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프랑수아 쿠프랭 ‘클라브생 작품집’(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라라와복래 2018. 9. 29. 11:47

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프랑수아 쿠프랭 ‘클라브생 작품집’

François Couperin

1668-1733

Olivier Baumont, clavecin

Studio 107, Radio France, Paris

1994


Olivier Baumont - 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Book I : Ordres 1~5)

Olivier Baumont - 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Book II : Ordres 6~12)


17~18세기에 걸쳐 프랑스 음악을 황금기로 이끈 프랑수아 쿠프랭(대 쿠프랭, Le Grand Couperin)이 남긴 클라브생 작품들은 바흐 이전에 완성된 최고의 클라브생 작품들이다. 상징에 있어서는 19세기 낭만주의를 능가하고, 짜임새에 있어서는 20세기 신고전주의의 모태이며, 감수성에 있어서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복잡함과 대담함, 극적 감수성이라는 부분에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당혹스러울 정도의 과감한 표현력과 귀족적인 우아함, 표현 대상(작품 제목)에 대한 집요할 정도의 관찰력 등은 몇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찬연한 생명력을 머금고 있다.

프랑수아 쿠프랭은 음악 가문으로 유명한 쿠프랭 가문의 일원으로, 아버지인 샤를 쿠프랭(1638-1679), 삼촌인 프랑수아 1세 쿠프랭(1630-1701)과 루이 쿠프랭(1626-1661), 루이 프랑수아 1세와 샤를 2세의 사촌인 마르크-로제 노르망(1663-1734), 프랑수아 1세의 아들 니콜라 쿠프랭(1680-1748), 니콜라의 아들인 아르망 루이 쿠프랭(1727-1789)까지가 이 가문에 해당한다.

모음곡 형식으로 묶인 총 240곡의 방대한 스케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 가족에서 성장한 대 쿠프랭은 몸이 허약한 탓에 잦은 병치레를 했지만 22세에 이미 걸작 오르간 미사곡을 출판할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이탈리아주의자로서 천재적인 능력을 나타냈다. 이후 그는 기악곡과 실내악곡, 종교 작품, 오르간 곡 등을 작곡하며 당시 프랑스 왕실과 성당을 위해 충실히 봉사했다. 그의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클라브생(쳄발로, 하프시코드)을 위한 방대한 작품들이다.

총 240곡에 달하는 그의 클라브생 작품들은 4권으로 나뉘어 있고 이는 27개의 ‘오르드르(Ordre)’라는 모음곡 형식의 단위로 묶여 있다.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형식이 지배적이지만 쿠프랭은 오르드르를 묶는 방식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각 작품마다의 표제는 때로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서술적이기도 하며, 헌정적인 성격이거나 회화적인 이미지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절대음악적인 성격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그러한 만큼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집>을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대한 바다에 던져진 병을 찾는 것과 같은 난해한 일이다. ▶피아노의 전신 악기인 클라브생(clavecin). 쳄발로(Cembalo)는 독일어이며, 영어로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라고 한다.

이 오르드르라는 단어는 쿠프랭에 의해 사용된 일종의 모음집을 뜻하는 개념으로서 알망드, 쿠랑트, 사라반드 양식의 곡으로 시작하는 한편 여러 개의 공상적이고 묘사적인 표제를 가진 곡 또한 포함한다. 그는 코렐리로부터의 ‘이탈리아 취미’와 륄리로부터의 ‘프랑스 취미’를 독자적인 방법으로 완성시켰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라는 모음곡을 통해 이들의 융합된 통합적 양식을 추구했다. 이 취미의 통합이라는 명제는 그의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그의 클라브생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들 작품에는 당시 유행하던 모든 무곡 양식과 이국적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고, 과거에 대한 경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으며, 자의식적인 닫힌 세계와 관찰자로서의 열린 세계가 병치하고 있다. 특히 그의 개성적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제가 달린 독립적 성격의 작품들은 그 내용이 의미심장할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성격 또한 갖고 있다.

