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헨델 오페라 세리아 ‘리날도’(Händel, Rinaldo)

라라와복래 2018. 9. 20. 17:48

Händel, Rinaldo

헨델 ‘리날도’

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

Rinaldo: Mariana Rewerski

Almirena: Kateřina Kněžíková

Armida: Marie Fajtová

Goffredo: Stanislava Jirků

Argante: Adam Plachetka

Eustazio: Markéta Cukrová

Collegium 1704

Conductor: Václav Luks

Théâtre de Caen

2010.04.27


Théâtre de Caen 2010 - Händel, Rinaldo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 이야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기 걸작 <리날도>는 바로 그런 동화적이고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1세기 유럽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마법과 미신이 지배하던 시대를 그렸거든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세계 마법사의 대결

1막

때는 1099년. 십자군 사령관 고프레도는 이슬람 세계에 넘어간 예루살렘을 포위한 채 장군 리날도를 격려합니다. 딸 알미레나와 리날도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는 고프레도는 이 전투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면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겠다고 약속하죠.

알미레나는 용감하게 싸워 이기고 돌아오라는 노래로 그에게 힘을 주고, 리날도는 ‘사랑을 당장 이룰 수 없음은 괴로운 일’이라고 노래하면서 어서 승리해 알미레나에게 돌아오겠다고 다짐합니다. 한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사라센 왕 아르간테는 전세가 불리하다고 느껴 3일간의 휴전을 제안하고, 고프레도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때 아르간테의 연인인 이슬람 마법사 아르미다가 나타나 리날도를 패하게 할 궁리를 합니다.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새들이 노래하고 산들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합니다. 그때 갑자기 아르미다가 나타나 마법을 발휘해 알미레나를 납치해 갑니다. 리날도를 유인하려는 술책이죠. 사령관 고프레도 그리고 그와 형제간인 에우스타치오는 기독교 세계의 마법사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며 리날도를 위로하고, 리날도는 ‘바람이여, 회오리여, 우리를 도와다오’라고 열정적으로 노래합니다.

2막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 리날도 일행은 일단 배를 타고 기독교 마법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중에 바다의 요정 사이렌들의 노래와 춤이 그들을 유혹하죠. 일행이 말리는데도 리날도는 알미레나를 구하러 간다며 사이렌들의 배를 타고 떠납니다. 아르미다 여왕의 궁전에서는 아르간테 왕이 인질로 잡혀온 알미레나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알미레나는 “나를 자유롭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차라리 내 잔혹한 운명을 탄식하며 울게 내버려두세요.”라며 그에게 응하지 않습니다.

알미레나의 이 아리아는 거세된 남성가수 카스트라토의 삶을 다룬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해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지요. 마치 경건한 기도처럼 들리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살펴보면, 말로는 사랑한다면서도 아르미다가 무서워 도와주지 못하는 적장 아르간테에게 알미레나 공주가 짜증내는 노래랍니다. 독백조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요.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사라센 왕 아르간테가 등장하는 장면.

한편 아르미다 역시 사이렌의 배를 타고 온 리날도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리날도가 거부하자 아르미다는 알미레나로 변신해 유혹해보지만 리날도는 끝까지 자신을 지킵니다. 오히려 알미레나로 변신한 아르미다를 몰라보고 아르간테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 이슬람 연인들의 관계는 갑자기 냉랭해지지요.

3막

리날도 없이 기독교 마법사를 찾아간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는 아르미다의 주술을 깰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를 얻어 아르미다의 성으로 항해합니다. 한편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르미다는 알미레나를 죽이려 들고, 리날도가 이를 가로막죠.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는 지팡이를 앞세우고 아르미다의 성에 들어와 알미레나와 리날도를 구합니다. 공주는 결국 왕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구출된 거죠.

알미레나와 리날도에게 각각 마음을 빼앗겨 사이가 나빠졌던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다시 화해하고 결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전투는 리날도와 기독교도들의 승리로 끝나고 두 연인은 고프레도의 허락을 받아 행복하게 결혼하기로 합니다. 전투에 패하고 예루살렘을 빼앗긴 아르미다와 아르간테는 기독교도들의 신이 자신들의 신보다 막강하다고 생각해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바로크 오페라다운 이 어이없는 결말, 그리고 십자군 전쟁 자체의 부조리함이 현대적인 <리날도> 연출에서는 재미있게 희화화됩니다.


