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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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의 '환영'
보고 있나요, 당신을 위한 이 춤
이주향 | 수원대 교수ㆍ철학
귀스타브 모로, ‘환영’
1875년, 캔버스에 유채, 103×142㎝,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파리.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꿀만 먹고 사는 거친 남자, 그가 저 환상 속의 그대, 세례요한입니다. 가진 것도 없지만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 그는 거칠 것 없는 야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를 죽인 헤롯왕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권력자였다면, 그에게 죽은 요한은 광야의 바람을 호흡하는 당당한 사내였습니다.
그런 사내를 죽게 한 여인이 저기 저 춤추는 팜므파탈, 살로메입니다. 모로가 공을 들인 살로메를 보십시오. 춤을 추고 있는 그녀는 옷을 입은 걸까요? 보석을 걸친 걸까요? 저렇게 세련되고 섹시하게 꾸민 걸 보면 그녀 스스로도 도발을 즐기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녀는 누구에게 팜므파탈인가요?
원래 그녀의 춤은 헤롯왕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녀와 그녀의 어미는 헤롯왕의 마음을 움직여 광야처럼 거친, 정직한 비판에 서슴없는 요한을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로의 그림에서 헤롯은 존재감이 없습니다. 헤롯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나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살로메 등 뒤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존재감 없는 왕, 그가 헤롯입니다. 형식상 살로메의 춤은 왕 헤롯을 위한 것일 텐데, 헤롯은 그녀의 춤에 관심이 없고 그녀도 헤롯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의 춤이 향해 있는 곳은 세례요한의 환영입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살로메는 요한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사랑이 집착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질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살로메의 질투의 불꽃은 요한의 목을 향하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진 것이라곤 낙타 털옷 한 벌밖에 없는 야성의 남자가 보석으로 휘감을 수 있는 자신을 숭배하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을 질책하고 있으니 얼마나 얄밉겠습니까? 권력에 기대 뭐든 할 수 있는 여인은 요한을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갖고 싶은 것,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밟아 죽이는 것은 소유욕의 사랑이니까요.
모로는 상징주의자로 분류되지요. 상징주의자에게 환상은 거짓이 아닙니다. 상징주의자들은 합리적이고 사실적인 것 너머의 신비가 생을 보다 깊은 진실 속으로 인도한다고 믿었습니다. 모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로지 내가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
저 그림을 참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봤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친 광야에서 고독하게 살면서도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허허로이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남자 요한이 그렇게 못난 사람들의 질투와 두려움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 사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헤롯왕도 원래는 요한을 좋아했지 않습니까? 흐르고 넘치게 가졌으면서도 늘 자신이 가진 것이 자신을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남자가 가진 것 없어도 부족한 게 없는 대범한 남자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헤롯은 진실을 말하는 요한의 말을 경청했나 봅니다. 마가복음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종종 분별력 없는 괜한 약속으로 큰 사고를 치는 소심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유약한 남자가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헤롯이 요한의 목을 달라는 살로메의 말에 요한을 죽인 것이 그 꼴인 거지요. 아, 자신이 속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죽인 남자의 완강한 어리석음이여, 그것은 자신이 언젠가는 통합해야 할 야성의 에너지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로는 저 그림에서 왕을 무기력하고 무표정하게 그려냈나 봅니다.
자, 그리고 살로메입니다. 춤을 추고 있는 그녀는 어떨까요? 춤의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쓰레기를 날려버리는 힘! 춤을 추는 여자였기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요한의 매력을 파악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녀는 춤을 추면서 깨달을 것입니다. 집착과 질투 때문에 그녀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춤을 추면서 가벼워진 몸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살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죽어서도 죽지 않은 요한의 당당한 눈빛인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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