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Tchaikovsky, Eugene Onegin)

라라와복래 2018. 9. 26. 12:59

Tchaikovsky, Eugene onegin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Eugene onegin: Andrei Bondarenko

Tatiana: Yekaterina Goncharova

Lensky: Yevgeny Akhmedov

Olga: Yekaterina Sergeyeva

Madame Larina: Svetlana Volkova

Prince Gremin: Edward Tsanga

Mariinsky Chorus and Ballet

Mariinsky Thatre Orchestra

Conductor: Valery Gergiev

Mariinsky Thatre, St Petersburg

2015.06.26-27


Valery Gergiev/Mariinsky Thatre 2015 - Tchaikovsky, Eugene onegin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알렉산데르 푸시킨(Aleksander Pushkin, 1799-1837)의 창작 가운데는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한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등의 오페라가 모두 푸시킨의 서사시, 운문소설, 희곡 등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최초의 본격 리얼리즘 소설로 불리는 푸시킨의 동명(同名) 운문소설을 토대로 작곡가와 콘스탄틴 쉴로브스키가 함께 대본을 쓴 작품입니다.

푸시킨의 원작소설은 제정 러시아 중류 귀족가문의 주인공 오네긴(러시아 식 발음은 ‘아녜긴’)이 죽음을 앞둔 부유한 친척 아저씨의 집에 와 유산 상속을 기다리며 그의 병상을 지키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오네긴은 아저씨에게 상속 받은 시골의 저택에서 권태를 느끼다가 시인인 친구 렌스키의 소개로 동네 지주 집안의 두 딸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책에 빠져 사는 타치아나, 또 하나는 렌스키의 연인 올가입니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을 읽고, “푸시킨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오네긴과 타치아나라는 두 전형을 창조했다”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사생활과 ‘편지 장면’

1879년 3월 17일 모스크바 말리 극장에서 초연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는 주인공 오네긴이 아닌 여자들의 장면으로 막을 엽니다. 지주 집안인 라린 가의 뜰에서 미망인 라리나(메조소프라노)는 나이든 유모 필리피예브나(메조소프라노)와 함께 일을 하며 두 딸 타치아나와 올가가 집안에서 부르는 사랑의 듀엣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노래를 듣고 라리나도 역시 옛 추억에 잠깁니다.

소작인들은 추수한 작물을 지주 라리나에게 가져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소작인들이 가고 이웃에 사는 렌스키가 친구 예브게니 오네긴을 데리고 라린 저택에 찾아옵니다. 타치아나는 오네긴을 보자 첫눈에 반하고, 오네긴 역시 활달한 성격의 올가보다 사색적인 타치아나가 훨씬 낫다고 렌스키에게 말합니다. 올가와 렌스키가 자기들만의 시간을 갖는 동안 타치아나와 오네긴은 이야기를 나누죠.

타치아나는 이날 오네긴에게 격정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열에 들떠 밤새도록 씁니다. “이제까지의 제 인생은 오로지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을 뿐입니다... 대체 당신은 누구신가요? 교활한 유혹자인가요, 아니면 제 수호천사인가요? 제 운명을 이제 당신 손에 맡깁니다...” 아침이 오자 유모에게 부탁해 편지를 오네긴에게 전하게 하죠. 오네긴은 아침에 편지를 읽고 곧장 타치아나를 찾아오지만, 기대와 두려움에 차 있던 타치아나는 그의 냉정한 훈계를 듣게 됩니다.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으며, 처녀가 섣불리 남자에게 이런 편지를 쓰다가는 못된 남자에게 걸려 불행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얘기입니다. “스스로의 열정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법을 배우셔야겠군요.” 이런 오네긴의 말에 타치아나는 죽고 싶을 만큼 수치와 고통에 시달립니다.

한편, <예브게니 오네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타치아나의 ‘편지 장면(Letter Scene)’은 차이콥스키의 사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자신에게 편지로 열렬한 사랑을 고백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 안토니아 밀류코바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녀와 결혼한 것이 바로 그 중대 사건입니다. 제자에게서 편지를 받은 시점이 마침 이 편지 장면을 작곡한 직후였고, 차이콥스키는 오네긴 같은 비정한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군요. 그러나 일찍부터 우울증에 시달렸고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심리적 고통이 더욱 과중했던 차이콥스키에게 문학적 환상에 기초한 이 결혼은 엄청난 재앙이 되었죠. 차이콥스키가 자살 기도까지 한 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고 합니다.

타치아나의 수치와 절망을 표현하던 비장한 음악이 화려한 선율로 바뀌면서 2막이 시작됩니다. 그녀의 영명축일 축하 무도회에 온 손님들이 떠들썩하게 잔치 분위기를 칭찬하죠. “세상에, 군악대까지 불렀잖아요! 정말 대단한 무도회군요!”라는 합창과 함께 경쾌하고 화려한 왈츠 선율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파티에 온 손님들이 외지에서 온 오네긴에 관한 뒷말(도박꾼, 바람둥이, 프리메이슨 회원)을 수군대자 오네긴은 이런 수준 낮은 파티에 자신을 데려온 렌스키에게 짜증이 나서, 일부러 올가를 유혹해 그녀와 계속 연인처럼 시시덕거리며 춤을 춥니다. 이에 분노한 렌스키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하죠.

