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선생의 가야금에서는 달빛냄새가 난다. 청아한 그의 가야금 연주는 댓잎에 듣는 빗방울이었다가, 빠르게 일어나는 구름이었다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였다가, 이윽고는 고요한 달빛이 되어 천지간에 흐뭇이 내려앉는다. 잦아지는가 싶다가 사뿐 살아나는 산조의 선율은 천상의 궁궐에 사는 요정이 서둘러 은하수를 건너가는 작고 날랜 걸음새도 같고, 그 요정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열사흘 달빛 같기도 하다.
흰 명주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고 무대 위에 앉아 있던 선생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조용한 카리스마라고 할까. 옷고름을 한 쪽으로 가지런히 개키고 정좌를 하고 앉은 모습에서 긴 세월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의 기품이 넉넉하게 배어나는 듯 하였다. 그가 악기를 받드는 손길은 첫날 밤 새신랑이 신부의 저고리 앞섶을 풀 듯, 조심스럽고도 경건하였다. 어떤 무대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대가다운 풍모라 할까.
선생의 가야금소리에서 나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만나고, 결 고운 비단치마가 풀숲을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른 봄, 꽃들이 벙글어 터지는 소리와 늦가을 들녘의 바람소리를 만난다.
명기(名器)도 명기(名技)를 만나야 빛을 발하는 법. 좋은 연주가를 만나지 못한 악기란 나무토막에 불과할 뿐이다. 벙어리 나무통에 혼을 불어넣어 감추어진 소리를 길어 올리는 일이 훌륭한 연주가의 몫인 것이다. 그가 아껴 연주하는 가야금은 자고동(自枯桐)으로 만들어졌다 한다. 자고동이란 바위틈 같은 데서 자라다 스스로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일컫는데, 악기 중에서도 가야금은 자고동으로 만든 것을 최상으로 친다. 밭둑에서 쉽게 자란 오동은 소리가 잘 나지 않고 힘들게 자란 오동일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 하니, 맑고 야무진 소리를 내는 대금이 쌍골죽과 같은, 돌연변이성 병죽(病竹)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시련과 좌절을 겪은 사람만이 인생의 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듯이, 한이 한없이 안으로 잦아들어 죽을 고비에 이르러야만 심금을 뒤흔드는 절창의 가락을 쏟아놓게 되는 것일까.
선생의 연주는 섬세하면서도 거침이 없고 유려하면서도 열정적이었다. 잠든 가얏고를 무릎 위에 얹어 놓고 뜯고 퉁기고 누르고 흔드는 손놀림이 성애를 알지 못하는 신부의 관능을 지극한 사랑으로 일깨워 가는 남정네의 손길만큼이나 정성스러워 보였다.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휘모리로 풀어내는 산조가락의 흥취는 켜켜이 쌓인 여인의 정한이 주춤주춤 불씨를 머금다 마침내는 환희의 절정으로 치달아 휘황한 불꽃으로 산화해버리는, 한바탕 육체의 향연과도 같았다. 즐거우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은(樂而不流 哀而不悲), 선계의 가락이 달빛처럼 충만하다. 나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신 새벽 호숫가. 이제 막 번데기에서 깨어난 나비가 달빛에 젖은 날개를 턴다. 조금씩, 조금씩 푸드덕거리며 서툰 날갯짓을 시작한다. 달빛 사이로, 나비가 날아오른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노랑 바탕에 까만 무늬가 찍힌 호랑나비, 보랏빛 작은 날개를 가진 부전나비, 모시나비, 제비나비, 배추흰나비, 꼬리명주나비...... 하늘은 오색 날개로 눈부시고, 날갯짓 소리로 세상이 현란하다. 연주가와 악기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는 신비스런 법열의 춤사위. 도도한 악흥이 빛의 꽃가루가 되어 칠흑의 세상 위에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나비들이 하나 둘 내려앉는다. 술렁이는 축제도 막을 내리고 호수에는 달빛만 교교하다. 제의를 치르듯 숙연하게 줄을 뜯던 선생의 손길도 멈추어 있다. 지악무성(至樂無聲) -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고즈넉한 정적이 깃든다. 밝은 달무리를 삼킨 것처럼 비로소 가슴이 환하게 트여 온다.
최민자 피천득 선생으로부터 “어떤 찬사도 아끼지 않는다”는 칭찬을 들은 최민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수필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우리나라 대표 수필가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했다(1988). 현대수필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흰꽃향기』(청조사_2002), 『꼬리를 감추다』(문학사상사_2008), 『열정과 냉정 사이』(문학관_200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