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이성복 시집 - 래여애반다라

라라와복래 2013. 5. 1. 12:27

래여애반다라

이성복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2013년 1월 11일 발행

시인 이성복이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2003) 이후 십 년 만에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를 묶어 냈다. 언뜻 낯설기만 한 제목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는 신라 시대 향가 ‘풍요(風謠)’의 한 구절로, 이 여섯 글자 이두는 ‘오다, 서럽더라’로 풀이된다. 신라 백성들이 불상을 빚기 위해 쉼 없이 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고됨과 서러움을 위안하고자 불렀던 이 노래가, 이번 시집의 들머리에 놓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의 맑은 ‘죽지랑의 못’(죽지랑을 그리는 노래)과 맨 끄트머리에 놓인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바라봄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던 한 그루 ‘기파랑의 나무’(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를 각각 입구와 출구로 삼은 “이성복의 풍경”(문학평론가 김현)을 바라보고 드러내는 데 긴요한 열쇠 구실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박한 삶, 생(生)-사(死)-성(性)-식(食)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했던 대학을 뒤로하고, 지난해 이순(耳順)을 맞은 시인은 모두 여든두 편의 시를 여섯 개의 장에 나눠 실은 시집 <래여애반다라>에 자신의 육십 해 인생과 지금껏 발표한 여섯 권 시집의 자취를 고루 담아내려 했다.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 바로 우리들 삶임을,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누구나 예외 없이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기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하여 우리는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생(詩/言語/文學)의 ‘불가능성’을 거듭 되씹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노라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하고 또 허허롭다.

우리 모두는 이미 1980년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등장과 함께 이성복의 시가 충격하고 매혹한 한국문학사의 한 장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치욕의 시적 변용”(문학평론가 김현)이라 불린 그의 시가 구체적 체험과 도저한 사유에 기초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적 상상력으로 상실과 절망, 치욕과 고통, 열망과 환희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 우리 역시 들쑤셔지는 생의 통증과 무엇에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깊고 깊게 앓았다.

그동안 시인은 삶의 치욕과 고통을 감내하며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라고,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남해 금산>, 1986)라고 고백함으로써 서정적 자아의 날카로운 직관으로 획득한 시적 상상력을 변증법의 형태로 완성하기도 했다. 비껴갈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사랑의 언어로 발설하면서 세계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기도 했고(<그 여름의 끝>, 1990), 바로 그 사랑의 눈으로 훨씬 더 일상에 밀착하여 명료하고 강렬한 시적 진술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의 깊이를 보여주기도 했다(<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고 사물의 부피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정확한 언어로 남루한 생(生)이 일순 아름답게 탈바꿈하는 비밀한 순간들도 숱하게 쌓여 갔다(<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시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외국 시를 인용하고 여기에서 비롯된 시인의 단상과 시적 열망을 기록한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개정판 2012) 역시 우리 삶의 허기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매 순간 순간 시퍼런 불가능의 기록

“겉똑똑이 머리를 잠재워두고 몸속 깊은 곳을 들락거리며 쉼 없이 연상의 물질”을 길어내고, “언어라는 연약한 물풀에 몸을 감고 밤새 뒤척이며 날 새기”를 기다려온(<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시인의 몸은 이제 어디에 닿아 있고 그 시선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향가 ‘모죽지랑가’에서 그 제목을 따온 시집의 서시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에서 시작된 덧없고도 안타깝고, 낯설고도 서러운 그리움의 시선은 ‘찬기파랑가’에서 빌려온 말미의 시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에 이르는 전체 여든두 편에 입사(入射)하듯 가득 넘쳐난다.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부분

대체로 한 면을 넘기지 않는 간결한 행과 연으로 구성된 1부의 시들은 각각의 제목이 말해주듯, 사람이나 사물의 형태를 가리키는 명칭과 일상 언어에서 비롯된 바라봄-드러냄, 그 순간순간의 탁월한 성찰이 담겨 있다. 대구와 반복, 절제된 언어의 리듬은 가볍고도 은근하며, 사물과 사물, 겹겹의 시선으로 긴밀한 관계 속에 이어지는 이성복의 연상(聯想)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시적 발견이 시인을 가장 들뜨게라도 하듯.