니콜라 푸생, <리날도와의 사랑에 빠진 아르미다>, 1616

18세기 영국 궁정귀족의 모범인 리날도

이 오페라의 대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의 <해방된 예루살렘>(La Gerusalemme liberata, 1575)의 일화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헨델의 <리날도>뿐만 아니라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 글루크, 하이든, 로시니의 <아르미다>와 <탄크레디> 같은 오페라들이 이 <해방된 예루살렘>의 에피소드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헨델은 독일의 할레에서 태어나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로 성장했고, 함부르크에서 첫 오페라 작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초청으로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등지를 여행하며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한 헨델은 영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운동을 전개했죠. <리날도>는 영국에서 헨델이 이탈리아어로 공연한 첫 작품으로 전형적인 ‘나폴리 오페라’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초기 오페라의 중심지는 피렌체에서 베네치아 또 나폴리로 옮겨 갔는데요,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정가극) 형식은 나폴리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죠. 남녀 두 커플이 등장해 네 사람의 관계가 서로 얽히는 것이 나폴리 오페라의 기본구도였습니다. 과장된 의상, 화려한 무대효과도 나폴리 오페라의 특징이었지요.

<리날도>의 대본작가는 영국 극작가 애런 힐(Aaron Hill, 1685-1750). 그가 쓴 대본을 자코모 로시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공연했습니다. 대본을 쓴 애런 힐의 목표는 십자군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리날도라는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리날도는 18세기 초 영국사회가 요구했던 궁정귀족의 모범, 그러니까 ‘사랑과 사회적 의무를 조화시킨 남성상’입니다. (공주에 대한) 사랑이 용맹의 동기가 되었고, 비록 혼자 힘으로 공주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나약함과 오류를 극복하고 전투에 승리해 사랑을 얻었으니까요.

초호화 캐스팅과 특수효과로 초연에 대성공

초연은 1711년 2월 24일 영국 런던 헤이마켓 왕립극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극장은 연일 초만원 사태를 빚으며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대의 유명 카스트라토 니콜리니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캐스팅이 초호화 진용인데다 성악적 기교를 최대한 살려주는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줄을 이었답니다. 그리고 천둥과 번개, 조명과 불꽃이 만들어내는 특수효과가 관객의 혼을 빼놓았다는 점도 중요한 성공 비결이었다고 하는군요.

이처럼 압도적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헨델은 만족하지 않고 공연 때마다 작품을 수정했고, 1731년에는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 결정적 개정판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초연 때 알토 여성가수에게 맡겼던 고프레도 역이 개정판에서는 테너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카운터테너가 이 역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 관객은 남성가수가 여성 역을 노래하거나 여성가수가 남성 역을 노래하는 것을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답니다. 오늘날 <리날도>는 지휘자에 따라 매번 다양한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독일 태생의 헨델은 영국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크게 성공했다.

헨델 오페라의 아리아들은 ‘다 카포’(da capo) 형식으로 만들어져 관객의 뇌리에 쉽게 각인됩니다. 대체로 주인공의 수동적인 태도나 고통을 표현하는 A라는 멜로디를 노래하다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내용의 B멜로디가 나옵니다. 그런 다음 다시 A멜로디를 반복한 뒤 아리아를 마치지요. 하지만 반복되는 A에는 원래의 멜로디보다 장식음이 훨씬 현란하게 붙어 있어 더욱 기교적입니다. 그래서 A-B-A'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느리고 서정적인 아리아와 빠르고 격정적인 아리아들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것도 <리날도>의 큰 매력입니다.

Kateřina Kněžíková sings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리날도-알미레나-고프레도 순)

1. 데이비드 대니얼스, 체칠리아 바르톨리, 베르나르다 핑크 등.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 크리스토프 호그우드 지휘. 1999년 녹음, 음반 Decca

2. 비비카 주노, 미아 페르손, 로렌스 차초 등.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르네 야콥스 지휘. 2002년 녹음, 음반 아르모니아 문디

3. 바버, 엔스 모돌로, 하니간 등. 케빈 말론 지휘, 아리디아 앙상블 연주. 2005년 녹음, 음반 낙소스

4. 데이비드 대니얼스, 데보라 요크, 데이비드 워커 등. 바이에른 주립 오케스트라, 해리 비킷 지휘, 데이비드 올든 연출. 2001년, 스펙트럼 DVD(한글 자막)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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