결투 입회인 자레츠키가 기다리는 가운데 렌스키가 먼저 결투할 곳에 도착해, 이 세상과 올가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어디로 가버렸나, 내 찬란한 젊은 날은? 아침이면 다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겠지만 나는 무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리라. 다만 올가, 그대만은 내 무덤에 찾아와 울어주겠지. 나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무덤에서 언제까지나 그대를 기다리리라.” 오네긴이 뒤늦게 나타나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고, 렌스키는 스스로 예감했던 대로 오네긴의 총에 쓰러집니다. 이 장면은 훗날 자기 아내를 연모하던 남자와 결투를 벌여 서른여덟의 나이로 죽게 되는 푸시킨의 운명을 마치 예고한 듯합니다.


타치아나의 편지 고백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오네긴

오네긴과 타치아나, 러시아 젊은이의 전형

경솔한 행동으로 소중한 친구를 죽인 데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오네긴은 넓은 세상을 떠돌다가 몇 해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그레민 공작 저택의 파티에 참석합니다. 이 장면에서 차이콥스키의 멋진 폴로네즈가 연주됩니다. 여기서 오네긴은 퇴역 장군 그레민 공작의 아내가 된 타치아나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죠. 공작은 사기꾼과 아첨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타치아나 같은 순수한 아내를 만나 참으로 행복하다는 내용의 노래, ‘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법’을 부릅니다. 철없는 시골처녀에서 성숙한 귀부인이 된 타치아나의 기품 있고 세련된 모습을 보자 오네긴은 갑자기 강렬한 회한과 열정에 사로잡혀 그녀에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 뒤 오네긴은 타치아나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며 열정을 토로하고, 이곳을 떠나 함께 살자고 애원하죠. 그러나 타치아나는 이미 자신이 결혼한 사람임을 오네긴에게 상기시키면서, 남편에게 충실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자신도 여전히 오네긴을 사랑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타치아나는 방을 나가고 오네긴은 “이 치욕, 고통, 내 비참한 운명!”이라고 외치며 무대의 막이 내립니다.

사색적이고 진중하며 소박한 렌스키는 사실 타치아나와 통하는 유형이고,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향락적인 올가는 오네긴과 더 어울리는 성격입니다. 그러나 렌스키는 자신이 갖지 못한 면을 지닌 올가에게 이끌리고, 타치아나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오네긴에게 빠져들죠. 오네긴은 방대한 분량의 독서로 머릿속에 위대한 사상들을 지니고 있으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좌절하여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결국 냉소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푸시킨 시대의 나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혁명정신을 실현하지 못하고 도박이나 주색에 빠지는 등, 결국 정치에 등을 돌리고 사회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작가는 이런 오네긴에게 공감과 연민을 지니는 동시에 약간의 경멸과 혐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푸시킨의 원작에는 오네긴이 결투를 하고 떠난 뒤 타치아나가 오네긴 서재의 책들을 읽고 그의 사고방식과 인간성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또 긴 여행 중에 겪은 오네긴의 체험담들도 들을 수 있죠.

오페라 <오네긴>이 음악은 탁월하지만 연극적 효과 면에서는 문제점이 많다는 세르게이 타네예프의 지적에 대해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오페라의 무대효과가 빈약하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무대효과’라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애당초 차이콥스키는 이 오페라에 ‘서정적 장면들’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사건의 발전에 따른 극적 긴장의 고조 따위는 차이콥스키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베르디의 <아이다>나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같은 대규모 스펙터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다만 각 인물의 내면세계와 성장의 아픔, 그리고 회한을 그림처럼 고요히 펼쳐 보이려 했을 뿐입니다.

Anna Netrebko - “Letter Scene” (편지 장면)

Metropolitan Opera 2013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오네긴-타치아나-렌스키 순)

1. 토마스 알렌, 미렐라 프레니, 닐 쉬코프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방송합창단. 1987년 녹음, 음반

2. 마리우쉬 크비에첸, 타티아나 모노가로바, 안드레이 두나예프 등. 알렉산드르 베데르니코프 지휘,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연출, 2008년 파리 국립오페라극장 실황, DVD

3.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르네 플레밍, 라몬 바르가스 등.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로버트 카슨 연출. 200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실황, DVD(한글 자막)

4. 베른트 바이클, 테레사 쿠비야크, 스튜어트 버로우즈 등.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존 올디스 합창단, 페트르 바이글 감독. DVD, 1988년(영화판)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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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오네긴> 러시아어-한국어 대역 대본.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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