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고은과의 대화](38) 난 가난할수록 밤하늘 별을 먹어야 했지

라라와복래 2012. 7. 8. 08:58

[고은과의 대화](38) 양 세기의 달빛

난 가난할수록 밤하늘 별을 먹어야 했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해방 후 한국인의 내면을 구성하는 양대 축은 절대 빈곤과 좌우 갈등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뿐 아니라 먼 후일까지 비켜설 수 없는 근원적 원체험으로 작동했어요. 황량한 폐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의와 염치를 버리고, 때로는 슬픔조차도 바락바락 울어서 타자를 인질화하는 도구로 사용했어요. 폭력 앞에서는 체념과 순응으로, 연민 앞에서는 자해적 신파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 지독한 조선 활극의 시대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여쭙지 않을 수 없어요. 저 비루한 현실의 바깥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물(物)이 아닌 영(靈)의 영토 같은 것 말입니다.

고은 흔히 어린아이의 정신 상태와 꿈의 상태는 유사하다고 말하지. 나에게도 유아기를 지나는 동안 꿈속의 나와 꿈을 깬 뒤의 현실의 나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네. 꿈의 이론들은 꿈속의 세계란 꿈 뒤에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꿈꾸는 동안 흥건히 가슴을 적신 땀이나 꿈속에서 꼭 쥐고 있던 주먹을 꿈을 깬 뒤에도 쥐고 있던 사실로 보자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항상 모호했던 기억이 있네.

김형수 동어반복 같지만 육신에 잠이 있다면 정신에게는 꿈이 있었네요.

고은 그렇기도 하네. 어쩌면 꿈은 고대의 인자(因子)가 작동하는 것인지 몰라. 내 의식이나 자각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서 나 자신은 하나의 환(幻) 속에 있는 것이 꿈 아닌가. 10대 이전부터 10대를 넘어서까지 나는 공중추락의 꿈이나 비행의 꿈이 하나의 악습처럼 지속되었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마이아 사이에 태어난 불사의 신 헤르메스가 공중비행을 마음껏 했다는 것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공중비행의 꿈을 경험한 데서 생겨난 신화라는 학설도 있지. 신화는 현실의 적자이거나 사생아이니까.

김형수 낮 시간은 이성의 때이고 밤은 신화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건강한 상식과 노동을 주고 달은 감성적 행위와 꿈을 주지요. 무거운 출세의 갑옷을 벗으면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는 젖먹이가 된다고 할까요?

고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도 그 우주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계일 테지.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하는 그 경계 해체에 이르러 그는 공자·맹자 같은 현실주의가 아닌 초현실적 몽상주의의 예술에 이르렀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유교만큼 좋아하는 노장세계의 꿈과 이상의 허구들 아닌가. 유교는 현실의 척도 그 이상이 아니지. 나는 애초부터 비유교적이야. 아마도 지구의 인력이나 중력의 현실보다 그것들의 절대로부터 이탈하려는 인류의 원시적 비약 본능이 어린 나에게까지 이어져서 내 꿈속의 무한추락으로 진행되었던 셈인가 하네.

김형수 꿈속의 추락을 인력과 중력으로 상상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고은 지상에 발 디디고 있던 내가 지상 일탈의 허공 속으로 떨어져 가며 그 공포로 소리를 쳐도 끝내 소리가 되지 않는 절망이었지. 그러다가 깨어난 뒤 그 공포와 절망의 잔영 속에서 안도감도 아니고 허탈감도 아니게 가슴팍이 흥건하게 진땀으로 덮인 낭패감으로 옴짝달싹도 못했지. 이런 악몽을 할아버지는 ‘자라나는 꿈’ ‘크는 꿈’이라고 달래 주었어. 꿈에 꿈을 풀이하는 해몽이 있는 것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앞서 꿈의 현실과 연결시킴으로써 현실의 어떤 전조나 가능성으로 삼는 오랜 꿈 풍속을 만들어냈지. 꿈의 공리주의야.

김형수 꿈도 생시처럼 관찰할 수 있습니까?

고은 나는 꿈속의 캄캄한 우주 허공의 체험과 현실에서 밤하늘이 펼치는 우주감을 언제부턴가 비교하기 시작했어.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임에도 거의 근원적으로 하늘에 눈을 돌려 왔어. 그것은 하늘의 여러 현상에 좌우되는 지상의 운명 때문일 거야.

김형수 어떤 포스터에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라는 문구가 있어 하도 좋아서 외웠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가 오독했더라고요.

