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 Ucchin
장욱진 20주기전
갤러리현대 신관
2011.1.14-2.27
고 장욱진 화백의 20주기를 맞이하여 장욱진 미술문화재단과 갤러리현대는 공동주최로 화백의 20주기 기념전 ‘장욱진전’을 1월의 전시로 준비하였습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고 장욱진 화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번 ‘장욱진전’에서는 어린이, 가족, 나무, 새 등 일상적인 이미지가 소박하고 정감 있게 표현되어 단순한 삶을 추구했던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 대거 출품됩니다.
전시를 통해 장욱진의 삶과 예술 세계를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올립니다.
관람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전화 02-519-0846으로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갤러리현대 올림
- 특별강의: 장경수 2011. 1. 21(금) 오후 2시
- 관람료: 일반(대학생포함) 3천원, 학생 2천원
- 입장권구입: 갤러리현대 현장구입 02-2287-3500
- 작품설명(도슨트): 매일 오전 11시, 오후 3시
가족ㆍ나무ㆍ집… 소박한 감성이 빚어낸 포근함
‘한국적 추상화 정립’ 장욱진 20주기
갤러리현대, 유화·먹그림 80점 전시
장욱진이 51년 고향 충남 연기군에 피란해 그린 ‘자화상’(종이에 유채, 14.8×10.8㎝)
“나는 한평생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
그 사람 장욱진(1918~2000ㆍ사진)은 몸과 마음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남은 시간엔 술을 마셨다. 한국적 추상화를 정립한 거장이며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사위인 장욱진. 그의 20주기를 기념한 ‘장욱진전’이 14일부터 2월27일까지 서울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마련된다. ‘가족’ ‘보리밭’ ‘가로수’ ‘모기장’ 등 유화 60여 점과 먹그림 20여 점 등 80여 점을 선보인다.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이사장 이순경) 소장품과 기관 및 개인 소장자들의 작품이다. 10여 점의 미공개작 중 작고하기 전 그린 ‘자화상’도 나오는데, 천사처럼 흰옷을 입은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어 죽음을 예감했다는 추측도 있다.
“나는 심플하다”고 늘 되뇌었던 장욱진의 그림은 단순함에서 출발한다. 해와 달, 가족과 집, 새와 나무 등 소박한 이미지를 단순하고 토속적인 감성으로 추상화했다. 유화를 그리면서도 수묵화처럼 자연스레 번지는 효과를 내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주며 한국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주로 엽서나 A4~A3용지 크기의 작은 화폭에 따뜻한 세계를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현재 점당 억대를 호가하는데 당시엔 마음 맞는 이들에게 선물하곤 했다고 한다.
충남 연기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 살에 부친이 사망하자 까치를 그리며 그림을 시작했다. 집 마당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하늘로 떠난 아버지로 생각했거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비상을 그리워했을 터이다.
1978년 서울 명륜동 집에서 그린 ‘가로수’(캔버스에 유채, 30×40㎝). 단순함 속에 담긴 작가의 상상력은 가족과 집, 해와 나무를 통해 따뜻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궁핍하고 암울한 시절인데도 작품 속 세상은 평화롭고 풍요롭게 다가온다. 작가의 안빈낙도적인 예술세계를 이번 ‘장욱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12월27일 부친의 20주기를 지낸 장녀 장경수씨(66ㆍ장욱진 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어릴 적 추억을 소상히 전한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야단치신 적이 없어요. 형제들은 서로 ‘아버지가 나를 제일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지요. 그림을 그리시거나 술을 드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천식을 앓으셨는데, 돌아가시던 날도 점심식사 약속을 마친 후 ‘숨차다’고 병원으로 가셨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홀연히, 너무 허무하게 가셨어요. 앓다 떠나시면 이별준비를 했겠지만.”
술에 대한 기억이 이어진다. “아버지께선 무척 가정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술이 금메달감이셨죠. 깡술을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내내 드셨어요. 식사도 거른 채 마셨답니다. 어머니가 ‘당신은 숯돌로 몸을 가는 것 같다’고 걱정하셔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림과 술은 아버지의 인생 자체였죠.” 장 이사는 21일 오후 2시 갤러리 현대에서 특강 ‘화가로서의 아버지 장욱진’을 통해 고인을 회고한다.
경성사범부속초등학교 학생이던 장욱진은 일본과 조선의 초등학생들이 참가한 소학생 미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고) 재학 시 성홍열 치료차 머문 수덕사에선 만공선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을 만나 그림에 자신감을 가졌다.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그는 유학 중 이병도의 맏딸 이순경(91)과 결혼했고 귀국 후 징용에 끌려갔지만 해방 후 가족의 품에 안긴다. 1945~47년 국립박물관에 재직했고 김환기ㆍ이중섭ㆍ유영국과 어울려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 종군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전쟁의 아픔을 술로 달래기 시작했다. 술이 휴식이었다. 전쟁 직후인 54~60년에 서울미대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다. 귄위와 형식을 지독히 싫어해 넥타이를 매지 않은 헐렁하고 낡은 양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까치집머리로 다녔는데, 새로 들어온 수위들은 그를 문 앞에서 쫓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57년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주최 한국현대회화전에 ‘나무와 새’를 출품한 후 덕소, 명륜동, 수안보 등으로 화실을 옮기며 그려낸 그림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탈함과 천재성을 담은 걸작들이었다. 그는 2남4녀의 아이들을 그리며 단순하고 포근한 자신만의 세계를 이뤘다. 특히 노산이었던 막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자 저승과 이승의 연결책으로 삼은 새를 자주 그렸다.
가정 경제는 책방을 경영한 아내가 책임졌고 남편은 그림과 술만 고집했다. ‘전생에 먹다 남은 술을 마시러 왔다’는 화가. 그러나 붓을 들고 그림에 몰입하면 몇 달이고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다.
이번 전시를 마련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내가 1960년대 반도화랑에 근무할 때부터 장욱진 전시를 담당했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갤러리현대에서 장욱진 10주기전을 비롯해 가장 많이 전시해왔다.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건립이 계획돼 있지만 그의 업적을 감안하면 25주기, 30주기 등은 대규모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전시와 함께 장욱진이 타계 전까지 작업했던 경기 용인의 장욱진 고택(근대문화재 제44호) 작업실도 재현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입장료 3000원. (02)2287-3500 [경향신문 유인화 선임기자 2010-01-06]
'나무와 새' 1967
갤러리현대 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