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1곡 “밤 인사”

라라와복래 2018. 9. 22. 07:08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1곡 “밤 인사”

Ian Bostridge/Julius Drake - Schubert, Die Winterreise 1. Gute Nacht (밤 인사)

밤 인사 (해설: 이언 보스트리지)

이방인으로 왔다가 Fremd bin ich eingezogen,

이방인으로 떠나네. Fremd zieh’ ich wieder aus.

5월은 꽃들이 피어 만발한 Der Mai war mir gewogen

내게 좋은 계절이었으니. Mit manchem Blumenstrauß.

그녀는 사랑을 속삭였고, Das Mädchen sprach von Liebe,

어머니는 결혼까지 언급했건만, Die Mutter gar von Eh’, ―

이제 세상은 캄캄하고, Nun ist die Welt so trübe,

길은 눈으로 덮였도다. Der Weg gehüllt in Schnee.

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를 Ich kann zu meiner Reisen

선택할 수 없네. Nicht wählen mit der Zeit,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네, Muß selbst den Weg mir weisen

이 어둠 속에서. In dieser Dunkelheit.

달빛이 나의 동무 Es zieht ein Mondenschatten

내가 가는 길을 따르네. Als mein Gefährte mit,

나는 하얀 벌판에서 Und auf den weißen Matten

짐승의 발자국을 찾으리. Such’ ich des Wildes Tritt.

내가 여기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Was soll ich länger weilen,

누군가 나를 쫓아낼 때까지. Daß man mich trieb hinaus?

길 잃은 개는 주인 집 앞에서 Laß irre Hunde heulen

짖도록 내버려두자! Vor ihres Herren Haus;

사랑은 방황하기를 좋아하지… Die Liebe liebt das Wandern ―

신이 그렇게 만들었어… Gott hat sie so gemacht ―

이곳저곳 돌아다니도록. Von einem zu dem andern.

내 사랑, 이제 안녕! Fein Liebchen, gute Nacht!

당신의 꿈을 방해하지 않으리, Will dich im Traum nicht stören,

당신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리. Wär schad’ um deine Ruh’,

내 발걸음 소리를 듣지 않도록 Sollst meinen Tritt nicht hören ―

살며시 살며시 문을 닫고! Sacht, sacht die Türe zu!

떠날 때 문에다 적으리, Ich schreibe nur im Gehen

안녕, 잘 자, 라고 An’s Tor noch gute Nacht,

그러면 당신은 보겠지, Damit du mögest sehen,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을. An dich hab’ ich gedacht.

주인공 남자는 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밤 인사는 이야기 끝에 올 때가 아주 많다. 안 그런가?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 끝나면 우리는 “잘 자” 하고 말한다. 뭔가 온화함이 느껴지는 말이고, 슈베르트 이 곡 역시 그러하다. 리허설에서든 공연에서든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뭔가의 끝이면서 연가곡의 시작임을 동시에 느낀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조용하게 진행된다. 나그네가 사랑했으나 어찌어찌하여 떠나게 된 집을 조용히 나선다. 앞으로 벌어질 소외와 극한의 감정들을 암시하는 징후는 보일까 말까 한 수준이다. 하지만 뒤의 노래들을 통해 표명되고 굴절될 징후가 분명히 있다.