 

그림 | 임옥상 화백

고은 어차피 하늘은 오독의 대상 아닌가. 해가 뜨면 밝은 세상이고 해가 진 뒤의 어둠은 무서운 두려움이 증폭되지. 그래서 인간의 심리 밑바닥에서 공포는 암흑을 통해서 한층 더 강화되겠지. 빙하기, 간빙기의 그 자연폭력을 주도한다 싶은 하늘이야말로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의 소재지로 여겼겠지.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나 하늘을 첫째로 삼고 정작 자기 자신이 발붙인 땅이 그 다음이 된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음양론으로도 하늘은 수컷이고 땅은 암컷이 되지. 그럴 뿐 아니라 인류가 여느 동물의 차원에서 차츰 떨어져 나옴으로써 동물세계와 구별된 것도 하늘 의식이 생겨난 것과 지상 현실에의 적응진화가 동행한 사실에서 확인되겠지.

김형수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태양빛이 허공을 지날 때 황금색이 된다 하여 유목민도 칸의 혈족을 황금가문이라 하고, 금나라도, 또 한국의 김씨도 햇빛을 성씨로 삼은 것 아닙니까.

고은 그래서 고대 유목민 아리안이 태양의 자손이고 이집트 파라오도 태양의 적손이고 고조선족은 해의 겨레붙이가 아닌가. 어느 곳에서나 해 없이는 살 수 없는 생명이므로 해의 신앙을 낳는 것, 해의 마당인 하늘 지향의 의식과 정서가 생겨난 것은 당연하지. 그래서 일원론은 해의 사상이고 다원론은 별의 사상이기도 하겠지.

김형수 하나의 달이 밝아지면 천 개의 강이 빛나는 것처럼요?

고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때마다 저 조상 대대의 역사 가계를 원인으로 삼는 것도 이런 하늘 중심의 원리를 닮은 것이겠지. 모든 왕조사에서 건국 시조인 태조로부터 세계(世系)를 내려오듯 말이네. 나는 해방시기 중학교 국사교과서를 통해서 고조선의 단군이나 기자, 위만,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등 삼국과 고대 조선의 왕 이름들을 외우면서 거기에 우리 역사의 실체감을 가지기도 했지. 교과서 국사는 온통 왕조사관뿐이었지. 그럴진대 항상 현재의 나는 과거의 역대 생존자들의 서열 끝에 맺은 마지막 결실이 되지. 자손이란 조상들의 대대 음덕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이제껏 전통사회에서의 추원보본(追遠報本)이라는 과거에의 사명이기도 하지. 과거는 절대 근본이니까.

김형수 인간 존재가 과거를 정신적·심리적 힘의 원천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현상 같은데요.

고은 이런 시간 속의 질서와 다를 바 없이 지상의 인간 척도는 늘 지상이 아니라 천상의 어디에다 그 기원을 두고 하늘에 귀의하거나 하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는 객체로 자처하거나 해온 것이 고대 점성술이나 고대 천문학에 앞선 종교적 원점이 아닌가.

김형수 그런 사고의 흔적은 제가 어렸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의 유목민에게도 꽤 남아 있습니다. 가령 해나 달, 별을 향해 욕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행위, 해와 달이 뜬 쪽으로 오물을 버리거나 대소변을 보는 행위는 하늘을 더럽힌다 하여 삼갔으니까요. 그래서 거울 조각으로 햇빛 장난을 치면 오줌싸개가 된다 하고, 처녀가 정월 초이틀 달을 보면 예뻐진다는 속설 같은 것들이 생겼습니다.

고은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타자로부터의 기원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어린 시절의 꿈속 추락의 공포도 나의 생존지점에서의 인력 해체로 인한 허공 속의 고아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하늘이나 우주나 내가 있는 곳에 에워싸인 공간이지. 결코 내가 있게 된 원인은 아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 말이네. 이것은 천동설의 지구 중심주의와 다를 바 없고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도 그대로 들어맞을 낡은 생각이겠지만 내가 하늘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사절하는 것은 결코 낡은 생각이 아니겠지. 또한 조상 대대의 한 계통으로만 단일 체계의 끝이 아니기를 꿈꾸기도 했어. 역사의 역대 왕의 그것이나 일본 천황의 만세일계(萬世一系)의 그 수직 계보의 단독 노선으로는 나의 현재는 타율적이고 기계적이란 말이지.

