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인어공주 이야기> - 김종호 지음 / 허남준 그림

라라와복래 2011. 8. 14. 22:08
 

인어공주 이야기


김종호 지음

허남준 그림


문학과지성사 2011-07-04


“영혼을 잃고 거품이 되어도 알지 못할 이야기”

소설가 김종호가 쓰고 화가 허남준이 그림을 그린 <인어공주 이야기>. 제목은 <인어공주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이 책에 없다. 기존의 동화를 비틀어보는 식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역시 아니다. 이 책을 쓴 소설가 김종호는 그의 첫 번째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에서 글쓰기 자체가 저자를 쓰는, 죽음이 존재를 쓰는, 욕망과 무의식이 주체를 쓰는, 상상이 현실을 쓰는 그런 불가능한 텍스트를 ‘검은 소설’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런 ‘검은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를 한없이 낯선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못하다. “이야기는 소설의 한 요소일 뿐, 이야기가 없는 소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문예중앙 2010년 가을호)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데 어느 정도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던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문학 작품에서 흔히 기대하는 ‘소통’과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작가가 이야기라고 이름붙인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 있다면 ‘시점’일 것이다. 누가 언제. 그러나 김종호가 가장 철저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프롤로그’에서 다섯 명의 언니들 둔 막내 인어공주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지만, ‘언니들’에서는 각각의 언니들이 막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는 인어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또다시 다른 누군가이다. 아니,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어느 시간에서 흐르는 이야기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롭게 시작된다. 그것은 노래였다가 시였다가, 대화였다가 혼잣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듣는 자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설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 자체가 이 소설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이야기’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힘든 건, 설명이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함께 그 자신이 분리되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분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밝힌 김종호는 지금 “스스로 아름다운 시”처럼, 설명을 통해 소설에서 아름다움을 분리하려고 하는 그 본질과 싸우고 있는 중인 듯 보인다.


한편 김종호는 두 번째 소설집 <산해경草>에서 “차라리 문학의 윤리는 불순하고 음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세계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와 결별할 때만 발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조를 벗어나야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말은 <인어공주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허남준의 그림이다. 화가이자 사진가로 아카이브 프로젝트 전시를 하는 허남준의 그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김종호와 함께 4년여 동안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해오면서, 그 역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낯선 인어공주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울림이 있는 그의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은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구체적인 캐릭터와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거기서 전해지는 느낌 자체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은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잠깐! 이 소설책을 사실 때 159페이지 이후 167페이지 전까지, 그러니까 160~166페이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백지인데 절대 파본이 아니니 출판사를 욕 욕하며 반품하지 마시라. 작가의 의도란다.ㅎ

 

작가의 말

이 책은 아름답고 음란한 책이다.


아름다움이 음란함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힘든 건, 설명이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함께 그 자신이 분리되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음란함은 서로 나뉘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려드는 순간, 그 설명이 결국에는 아름다움과 음란함을 서로 분리시키고 만다. 더 이상 아름답지도 음란하지도 않은 단어의 조각들에서, 우리는 설명만으로 결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음을 알아보고 이해하게 된다. 설명의 미덕은 단지 그것뿐이다. 아름다움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음란함 역시 그것이 음란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자들과 문장들이 그 자체의 빛을 가지고 있듯이. …나는 그 빛을 어둡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빛과 어둠 또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어들은 반대말을 가지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어두운 빛을 뿜어낸다.


스스로 아름다운 시가 있는 반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분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면에서 시는 소설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소설 역시 시와 다르게 아름답다. 그 이유는 아름다움을 소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악마적인 속성과의 싸움이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설이 더 이상 소설 자신을 문제 삼지 않을 때 아름다움은 소설에서 분리되고 만다. 음란함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아름답고 관능적인 책은 많지만, 아름답고 음란한 책은 흔치 않다. 왜 그럴까? 관능이 건드리지 않는 것을 음란이 건드리기 때문이다. 바로 윤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은 아름답고 음란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책이다. 이 책이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는지 끝없이 회의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낸다면, 어느새 당신의 가슴 한 구석에 한 권의 검은 책이 웅크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리라. 어떤 경우든 회의하는 자만이 윤리적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자는 회의하지 않는다. 당신은 윤리적이고 나는 회의하지 않는다. 이 책을 거리낌 없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만지작거리던 시간이 더 길다.

나는 계속 바라봤다.

나는 계속 바라본다.  

 

김종호 1970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으로 <검은 소설이 보내다> <산해경草>가 있다.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허남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화가이자 사진가로 아카이브 프로젝트 전시를 하며, 원맨밴드 ‘Big π’와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으로 홛동 중이다.

인쇄 불가! 이 단정치 못한 소설을 어찌할꼬!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

_ 안성호(소설가)

 

독자와 계약을 파기한 소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건 법으로 금지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가와 독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 관계에 놓여 있다. ①지루하면 던져버릴 겁니다 ②당신의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③저는 감동받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저에게 책 무게만큼이라도 감동을 한번 주세요!