<겨울 나그네>에 처음 도전했을 때는 이 노래가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노래가 끝나고 나면 안도감이 몰려왔다. 미숙해서, 작곡가의 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몰입하지 못해서, 행여 나 자신이 따분해지고 그 결과 듣는 사람도 지루하게 여길까봐 걱정한 것이다. ‘밤 인사’는 <겨울 나그네>의 노래들 가운데서 가장 길다. 템포가 느리지 않고 중간인데도 그렇다. 근본적으로 반복 진행이며 엄밀히 말해 살짝 단조롭다. 3절의 길 잃은 개가 짖는 대목에서 셈여림에 변화를 주거나 크게 노래하고 강세를 부과하여 개 짖는 소리를 모방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충분히 그러고 싶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슈베르트가 세심하게 표기한 반복적이고 조용한 텍스추어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절에서 조성이 단조에서 장조로 마술처럼 바뀔 때 그야말로 슈베르트적인 효과가 제대로 살아난다. 이 노래는 슈베르트 음악에서 자주 그렇듯 장조가 단조보다 더 슬프게 들린다. 여기서 느껴지는 슬픔은 부분적으로 여림의 문제이기도 하다. 잠이 들어 꿈꾸고 있는 소녀를 이렇게 환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꿈이다. 장조로 그려지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슴 아픈 행복의 꿈은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특징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시작 순간부터 이미 한참 동안 계속되고 있었던 것만 같은 노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반복되는 8분음표들이 시종일관 끈질기게 터벅터벅 이어지는 가운데 침울한 하강 음향이 먼저 등장한다. 중간에 느닷없이 강세가 들어가 움찔하게 되는데, 슈베르트의 악보에서 이는 통렬하게 파고드는 고통이다. 슈베르트는 자필 악보에 ‘걸음걸이의 보통 빠르기’라고 적었다. 죽음을 향해 추락하는 듯한 걸음걸이가 작품 전체의 핵심 요소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겨울 나그네. 무엇보다 우선하는 움직임, 떠나야만 하는 상황, 19세기적 의미에서 방랑자, 20세기적 의미에서 길 위의 인생. 슈베르트는 똑같은 나타냄말을 자신의 가장 어두운 노래 가운데 하나에서 이미 사용한 적이 있다. 괴테의 ‘하프 타는 노인의 시’에 붙인 노래로 “문마다 가만히 다가가”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고별’이라는 제목이 붙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이 생각날 수도 잇다. 1악장의 바탕이 되는 모티브 위에 작곡가가 ‘고별’이라고 적었고, 중간 악장에는 ‘부재’라는 제목과 ‘안단테 에스프레시보’(걸음걸이의 속도로, 하지만 표정을 풍부하게 담아)라는 글이 적혀 있다.

그나저나 주인공 남자는 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유를 모른다. 그가 사랑을 잃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고 추정하고 그냥 넘어간다. 우리에게는 개략적인 정보만 주어진다. “그녀는 사랑을 속삭였고, 어머니는 결혼까지 언급했건만” 이 구절은 한 차례 반복되고 음높이가 올라가 기대감을 드러낸다. 이어 거대한 심연이 입을 벌린다. 우울한 휴지부가 희망이 꺾였음을 나타내고, 이제 과거의 푸근했던 품은 뒤로 하고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쓰디쓴 풍경을 드러낸다. “이제 세상은 캄캄하고, 길은 눈으로 덮였도다.” 그러나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밖으로 내몰았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가 그녀를 찼을까? 아니면 그녀가 그를? 어머니가 결혼을 언급했다는 것은 희망사항이었을까. 아니면 정반대로, 방랑기가 있어서 낭만적 헌신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악몽이었을까? 그는 평생 이렇게 살았을까? 그가 사는 집일까, 잠시 들른 것일까? 지금은 한밤중, 모두가 잠들어 있다.


이언 보스트리지

이 해설은 세계적인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지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장호연 옮김, 바다출판사, 2016)에서 옮긴 것입니다. 30년 넘게 무대에서 <겨울 나그네>를 부른 성악가로서의 경험과 유럽 근대사를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의 지식을 쌓은 보스트리지가 과거와 현재의 문헌들을 뒤지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2년에 걸쳐 집필한 책입니다. 작곡가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외부 상황을 꼼꼼히 추적함으로써 독자에게 음악 감상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이 책은 새로운 형식의 음악 해설서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뮐러의 시 우리말 번역은, 보스트리지가 독일어 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이를 옮긴이 장호연이 번역한 것임을 알려둡니다. <겨울 나그네> 24곡 해설을 이언 보스트리지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추려 한 곡씩 차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보스트리지의 해설은 한 곡당 20페이지에서 3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입니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