김형수 폴 발레리가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드>를 쓰면서 가장 큰 생명이 죽으면 그 안에서 사는 작은 생명의 외부(세계)도 죽으니, 큰 생명이 척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그것이 자꾸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고은 그래서 이상(李箱)의 익살스러운 진술대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로 과거로 소급해 볼 수 있지 않은가. 단군으로부터 나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말일세. 이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시작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뻗어 올라가고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쪽으로 뻗어 올라가게 되지. 거기서 더 소급해 가노라면 나 하나의 점이 무한한 세계 확장으로 나아감으로써 이윽고 세계 전개의 현재 진행이 되어 무수한 가계들의 나열로 우주가 채워지게 되지. 그 꼭대기는 하나가 아니라 억조창생의 무한이겠지. 말하자면 내 허공추락의 악몽이 할아버지가 달래느라고 말한 ‘네가 자라느라고 그런 꿈을 꾸는 것이야’라는 것이 실제로 내 존재의 무한화를 연동시키지 않았나 하네.

김형수 아, 명료해집니다. 전에는 ‘나로부터 뻗어 올라간다!’는 말에 감춰진 함의를 잘못 알아들었어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방식이 왕조사관을 낳는 것을요.

고은 전깃불은 고사하고 석유 등불도 아껴야 하는 해방시기의 농촌이 맞이하는 그 칠흑 같은 태초 그대로의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한층 더 깊은 것으로 강조하는 찬란한 별빛들이야말로 나와 우주의 밀애(密愛)를 실현해 주었어. 그러니까 밤이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불온하고 일상적으로는 귀신이나 도깨비 그리고 강도의 공포를 촉발하는 한 구석에서 나에게는 우주와의 만남을 이루는 은밀한 자아체험의 시간이었어. 부시 2세 정권 때 국방부 럼스펠드의 장관실에 한반도 위성사진이 걸려 있었지. 밤의 한반도 사진이야. 북은 암흑이고 남은 전등불빛으로 환한 사진 말이네. 남의 축복은 어쩌면 어둠의 축복을 모르는 것이기도 하지.

김형수 훗날 제주도에서 쓴 시입니까? 저녁 우주와의 밀애를 ‘을파소’는 마치 소설로 묘사하듯이 살리고 있습니다. 절창이에요.

고은 별들은 육안으로 2000개 내지 6000개를 헤아릴 수 있다 하지. 히말라야에서는 별들의 세계가 한층 더 가까워서 육안 8000개의 식별이 가능하다는데 고개가 갸웃할 노릇이기는 하지.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우리에게는 조상대대로 천문학이기보다 인문학이었네. 아니 별들은 인간 운명을 주재한다고 여겨져 왔어. 심지어 인간 하나하나는 별 하나하나의 씨앗이기도 했으니까.

김형수 유목민의 신화를 들어보면, 북두칠성은 인간의 띠를 관장합니다. 첫째 별은 쥐띠, 둘째는 돼지띠, 소띠, 셋째는 개띠, 호랑이띠, 넷째는 닭띠, 토끼띠, 다섯째는 원숭이띠, 용띠, 여섯째는 양띠, 뱀띠, 일곱째는 말띠의 운명을 맡는다는 거예요.

고은 이집트나 인도가 태양 하나에 집중되는 천문사상을 이룩한 것하고 좀 다르게 중국 황하지역의 농경 철학은 해와 달의 주야, 양과 음으로 배정될 때 그 상위에 북극성을 두었던 모양이네. 그래서 북극성이야말로 제성(帝星)이고 추성(樞星)이었지. 불교도, 도교도 온통 북극성으로 여래를 삼고 보살로 삼거나 심지어 태양을 관장하는 천극성(天極星)으로 불리는 천제 태일(太一)의 거처이기도 하지. 이같은 고대 천문 신앙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한 어린이도 북극성을 알게 되고 북두칠성과 삼태성을 알게 됨으로써 밤하늘에의 상상력을 시작한 것이지. 사실인즉 인간의 성장은 별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는지 몰라. 별이야말로 지상의 중력과는 다른 우주의 자력(磁力)으로 지상의 인간 심성을 끊임없이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네.

김형수 광활한 정신에는 커튼이 드리워질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밀폐된 방’이 아니라 강과 바람과 맹수들이 달리는 대지의 생명에 접근해 있어요. 어린 날의 명상도 그렇게 자랐겠죠?

고은 어린 시절의 고향에서 그 밤하늘의 별 하나만큼 풍요한 세계를 나에게 베풀어준 것은 없다네. 나 자신이 가난할수록 나는 별을 먹어야 했지. 쌀은 동나도 별은 동나는 일이 없지. 아마도 인간이 하늘을 우러르는 것은 인간의 유한이 우주의 무한에게 닿아 있다는 증거이겠지.

김형수 식민지의 밤하늘에서 해방된 후에는요? 비록 생경한 이데올로기로 칠갑한 체제일망정 선생님은 한 국가의 깨어남과 때를 같이 한 세대예요.