너무 세게 껴안지는 말라시던

아버지 말씀,

어지간히 껴안아선

젖지도 않던 아버지,

아버지 구름의 구름 말씀 ―‘구름’ 부분

양 옆으로

돌리고 앞으로 디밀어도 보았지만

어딘가, 어딘가 도무지 닿지 않았다

(까마득한 계단을 헛디디거나, 발 디딘 나뭇가지가 가뭇없이 부러지는 느낌도

그러했으리라) 그날 아침 흐린 눈 씻고

들여다보니, 내가 꽁초를 비벼 끄려 한

곳은 스테인리스 재떨이의 빈 구멍이었다 ―‘구멍’ 부분

‘(~에 대한) 각서’나 ‘이별 없는 세대’, 조각, 그림 등 각각 동일한 제목으로 묶인 2부의 시들에서는 소멸하는 삶, 닳아 가는 육체 혹은 그 육신의 모방이나 재현을 대하는 시선과 사유가 깊어진다. 시집 <남해 금산>(1986), <그 여름의 끝>(1990)을 통해 익숙해진 의문과 청유, 감탄의 (높임체로 종결되는) 지순하면서도 격정적인 목소리로 삶의 구조, 생의 진실을 일깨우는 노래들 또한 만나게 된다.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번 생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 ―‘노래에 대한 각서’ 부분

생쥐같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 ―‘생에 대한 각서’ 부분

희부옇게 타다 만 꽃,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 다리 꽃, 철사로 동여매도 아프지는 않을 거다 그 꽃잎 마른 번데기처럼 딱딱하고, 눈비가 씻어간 고름 자국 찾을 수 없다, 죽음이 불타버린 꽃 ―‘죽음에 대한 각서’ 부분

내 살의 바깥에 있는 습도 높은 정적은 언제 또 살이 되었습니까? 고요한 살의 뻘밭을 수놓는 모세혈관을 따라가면, 당신을 나를 만나줄 때까지 거기 있으렵니까? ―‘이별 없는 세대 3’ 부분

그냥 물이 아니라 한사코 헤엄치는 물

그냥 땅이 아니라 무작정 기어가는 땅

한 세월 너는 그렇게 오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누드’ 부분

3부에서 5부에 걸쳐 수록된 시들은, “생-사-성-식의 불길한 화환과 불후의 먹이사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한번 떨어지면 다시는 못 나오는 심연”(시인의 산문)의 삶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구체적인 사적 체험 속에서 밝혀내고 있다. 대상의 외피를 뚫고 국부에 도달할 때까지 매섭고 거침없는 시선과 예의 “참 까칠한 슬픔”(청도시편 1)에서조차 여러 통각을 자유자재로 언어 감각은 결코 무뎌질 수 없다.

우리 집 방바닥은

너무 높거나 너무 낮다

너무 높을 때는 아내가 엄마 대신

나를 몹시 때릴 것 같고

너무 낮을 때는 봄 대신 가을이 쳐들어와

내 기쁨 패대기칠 것 같다

나는 우리 집 방바닥이 계단처럼 여러 칸이었으면 좋겠다

첫번째 계단에는 결혼하기 전

알던 여자를 눕히고

그 바로 위 계단에는 그녀가

낳아보지 못한 내 아이를 누이고 싶다

눕기 싫다고 아이가 앙탈하면

내가 대신 기저귀 차고 드러눕고 싶다

아니면, 피로에 지친 암캐미처럼

나 혼자라도 알 까고 싶다

그리고 문득 눈 감으면

그 모든 계단들이 부챗살처럼 접혀

아무도 내 생각 들여다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창작연습 1’ 전문

지금 일몰의 공터 이면 도로에 맥없이

서 있는 너의 완강한 이빨에

동네 아이들이 걸어준 때 묻은 팬티는

때로 우스꽝스러움도 살육의 취미와 슬픔의 토사물 못지않게

끔찍한 네 힘의 일부라는 것을 말해준다 ―‘포크레인’ 부분

때로 수컷 뚝지가 쫓아내도, 쫓아내도 떠나지 않는 암컷 뚝지를 기어코 밀어내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안 떠나려고 버둥거렸는지는, 혼자서 풀이 죽어 떠나가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대왕문어의 밥이 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엔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보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할 거지, 바보야 ―‘뚝지’ 부분

오늘 아침 내 앞에 놓인 생은 소 여물통 같다 이제는

쓸모없이 툇마루에 놓은 그것은 거의 고단한 기억이나

다름없다 미세 먼지가 그림자처럼 내려앉고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그곳에 일찍이 나의 양식과 노고와 눈물과

회한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목백일홍의 화사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꿈은 이제 죽은 목백일홍의 꿈으로만

남아 있다 ―‘나의 아름다운 생’ 부분

아저씨, 쉬 하는 데가 어디예요?

