여(Possente Spirito e formidabil Nume)’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전능한 영과 공포의 신이여,

그들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이도

저 기슭으로 가지 못하리

나는 생명이 없소. 나의 신부가 죽었으니

이제 나의 심장은 더 이상 나와 함께 있지 않소.

심장이 없는 사람이 어찌 살 수 있겠소?

그녀를 찾기 위해 암흑의 길을 걸어왔소.

그곳이 지옥이든 그보다 더한 곳이든,

아름다운 에우리디체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네.

이 노래는 오페라 전체에서 백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몬테베르디는 악보에 기본적인 멜로디 방식 그리고 뛰어난 기교를 부린 방식 두 가지를 모두 기보하였다. 가수들은 거의 모두 후자의 방식으로 노래했다. 오르페오를 맡은 테너는 염소가 우는 듯한 빠른 반복음과, 우스갯소리로 ‘바로크 R&B 창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어지러운 음표의 향연을 펼친다. 그래야 지옥의 뱃사공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노래 중간에는 바이올린, 코넷, 더블 하프의 현란한 간주가 삽입된다. 코넷이라는 악기는 지금 관현악에서 쓰이지 않는 악기로 금관악기의 마우스피스를 장착한 뿔피리이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의 혼성악기이며 트럼펫보다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더블 하프는 몬테베르디 당시에 개발된 악기로 조율을 하지 않고도 플랫이나 샤프 같은 음표를 덧붙일 수 있었다.

4막은 저승세계의 주인 플루톤(하데스)과 안주인 프로세피나(페르세포네)의 대화로 시작된다. 프로세피나는 오르페오의 노래에 감동했다면서 그에게 에우리디체를 돌려주라고 남편 플루톤을 설득한다. 듣고 있자니 ‘옆집 남편은 아내에게 저렇게 잘해준다는데’ 식이다. 지옥의 권력이 여성의 치마폭에서 나오는 순간이다. 오르페오는 플루톤의 명을 받아 지옥을 벗어나던 중 조급한 나머지 뒤따라오던 아내를 돌아다본다. 5막에서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오가 절망의 아리아를 부르고 곧 태양의 신 아폴론이 내려와 그를 올림포스로 데리고 간다. 목동과 요정들의 합창 속에 막이 내린다.


장 레스투 2세, <하계에 간 오르페우스>, 1763년, 캔버스에 유채, 35.5x57.5cm, 루브르 박물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서 리라를 뜯으며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려 달라고 호소하는 오르페우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처럼 서양음악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작품이다. 당시 청중들은 멀티미디어 음악의 새로운 세계에 아마도 강하게 전율했을 것이다. 400년 전 오페라라고 무시하지 마시기를. 요즘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는 작곡가들이 지은 현대의 시끄러운 오페라보다 훨씬 감동적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Monteverdi, L'Orfeo

Orfeo: Nikola Diskić

Eurídice & Música: Antonia Dunjko

Messaggiera & Speranza: Dragana Popović

Proserpina & Ninfa: Radoslava Vorgić

Plutón & Caronte: Marko Špehar

Baroque Orchestra of the New Belgrade Opera

Conductor: Predrag Gosta

Madlenianum Theatre in Belgrade

2017.11.18

출처 : 김문경 지음 『클래식으로 읽는 인생』(도서출판 밀물, 2006) pp.19~26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