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초상화]
수의 속에 남긴 유서
한승오 | 농부ㆍ작가
시골에 홀로 사는 그녀의 집에 자식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재작년 그녀의 일흔여섯 번째 생일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식들에게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존재임을 잘 안다. 그날 저녁, 두 딸과 막내아들 그리고 그녀가 조그만 개다리소반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은 방안은 조용하고 차갑고 무거웠다. 작은딸이 복숭아를 깎아 접시에 담아서 개다리소반 위에 놓는 소리만이 달그락거리며 방안 공기를 가르고 있었고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선뜻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엇갈리면서 서로를 외면했고 또 그만큼 서로를 의식했다. 마치 한 발의 총성을 기다리며 출발선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처럼 그들은 누군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큰딸이 조그만 포크로 개다리소반에 놓여 있는 복숭아 조각을 집으며 잔기침을 몇 번 하더니, 땅이 경매에 넘어갈 지경이 되었으니 엄마한테 면목이 없다. 먼저 명규 네가 자초지종을 밝혀야겠다, 라고 말문을 열며 아들을 쳐다보았다. 큰딸은 어릴 때부터 계산에 아주 밝았는데, 그때는 똑똑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나이 오십 줄을 넘긴 지금의 딸은 계산에 밝은 정도를 넘어서 집요하고 철두철미했다. 특히 돈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했다. 그런 면에서 초등학교 교사라는 지금의 직분에 큰딸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녀는 생각하지만, 큰딸에게는 그런 생각이 한낱 늙은이의 고리타분한 도덕관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은 큰딸의 시선을 아예 외면하고 방바닥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농협에 땅을 잡히고 삼천만원을 대출받았다는 사실, 또 그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앞으로 일주일 후에는 그 땅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들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들은 그녀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다. 그런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자식들도 모두 멀고 먼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언젠가부터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는데, 그 거리감은 마치 발밑을 소리 없이 스치는 뱀의 감촉처럼 늘 불쾌하고 섬뜩하고 낯설었다. 나이 사십 줄을 넘긴 아들은 여전히 독신이다. 결혼할 마음도 없고 오직 사업을 벌이는 데만 눈이 멀어 있다. 당구장, PC방, 노래방 등등. 심성은 착한데 성격은 무모하고 급해서 돈은 모이지 않고 자꾸 밖으로 새어나간다.
갑갑한 방안에 다시 차갑고 어색한 침묵이 길게 이어지려고 할 즈음 작은딸이 아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게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게 네 땅이니? 우리 땅이지, 라고 조금 큰소리로 다그쳤고, ‘우리 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너희 아버지와 내가 평생을 일궈온 그 땅은 너희들 땅이 아니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작은딸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작은딸은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명규 네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그 땅을 네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거야. 안 그래 언니? 라고 덧붙이며 큰딸을 쳐다보았다.
부지런한 작은딸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집안일을 싫은 내색도 않고 거들어주었던 고마운 딸이었는데 그 부지런함이 오히려 욕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지금은 남편과 함께 24시간 뼈다귀해장국집을 억척스럽게 꾸리고 있어서 돈이 궁한 처지가 전혀 아닌데도 늘 돈에 굶주려 있다. 작은딸의 시선을 받은 큰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 삼우제를 치른 그날 저녁 이 방에서 우리가 했던 말을 명규 넌 기억 못하니? 아버지가 남긴 것은 열 마지기 땅과 이 집밖에 없다. 그걸 당장 돈으로 바꾸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명의를 명규 네 앞으로 해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값이 오르면 적당한 때에 팔자. 그러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몫이 더 크다. 대충 이런 말 아니었니? 라고 준비했던 말을 하듯 빠르게 말하고는 몸을 뒤로 기울여 등을 벽에 기댄 채 아들의 대답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들은 짐짓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내가 왜 그걸 기억 못하겠어? 난 내 땅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어, 라고 말했는데 작은딸이 그 말을 바로 받아서, 그런데 우리 땅을 경매에 넘어가게 만들어? 라고 쏘아붙였고 아들은 그에 지지 않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난들 그러고 싶어 그랬겠어! 