표제 뒤에 숨겨진 깊은 우수와 낭만성

<클라브생 작품집> 1권은 1713년에 출판되었으며, 쿠프랭의 나이 45세인 비교적 늦은 나이에 선보였다. 서문에서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엄청난 양의 직무와 좋지 않은 건강 상태 때문에 당시까지 작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잘못된 복사본들이 출판도 되기 전에 돌아다니며 자신의 음악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에 몹시 분개했다. 그는 악보에 명시한 지시들과 장식음 처리에 신중을 기울였음을 밝히면서 자신의 예술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자 하는 연주자라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주도록 당부했다. 이후 그는 1717년과 1722년, 1730년에 걸쳐 총 4권의 <클라브생 작품집>을 출판했다. 음악 또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이 발전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오르드르부터 5오르드르까지가 포함된 1권(1713)은 그의 첫 <클라브생 작품집>인 만큼 그 모음곡들의 형식과 세련미가 이후에 출판된 작품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만 그 무곡들의 싱싱한 리듬감과 부제들이 주는 명징한 이미지는 쿠프랭의 특출한 재능을 정확하게 증명해준다.

6오르드르부터 12오르드르까지를 수록한 2권(1717)은 보다 내용이 응축되고 형식적으로도 견고해졌다. 특히 10오르드르의 전쟁 장면처럼 한층 발전된 음향적 효과가 인상적이다.

3권(1722)은 첫 곡인 ‘백합꽃이 피다’부터 시적인 상상력과 색채적인 이미지의 환기, 유머러스하면서도 일상적이며 경쾌한 주제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것이 특징으로 단순한 무곡 제목의 작품들은 거의 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시테르 섬의 종’이나 ‘틱 톡 쇽’, ‘사랑의 밤꾀꼬리’ 등 현대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명작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20오르드르부터 마지막 27오르드르까지의 4권(1730)은 쿠프랭의 마지막 클라브생 작품집으로 유머 감각이 최고조에 달하는 동시에 고통과 우수라는 극단적인 감정의 층위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양식적인 측면에서 쿠프랭은 프랑스풍 스타일과 이탈리아풍 스타일 모두를 아우르며 절충주의적인 발전을 이루는 한편, 프랑스의 베르사유 악파의 계승자들인 샹보니에르나 루이 쿠프랭, 당글레베르, 마르샹 등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혁신적인 측면 또한 갖고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표제적인 동시에, 깊은 우수와 부드러운 낭만성 모두를 머금고 있는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들의 신비로운 매력은 바흐와 헨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후일 라모에서부터 20세기 현대 프랑스 작곡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랑스 작곡가들의 존경의 대상이자 무한한 영감의 대상이 되었다.

클라브생을 위해 작곡된 <쿠프랭의 작품집>은 19세기 이후 피아노포르테의 발전에 따라 연주회용 레퍼토리에서 사라질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개화된 리코딩 산업 덕택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그 시적인 상상력과 우아한 표현력, 순발력 높은 리듬과 다채로운 표정으로 인해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음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마르셀 마이어와 같은 프랑스 여류 피아니스들의 노력과 더불어 헝가리 출신으로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피아니스트인 죄르지 치프라에 의해 쿠프랭의 진가는 재발견될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쿠프랭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연주가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하지 않는 선에서, 피아노라는 보다 민감하고 정교하며 스케일 큰 악기로 쿠프랭을 연주한다는 것이, 클라브생의 연주법만의 감각적인 표현력과 소리의 특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작곡가의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창조적인 작업임이 증명된 것이다. 문제는 쿠프랭이 악보로 그려내고자 했던 저 드넓은 상상력의 세계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이다.

공상에 빠진 여인 La Visionnaire

쿠프랭은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여러 나라 사람들>이라는 실내악곡에서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모음곡에 등장시킨 바 있다. 우아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사뿐한 음향과 섬세한 터치로 풍부한 감성을 드러내는 작품. (25 오르드르 중)

성직자들 Les Calotines

성부를 바쁘게 오가며 번뜩이는 당김음과 트릴이 재기발랄한 움직임 속에 스며 있는 경건함 분위기를 묘사한 음악. (19 오르드르 중)

방황하는 그림자들 Les Ombres errantes

깨질 듯이 연약한 서정을 바탕으로 부침하는 죽은 사람들의 외로움이 잘 드러난다. (25 오르드르 중)