소설가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계약 위반이다. 바라나시 강변에서 하시시(마약의 일종)를 하는 어느 나병 환자의 방언 같기도 하고, 세계 도처에 지사를 둔 어느 이야기 넝마주이의 수습 안 된 소설 같기도 하다. 등장하는 언니들은 한결같이 무시무시하고, X자로 타이핑 된 육두문자는 방송 불가처럼 '인쇄 불가' 판정을 받을 만하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인어공주 이야기>는 읽다가 쓰러질지언정 읽어 치워야 하는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김병욱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자신의 소설은 영화가 될 수 없다며, 그런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같은 책에서 '육체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이 소설이 그러하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영화가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는 소설이다. 저주 받은 땅과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고, 악취가 풍기고, 삶과 죽음이 뒤엉킨 이야기가 썩은 시체를 발로 밟은 것처럼 물컹댄다. 이런 소설 세계를 열 수 있고 지탱 할 수 있는 소설가는 귀하다. 계약은 위반했어도, 독자들이 받을 보상은 충분하다.


책을 펼쳐보자. 뒤죽박죽 실마리를 잡기가 쉬워 보이지 않지만, 이 불친절한 소설가의 검은 잉크 자국을 좇아가다 보면 그가 역설하고자 하는 지점에 서 있게 된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나 미래, 15세기 간디아 앞 바다에서나 풍문으로 들었을 법한 인어 이야기를 듣고 있다. 흑사병이 창궐해서 시체가 바다로 던져지는 풍경을, 어느 쇠락한 교회 종탑 옆에서 바라보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공포 이면의 가장 인간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살점이 터져 검은 피가 흐르듯 노래가 나오고, 죽어야 영원히 사는 시간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음란하지만 지극히 아름답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망가진 사랑 기계의 검은 녹물들

김종호는 그의 첫 번째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열림원 펴냄)에서 글쓰기 자체가 저자를 쓰는, 죽음이 존재를 쓰는, 욕망과 무의식이 주체를 쓰는, 상상이 현실을 쓰는 그런 불가능한 텍스트를 '검은 소설'로 명명했다. <인어공주 이야기>도 이 '검은 소설'의 연장선에 있다.


내 눈이 어두웠던 탓일까. 사람의 팔과 다리를 달고 삐걱 비틀거리며 새카만 어둠을 뒤집어쓰고 걷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게 되었단다. (47쪽)


나는 가끔 계단을 내려오면서 발보다 먼저 휘청거리는 두 팔이 계단 저 밑에 툭 던져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21세기 도시에 기생하는 누구나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무거운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할 때면, 이 건사하기 힘든 육체가 집 앞마당에 그냥 툭 널브러져 있으면, 방안 옷걸이에 척 걸쳐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이나 상상, 혹은 환상이나 공상 뭐 그런 거 말이다.


불온하고 단정치 못한 소설 <인어공주 이야기>는 그러한 도착(倒錯)을 그리고 있다. 사랑이 삶을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욕망이 된 이상, 사랑의 기착지는 죽음이다. 소설가는 이 죽음을 포장하는 기술을, 육포를 씹듯 질겅질겅 들려주고 있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동화의 상상력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하지만 행간을 들여다보면 시적 언술이 적지 않고, 사유의 깊이 또한 깊다. 이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하는 소설가의 전략이다. 행간 속에서 툭툭, 눈에 들어오는 사유들! 내면 깊이 살점처럼 박혀 있던 사적 진술들이 붉은 반점처럼 드러난다. 이 사유들은 곧잘 소설의 형식을 벗어나기 일쑤다. 애초부터 질서를 부여받지 못한 소설이니까.


'프롤로그'에서는 다섯 명의 언니들 둔 막내 인어공주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지만 '언니들'에서는 각각의 언니들이 막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는 인어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또 다시 다른 누군가이다. 아니,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어느 시간에서 흐르는 이야기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롭게 시작된다.


그것은 노래였다가 시였다가, 대화였다가 혼잣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듣는 자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그곳에 아름다움이 와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만든 '새것'들

<인어공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 펴냄)가 떠오르기도 한다. 글투에서도 닮은 부분이 있고, 문장에서도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다르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범신론에 근거한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더 이상 타락하고 추락할 곳이 없는 인간 군상들의 삶에 비춰보는 죽음 얘기다. 소설가가 상상력으로 만든 움푹한 세계에서, 소설가는 망가진 사랑 기계를 수리하고 있다.


평평한 곳을 놔두고 왜 움푹한 세계로 독자들을 잡아당기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이런 불온한 소설이 한국문학의 저변을 넓힌다고 본다. 도저히 맥락이 잡히지 않는, 흉측한 현실 삶을 역설해 내는 이 기괴한 소설에 박수를 보낸다.

 

[글 출처]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81216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