난 단지 내 몫을 먼저 썼을 뿐이야, 라고 대꾸하자 곧이어 작은딸이, 네 몫? 넌 그게 도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는데? 라고 따졌고 아들은 머뭇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제사를 모시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 장남 노릇을 생각하면 최소한 누나들 몫보다는 많아야겠지. 내가 빌린 삼천만원은 그 최소한이었어, 라고 꽤 당당한 투로 말한 뒤에 두 딸을 향했던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는데, 그녀는 자기에게 응원을 요청하는 아들의 은근한 눈길이 싫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장남이란 말을 속으로 몇 번 되뇌었다. 그 말은 이미 그녀의 가슴속에서 지워진 지 아주 오래된 말이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작은딸과 아들의 공방을 듣기만 하던 큰딸이 등을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참에 분명히 해둬야겠는데, 라고 입을 연 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유언은 없었어. 그러니 유산은 법률적으로 아들딸에게 똑같이 배분돼.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들 각각에게는 유산의 구분의 이가, 엄마에게는 구분의 삼이 돌아가는 거야. 알겠어? 명규 넌 다음부터 그 장남이란 소린 아예 꺼낼 생각도 하지 마, 라고 작심한 듯 말했고 ‘구분의 이’니 ‘구분의 삼’이니 하는 법적인 셈법을 난생처음 접한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큰딸을 쳐다보았고 작은딸은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그건 불공평해. 언닌 대학공부까지 했잖아. 명규와 난 못하고. 나도 언니처럼 대학공부를 했으면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았을 거야. 난 그걸 보상받아야 해, 라고 말했고 아들 또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큰딸을 쳐다보았는데 큰딸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건 나한테 할 말이 아니잖아. 엄마한테 해야지. 내 몫에서 그걸 떼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라고 차갑게 말한 뒤에 곁눈질로 힐끔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와 동시에 작은딸과 아들의 시선도 그녀에게로 향했다.
저마다의 갈망과 이해타산만이 들끓고 있는 그 시선들은 집요하게 그녀의 눈길을 붙잡으려 했다. 그녀가 그들 시선에 응대하지 않고 허공을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자 작은딸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개다리소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사년 치 대학등록금이면 얼마나 큰돈인데! 명규와 난 그 돈을 받아야 돼. 그래야 공평한 거잖아. 안 그래요? 엄마, 라고 말하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아들의 시선 또한 강렬하게 그 뒤를 따라왔다. 그녀는 자식들을 제대로 대학공부 시키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구차하게 변명할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늙은 어미의 해묵은 상처를 마구 헤집어놓는 자식이 과연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 맞는지를 이제는 자신할 수 없었다. 순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앉아 있던 자식들이 까마득히 멀어진 희미한 타인처럼 보이는 섬뜩한 거리감이 다시금 그녀를 엄습했고 그녀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이 자신의 입을 주시하면 할수록 그녀는 입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작은딸은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엄마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엄마 몫도 결국 우리한테 물려줘야 하잖아요, 라고 말하며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얼굴을 조금 들어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경매와 유산 문제를 둘러싸고 밤새 입씨름을 벌이던 자식들이 그녀의 집을 떠나고, 그녀가 다시 쓸쓸하고 조용한 독거노인의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날 저녁, 방안에 홀로 앉아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벽에 걸려 있는 네모난 농협달력의 귀퉁이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만큼 종이를 찢어낸 다음 방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 달력종이 뒷면에 검정색 볼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나갔다. 너무 힘을 주어 글자를 써나간 탓에 볼펜을 쥔 그녀의 손은 조금씩 떨렸고 종이에 남은 글자 자국은 굵고 깊었다. ‘내 땅에 나를 묻어라.’ 그녀는 독백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녀는 방바닥에서 1미터쯤 높이에 있는 벽장의 얇은 나무문을 열고 구석 깊은 곳에 곱게 개켜져 있는 수의를 꺼내 방바닥에 펼쳤다. 넓게 펼쳐진 수의는 그녀 몸보다 훨씬 컸는데, 그녀는 펼쳐진 수의의 가슴팍 부분에 달력종이를 두 번 접어서 놓고, 수의의 팔다리를 마치 자신의 몸을 접듯 꼭꼭 개켜서 벽장 안에 깊이 넣었다. [경향신문 201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