잠 혹은 요람 속의 사랑 Le Dodo ou l'amour au berceau

미묘한 음형의 진행에 따라 음색과 분위기가 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서 부드럽지만 비장한 듯한 느낌을 준다. (15 오르드르 중)

개선 La Triomphante

‘개선’은 이탈리아의 stile concitato(흥분시키는 스타일)을 차용한 하프시코드 버전으로서 이 스타일은 이미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에서 선보인 바 있다. 심각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이 작품에서는 전투 장면들의 다양한 효과가 아르페지오와 반복음에 의해 폭넓게 펼쳐진다. (10 오르드르 중)

라 쿠프랭 La Couperin

쿠프랭의 가장 아름다운 알망드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공식적인 음악적 초상화이다. 바흐의 모음곡 BWV 818의 첫 알망드에서 이 첫 도입부를 발견할 수 있다. 단조의 우울함을 바탕으로 우아함의 차원을 달리하는 품격 높은 작품. (21 오르드르 중)

케루빔 혹은 사랑스러운 라쥐르 Les Chérubins ou l'aimable Lazure

단조의 당김음 음형의 장식음들로 시작, 점차 장조로 옮겨 가면서 밝고 쾌활한 아르페지오로 반전하는 만큼 제시된 두 개의 캐릭터가 훌륭한 대비, 조화를 이룬다. (20 오르드르 중)

파사칼리아 Passacaille

바흐와의 유사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쿠프랭의 8 오르드르이다. 서곡 형식의 ‘여류화가’로 시작하여 쿠랑트와 가보트, 론도, 지그 등의 무곡을 거쳐 파사칼리아로 마무리 짓는 오르드르의 형식 때문이다. 특히 ‘파사칼리아’는 쿠프랭만의 독창성을 담고 있는 명곡으로서, 후일 바흐의 ‘샤콘’ d단조의 모델이 된다. (8 오르드르 중)

쌍둥이 Les Jumles

쌍둥이의 친밀함과 교감을 나타내는 듯, 같은 듯 조금씩 다르게 진행하는 왼손과 오른손의 기묘한 조화와 서정적인 분위기가 일품이다. 1716년경에 그려진 화가 앙투안 바토(Antoine Watteaus)의 <두 명의 사촌>과 훌륭한 대척점을 이룬다. (12 오르드르 중)

신비스러운 장벽들 Les Barricades Mistrieuses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집>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 가운데 한 곡으로, 부드럽고 유연한 리듬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곡선과 신비한 음향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작품. (6 오르드르 중)

시테르 섬의 종소리 Le Carillon de Cithere

귀엽고 앙증맞은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14 오르드르 중)

틱-톡-쇽 혹은 마이요탱들 Tic-Toc-Choc ou les Maillotins

인상적이고도 유머러스한 스타카토를 바탕으로 화려한 음색과 풋풋한 생명력을 노래 부르는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18 오르드르 중)

Kenneth Gilbert - 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Book III : Ordres 13~19)

Kenneth Gilbert - François Couperin, Pièces de Clavecin (Book IV : Ordres 20~27)

추천음반

1. 클라브생으로 연주한 쿠프랭은 루제로 게를랭, 크리스토퍼 루세, 스콧 로스, 올리비에 보몽, 케네스 길버트, 브란딘 베를레, 노엘 스피스 등의 전집이 존재해 왔다.

2. 크리스토퍼 루세의 전집(HMF)과 스콧 로스의 전집(Still)이 가장 눈에 띄는 명연으로 추천할 만하다. 루세는 남성적인 대범함과 격정적인 감정의 대비가 돋보이는 표현력 강한 해석이 특징이고, 로스는 섬세함과 우아함을 바탕으로 서정적인 상상력을 극대화한 해석이 특징이다.

3. 그러나 두 음반 모두 현재는 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음색이 아름다운 올리비에 보몽의 연주(Erato)를 상대적으로 추천한다.

4. 피아노로는 전곡이 녹음된 적이 없지만, 마르셀 마이어(EMI)와 알렉상드르 타로(HM)의 선곡 앨범이 가장 훌륭하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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