고은 돌아다보자면 어둠이나 별 그리고 꿈의 세계 따위의 상상적 진원지에 대한 자기 동일성은 해방시기의 결코 편안할 수 없는 사회정세를 그대로 반영하는 상황에서도 가능했어. 그것은 식민지 시기의 고난 중에도 조선 인구는 줄어들지 않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잇는 것처럼 하나의 엄연한 생사로 펼쳐졌지. 북두칠성이 멀리멀리 지상까지 내려와 인간의 생사를 주재한다는 천문 신앙을 낳게 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우익의 학련에도 좌익에도 가담할 줄 모르는 한 촌락 소년으로 화가의 꿈에 시인의 꿈까지 더해졌지만 그런 꿈을 누구한테 자랑할 줄도 모르는 무명의 소년이었지.

김형수 아무리 어려워도 일제강점기보다는 나았을 것 같아요. 최소한 군산항에서 마구 실어 가던 쌀은 우리 땅에 남았을 거 아닙니까?

고은 해방시기 3년은 아버지의 농토가 불어나서 일제 말기의 절양농가의 참상은 더 이상 없었지. 논도 더 생겼고 밭도 더 생겼어. 그리고 소도 있어서 별채 끝에 외양간을 지었지. 그 소에 쟁기를 매달아 논밭을 가는 농번기에는 우리 논밭뿐이 아니라 동네 논밭도 품삯을 받으며 갈아주었어. 그런 일을 머슴이 해냈어. 그 소를 도둑맞은 빈 외양간이 지금도 생각나네. 지린내만 남은 그 텅 빈 곳 말이네.

김형수 에고, 소는 엄청난 재산 아닙니까? 자식이 아픈 건 몰라도 소가 아프면 잠을 못 잔다고 했는데.

고은 100여 호의 마을에 소를 부리는 집은 두 집이었고 유성기(축음기)가 있는 집은 한 집이었어.

김형수 유성기를 가질 정도의 집에는 임방울이나 이화중선도 한 번쯤 들렀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정치인을 그런 유지들이 만들었는데….

고은 이화중선이라는 이름은 진작에 알았지. 1948년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가 있게 되었어. 유엔 감시로 남북 총선거를 실시할 애초의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단독정부의 토대가 그 총선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김형수 출마한 이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고은 양일동이라는 서수면 거주의 사람이 후보로 나왔어. 일제시기 사상가로 감옥에 드나들던 사람이지. 그는 언제나 방에 앉아 있을 때 뒷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문으로 형사가 들이닥치면 그 뒷문으로 뛰어나갔다는 전설이 있었지. 또 한 사람은 두희철이라는 식민지 시대 순무식자로 면장을 지낸 사람이었고 강모라는 사람은 그 뒤로도 다섯 번이나 낙선하고 파산한 대야면 거주의 농민이었지.

김형수 양반, 유지 중심의 사회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려고 변화하는 과정이 가관이었을 거예요.

고은 선거라는 것이 이 땅에 최초로 있게 되었어. 언제나 상부의 임명을 받고 말단 동네 구장까지 발령을 받는 제도밖에 모르는 세상에 한 표 한 표를 받아서 당선되고 낙선되는 선거야말로 정치와 사회 일반의 새로운 풍속이었어. 그것의 그늘이야 아직 알아차릴 까닭이 없었지.

김형수 경찰과 우익단체들이 투표소에서 농민들에게 식량배급표에 도장을 찍도록 해서 투표율을 높였다고 읽었습니다. 송기숙 선생님이 선거로 뽑는 벼슬을 ‘동냥치 벼슬’이라 했다는데, 평소에 한심하게 여기던 아랫사람들에게 지지를 구걸해야 하는 형식적 절차에 대한 탁월한 촌철살인적 은유가 아닌가 합니다.

 

 

을파소

밤이 깊어서 길은 누에들처럼 깨어 있다.

우리를 위하여 멀리까지 깨어 있다.

다친 조랑말 을파소야

서둘지 않고 가자.

우리는 무슨 일에도 함부로 후회하지 않는다.

삶이란 그다지 숭엄하지 않고

또 삶이란 그다지 비천하지 않다.

하늘에는 거미줄이 자라고

때때로 별빛이 거기에 걸리며 내려온다.

아무리 큰 소리를 가진 사람도

별을 아무리 아무리 부를 수 없다.

우리는 흔들리는 수레에 실은

빈 그릇에 밤을 온통 담았을 뿐이다.

길은 더욱 몇 갑절로 친밀해진다.

네 부지런한 흉년의 방울 소리는

지나는 길에서 잠들 때도 있다. 을파소야

서둘지 말고 가자.

(하략)

 

  출처 : 경향신문 2012.06.0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082112145&code=210100&s_code=af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