변기를 코앞에 두고

바퀴벌레보다 더 작은 인간의 새끼가

눈 똥그랗게 뜨고 또 물었다

갑자기, 노란 작은 오이꽃 속에 묻어 있는

진딧물처럼 내가 부끄러워졌다 ―‘화장실에서’ 부분

이젠 눈 씻고 찾아보아도 지도엔 갈 곳이 없다

마음속 勃起는 꺼지지를 않고……

저기, 절름거리며 허리 굽은 노파가 지나간다

노파의 지팡이를 빼앗아

아직 딴딴하게 부어오른 그것을 후려치고 싶다

이놈은 얼마나 맞아야 제가 주인공이 아님을 알까 ―‘청도시편 3’ 부분

막막하고 끝내 서러운 삶, 참 아파도 너무 아픈 인생

사람도 사물도 이제 더는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싶을 때 시인이 내딛는 다음 발걸음은 의외로 가볍다. 피붙이의 죽음처럼 “고통이 극심할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정신”을 바라보듯, 극단까지 밀어붙여보고 절망의 나락을 경험한 뒤에야 갖게 되는 위안이다. 헛헛한 가슴이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온기, 더는 깊어질 수 없는 상처, 좀체 소리 날 것 같지 않은 울음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다.

그 한심하고 가슴 미어지는 線은 그러나, 참 한심하고 가슴 미어진다는 기색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내리고, 그때부터 울렁거리는 가슴엔 지워지지 않는 기울기 하나 남게 되지요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가졌지만 의지가지없는 이들에겐 더욱 뚜렷한 線,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날 때 두고 가야 할 기울기, 왜냐하면 그것은 온전히 이 세상 것이니까요 ―‘연에 대하여’ 부분

그날 밤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헐떡거리던 청년의

내려진 팬티에서 검은 고추, 물건, 성기!

이십 분쯤 지나서 그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의 검은 고추는 아직 내 생속을 후벼 판다

못다 찌른 하늘과 지독히 매운 성욕과 함께 ―‘오다, 서럽더라 1’ 전문

來如哀反多羅 - 오다, 서럽더라

시집 <래여애반다라>에서 우리는, 가볍게 들어가 무겁게 나오도록 배치된 이 세계의 출구 밖에 서서 평생을 아파한 시인의 허무와 절망과 마주하게 된다. 뼈와 거죽이 따로 덜그럭거리는 참으로 깊은 이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다만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진실 앞에 섰을 때 인간이 가지게 되는 투명한 기쁨의 미소일 것이다. 고통이 극심할수록 오히려 더욱 명징해지는 정신의 깨달음, 슬픔과 절망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세상 어떤 존재도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진실 앞에 선 공감과 위안의 미소 말이다.

불어오게 두어라

이 바람도, 이 바람의 바람기도

[…]

보아라,

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

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

걸으며 꾸는 꿈은

壽衣처럼 찢어진다 ―‘來如哀反多羅 7’ 부분

아무리 힘줘도

닫히지 않는 바지 자크처럼

無聲의 아우성을 닮았구나, 나의 생이여

애초에 너는 잘못 끼워진 것이었나?

마수다, 마수! 첫 손님 돈 받고

퉤퉤 침을 뱉는 국숫집 아낙처럼,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이여

어떻든 봄은 또 올 것이다 ―‘來如哀反多羅 9’ 부분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부분

시인의 말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사 시대 진흙으로 빚은 불상들의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회의 표제인 來如哀反多羅는 신라 향가인 풍요(공덕가)의 한 구절로서,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새겨진다. 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이 이두문자를 의역하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로 이해되는데, 그 또한 본래의 뜻과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들을 같은 제목으로 엮어보고 싶은 은밀한 바람이 있었다.

