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아주 짧은 초상화] 얼룩 - 한승오(농부)

라라와복래 2013. 3. 14. 11:51

[아주 짧은 초상화]

얼룩

한승오 | 농부

집안이 휑하고 낯설다. 독신생활이라 세간은 많지 않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거실 한쪽에 있는 앉은뱅이책상과 텅 빈 거실 바닥 한가운데 놓인 어항 속의 붉은 금붕어 두 마리가 전부다. 책상은 원래 아버지가 쓰던 것인데, 그녀가 물려받아서 지금까지 써 왔다. 그녀는 그 책상을 허투루 처분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만 그 누가 지금 그녀에게는 없다. 금붕어는 다섯 달 전쯤 그녀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다음날 사온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곤 자신밖에 없는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너무도 끔찍해서 그랬던 것인데, 이제는 그 살아 있음을 감당하기 어렵다. 금붕어 또한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만, 마찬가지로 그 누가 지금 그녀에게는 없다. 지난달부터 그녀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치료의 가능성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그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일 그녀는 기도원에 들어갈 작정이다. 물론 자신에게는 의지할 만한 신앙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허물어져가는 몸과 마음을 내맡길 곳은 달리 아무 데도 없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세간을 정리하고 처분해 왔다. 마치 지나온 삶을 깨끗이 정리하기라도 하듯. 하지만 삶의 흔적이란 화상의 자국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은 것인지 모른다.

거실 바닥 깊숙이 들어온 한낮의 햇살이 눈부시다. 햇빛 알레르기 때문인지, 그녀는 거실 창의 블라인드를 반쯤 내린다. 그늘이 엷게 드리운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책상서랍 정리를 마지막까지 미루어왔다. 서랍 속 편지들을 한꺼번에 태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인생이 한순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고 오래된 편지묶음을 꺼낸다. 묵은 종이 냄새가 따라 올라온다. 그녀는 가느다랗고 노란 고무줄에 묶인 편지묶음을 푼다.

편지묶음의 뒷부분에는 엽서들이 있다. 그녀는 엽서들 중 제일 앞에 있는 엽서를 손에 든다. 앞면에는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사진이 있다. 여동생이 그녀에게 보낸 첫 엽서. 뒷면에는 ‘꿈이 시작한다’는 단 한 줄의 글귀가 씌어 있다. 이십오 년 전, 대학에 갓 입학한 동생의 풋풋하고 패기에 넘친 얼굴이 떠오른다. 그 엽서를 시작으로 동생은 그녀에게 많은 엽서들을 보냈다. 집에서 함께 지낼 때건 서로 헤어져 있을 때건 동생은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엽서를 보냈다. 그 엽서들은 앞면에는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대개 단 한 줄의 아주 짧은 사연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엽서들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어떤 엽서 앞에서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하고 어떤 엽서 앞에서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검은 새가 그려진 엽서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엽서의 그림 밑에는 작은 글씨로 ‘오윤, 검은 새, 목판에 채색’이라고 씌어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가 나온 동생이 보낸 엽서. 그림의 검은 새는 검은색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있고 눈자위는 하얗고 눈동자는 검다. 그림의 사방에 둘러쳐진 굵고 검은 테두리는 꼭 무언가를 가두어놓는 창살을 연상케 한다. 엽서의 뒷면은 단 한 줄의 사연도 없는 하얀 공백이다. 그때 그녀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그녀는 어떤 답신을 보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아예 답신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공부에만 집중했고 일체의 것을 잊고 싶어했다. 아버지와 동생을 그리고 한국을.

그녀의 벗겨진 머리에 땀방울이 조금 맺힌다. 엽서를 넘겨가던 그녀의 손이 한 엽서에서 멈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간 동생이 한동안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 몇 달 만에 집으로 보낸 엽서. 그림에는 하얀 작업복을 입은 젊은 여자와 남자가 앞뒤로 서 있고 그 앞에는 미싱이 놓여 있다. 여자는 긴 머리칼을 뒤로 묶고 목에 노란 줄자를 두르고 있고 남자는 짧은 머리에 야윈 몸매이고 재단용 곡자를 손에 들고 있다. 그림 밑에는 작은 글씨로 ‘노동예술단, 공장의 불빛, 벽화’라고 씌어 있다. 엽서 뒷면에는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 노동의 새벽’이라는 글귀가 있다. 엽서에는 발신인의 주소가 없다. 당시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있던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구로’라고 희미하게 찍힌 우편소인을 좇아 구로공단의 공장들을 뒤졌다. 두 사람은 끝내 동생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딸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아버지의 한탄이 귀에 맴돈다.

그녀는 감은 눈을 뜨고 다시 엽서를 넘긴다. 햇살이 가득한 마당에 하얀 민들레 한 송이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그림에 그녀의 눈이 한참 머문다. 그녀가 명신농업학교 교사로 일한 첫해에 동생이 보낸 엽서. 뒷면에는 ‘햇빛 조심!’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그녀는 잠시 눈을 돌려 거실 창을 바라본다. 반쯤 내려진 블라인드 밑으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이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명신농업학교를 택했다. 머리와 가슴과 손을 고루 발전시키는 전인교육을 하겠다는 학교의 교육목표가 그녀의 교육철학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햇빛 알레르기는 그녀의 철학과는 전혀 무관하게 작동했다. 늘 하얀 양산을 펼치고 긴 팔 옷에 긴 바지를 입고 다녀도 시골의 강한 햇빛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교사들의 햇볕에 그을린 새카만 얼굴과 그녀의 햇빛 알레르기는 서로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학교에서 늘 겉돌았다. 엽서를 볼 당시에는 피식 웃고 넘겼지만, ‘햇빛조심’은 단순히 햇빛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의 벗겨진 머리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린다.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긴장을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항암치료 후부터 그랬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고 다시 엽서를 넘긴다. 엽서를 넘기는 그녀의 손길은 점점 더뎌지고 조금씩 떨리기까지 한다. 마치 절대 열지 말아야 할 어떤 문에 다가가는 손길처럼. 그녀는 힘겹게 한 장의 엽서를 손에 든다.

칠 년 전, 아버지와 사는 집에서 꼼짝없이 삼십대 초반을 보내고 있던 동생이 보낸 엽서. 유일하게 아무런 그림이 없는 엽서다. 뒷면에는 ‘나에게 내일은 뭘까?’라는 단 한 줄의 사연이 씌어 있다. 엽서가 그녀에게 도착한 지 일주일 후, 동생은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엽서를 든 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세 달 전쯤 어느 봄날에 동생은 그녀를 찾아왔었다.

“언니, 나 시골에 와서 농사짓고 살고 싶어.”

“시골생활은 가혹해. 특히 여자에게는. 또 아버지는 어떡하고?”

“언니는 자기 마음껏 살면서 나는 왜 그러면 안 돼.”

“나도 마음대로 살아온 건 아냐.”

“사방이 꽉 꽉 막혀 있어.”

“요즘도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니?”

“가끔.”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한 마디 말을 내뱉고 굳게 입을 다물었던 동생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어디도 아닌 곳을 보고 있던 동생의 텅 빈 눈이 떠오른다. 그녀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기억이 지워질 기미는 없다. 단지, 긴 머리칼의 감촉이 어깨에 전혀 와 닿지 않는 차갑고 공허한 느낌뿐. 어쩌면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동생이 먼저 가고 없다는 게.  [경향신문 201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