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별똥이 떨어진 곳 - 정지용

라라와복래 2012. 7. 8. 19:51
 

 

별똥이 떨어진 곳

_정지용

밤뒤를 보며 쪼그리고 앉었으라면, 앞집 감나무 위에 까치 둥어리가 무섭고, 제 그림자가 움직여도 무서웠다. 퍽 치운 밤이었다. 할머니만 자꾸 부르고, 할머니가 자꾸 대답하시어야 하였고, 할머니가 딴 데를 보시지나 아니하시나 하고, 걱정이었다.

아이들 밤뒤 보는 데는 닭 보고 묵은 세배를 하면 낫는다고, 닭 보고 절을 하라고 하시었다. 그렇게 괴로운 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워 참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둥어리 안에 닭도 절을 받고, 꼬르르 꼬르르 소리를 하였다.

별똥을 먹으면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별똥을 줏어왔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날밤에도 별똥이 찌익 화살처럼 떨어졌었다. 아저씨가 한번 모초라기를 산 채로 훔켜 잡어온, 뒷산 솔푸데기 속으로 분명 바로 떨어졌었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밤뒤: 밤똥

*모초라기: 메추라기

*솔푸데기: 솔 포대기

 

출전: <정지용 전집 2 : 산문>(민음사)

 

정말 제 어렸을 때만 해도 밤에 똥 누는 일을 금기시했습니다. 어른들이 왜 그러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더랬습니다. 방영웅의 장편 <분례기>에서 주인공 똥예가 파국을 맞는 화근도 ‘밤뒤’를 보다가 그러지 않던가요. 아마 예전에는 뒷간이라는 게 마당 밖 후미진 데 있던 데다가, 못 먹고 살던 때라 애들 밤새 배 꺼지지 말라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지용이 1937년 <소년>지에 발표한 원고지 두 장 반짜리 수필입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우리글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멸종한 우리 문장입니다. 리듬을 보세요. 우리네 말길을 잘 따르고 있어요. 주어가 ‘나’와 ‘할머니’, 또는 ‘자연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서너 호흡 긴 문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불끈 짜듯 한 마디로 맺어 놓고는, 또 유장합니다. 이야기는 세 번 건너뛰는데 애들 말버릇처럼 거침없고 시원합니다. 이야기 뻗은 자리가 아득히 높습니다. 풍경이 있고, 자연과 신화에 조응하는 정신이 있고, 흐뭇하고 막막한 서정이 있습니다. 이런 글 한 편 짓고는 한 열흘 한정 없이 놀아도 좋을 듯싶어요.

문학집배원 전성태의 문장 배달

 

정지용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일제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6.25 때 평양에서 폭사한 것으로 추정됨. 시집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산문집 <문학독본> <산문> 등이 있음.

낭독_최성원 배우. 연극 <왕의 남자-이> <사랑은 비를 타고> 등에 출연.

캐리커처_박종신 / 음악_배기수 / 애니메이션_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