2012년 겨울

이성복

시인의 산문

도대체 불가능에 관한 모든 논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한 번 불가능의 얼굴을 본 사람은 스스로 불가능이 되기까지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것이 제 똥을 주무르는 치매환자의 미소처럼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향락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알아버린 그 불가능의 입구는 생-사-성-식의 불길한 화환과 불후의 먹이사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못 나오는 심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직 인간과 가까이한 죄로 자손 대대로 천형 받은 짐승들처럼, 우리 또한 불가능이 애지중지 기르는 가축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비록 천형을 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천형 받은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사처럼 한 순간, 한 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홀로 문학이라는 암실에서 불가능과 마주하는 일은 고요한 시체 안치소에서 시트를 들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합니다. 지금 제가 어두워야 불가능이 드러나고, 제가 사라져야 문학이 삽니다. 비록 제가 문학적으로 살지 못해도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그처럼 제가 비록 불가능을 잊는다 해도, 불가능이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에서

시인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겨울, 시 <정든 유곽에서>를 계간 <문학과지성>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등과 산문집으로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등이 있다.

*위 글은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시집 소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시집 출간 인터뷰

“내 시세계 정리… 시인으로서 명퇴한 셈”

이성복 시인은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사처럼 한 순간, 한 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잘 만든 음반은 개별 곡의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곡의 순서와 노래 사이의 공백, 여운까지 치밀하게 계산된다. 디지털 음원이 해낼 수 없는 경지가 거기에 있다. 시도 마찬가지여서, 시인은 각각의 시를 개별적으로 쓰지만, 시를 모아 시집으로 묶으면 또 다른 감각이 발생한다. 시집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표제작과 시의 동선만 봐도 시인의 취향과 시집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시를 쓰고 묶고 다듬는데 있어 이성복(61)은 탁월한 시인 중 하나다. 1980년대 문학사에 사건이 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가장 아름다운 시집'으로 기억되는 <남해금산>(1986) 등 그의 시집들은 하나 같이 섬세한 서정시들을 꾸려 거대한 서사를 만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 <아, 입 없는 것들>(2003) 이후 10년 만에 출간한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발행)는 이순을 넘어선 시인의 인생을, 이제껏 내었던 시집들을 정리하는 시집이다.

17일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난 시인은 “이번 시집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조합해 내 안목과 관점을 보여주는 시집”이라며 “(앞으로 시집을 더 출간할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일단 시인으로도 명예퇴직 한 셈”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인은 지난해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명예 퇴직했다.

그는 시집의 서두에서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갔다가 전시회 주제이자 이두문자로 쓴 신라향가의 한 구절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끌렸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오다, 서럽더라’라는 뜻의 이 이두문자를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맛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다(羅)’로 의역하고, 이 여섯 글자에 맞춰 시집을 구성했다.

“내 전 시집이 6권이니까, 그 시집의 특성이 조금씩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돼죠. 1, 2부에서 일상을 가볍게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3, 4, 5부에서 본격적인 ‘생사성식(生死性食)’의 이야기를 펼치고, 6부는 다시 생을 맺는 이야기들이 있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6부로 돼 있는데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야기거든요. (이 시집도) 동일한 거예요. 제목을 신라 향가에서 따왔으니 시집 입구는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출구는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로 정했죠."

“시는 상처받는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생의 '불가능성'을 곱씹는 이성복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하고 또 허허롭다. 36년 전 청년시절 썼던 시 ‘이별 없는 세대’부터 최근에 쓴 시 ‘오다, 서럽더라 4’까지 82편을 한 권에 담으며 시인은 “나란 사람은 시간을 두고도 결국 같은 방식의 발화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때로 수컷 뚝지가 쫓아내도, 쫓아내도 떠나지 않는 암컷 뚝지를 기어코 밀어내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안 떠나려고 버둥거렸는지는, 혼자서 풀이 죽어 떠나가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대왕문어의 밥이 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엔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보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할 거지, 바보야’

시집의 한 가운데 배치된 ‘뚝지’는 시집 전체를 집약하고 있는 시다. 바닷물고기 뚝지를 통해 인생의 ‘생사성식’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일컬어 “걔네의 아픈 사연을 기록하기 위해 쓴 시”라며 “시인의 역할은 증언자, 기록자”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시인은 자신이 인생을 견뎌내는 과정을, 그 생에 깃든 슬픔과 절망에 관한 기록을 들려준다. 그 기록이란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는 것/ (…)/ 바람의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바랜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來如哀反多羅 2)에서 드러나듯 소멸하는 삶, 닳아지는 육체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시는 상처받는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 심연의 바다 같은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왜 사는가, 인생이란 뭔가, 시는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서 나는 시를 쓴다.” [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2013.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