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김수영 문학관’ 11월 27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개관

라라와복래 2013. 11. 25. 10:05

‘김수영 문학관’ 11월 27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개관

김수영, 조촐하지만 격조 있게 ‘풀’처럼 일어서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김수영(1921-1968)을 기리는 ‘김수영 문학관’이 오는 11월 27일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문을 연다.

도봉구(구청장 이동진)가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방학3동 문화센터(연면적 1200㎡)를 리모델링한 김수영 문학관에는 시인의 작품 초고와 번역 원고를 포함한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이 전시된다. 유품인 탁자와 의자 등을 활용해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서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시인의 원고는 시 179편, 산문 123편, 번역 43편 등으로 문학관 1, 2층에 전시될 예정이다. 문학관의 3층은 도서관, 4층은 강당으로 사용된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김수영 문학관 2층 전시실이 개관을 나흘 앞둔 23일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시인은 태어난 이듬해부터 열네 살 때까지 종로구 관철동에서 살았다. 그가 서울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곳은 한국전쟁 후부터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지냈던 마포구 구수동이다. 그러나 도봉구와의 인연도 깊다. 시인은 구수동에 있었으나 시인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집안의 선영이 있는 도봉구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인은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도봉구 본가를 찾아 형제들의 양계를 돕거나 집필 작업을 했다. 시인의 묘지와 대표작 ‘풀’이 새겨진 시인의 시비도 도봉산에 있다.

김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는 “시인이 도봉구 본가를 좋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가 시도 쓰고 번역도 했다”며 “김 시인의 원고와 유품이 미아 신세가 될 뻔했는데 이번에 문학관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8년에는 김씨가 충북 보은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시인의 유품 중 일부가 도난당하기도 했다.

시인 김수영(金洙映, 1921-1968)

김수영 문학관 건립 논의는 두 갈래로 추진됐다. 김씨는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 문학계 일부 인사들과 함께 덕수궁 석조전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김수영을 비롯한 이상, 박태원, 임화, 염상섭 등 서울 출신 문인들의 문학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종로구 소격동에 서울관을 신축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덕수궁관을 문학관으로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는 구상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도종환 민주당 의원실에서 관련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미술계와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런 와중에 도봉구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봉구는 2011년부터 김수영 문학관 건립을 추진했다. 도봉구는 지자체 홍보를 위해 몇몇 사업을 모색하다 도봉구가 김수영, 함석헌 등 문화계 인사들과 인연이 깊다는 점에 착안했다. 도봉구는 애초 시인의 본가 터에 김수영 문학관을 위한 별도의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도봉구는 재정자립도가 30% 미만으로, 서울시 자치구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 때문에 본가 터를 매입해 별도 건물을 건립한다는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2008년 9월에 지어진 방학3동 문화센터를 리모델링하는 것이었다. 문학관 개관 준비위원회에 참여한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학관은 유품 보존을 위해 내부 시설을 박물관 기준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1개층 공사에만 5억원 이상이 든다”며 “도봉구에서 서울시와 중앙정부 예산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문학관 개관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

추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불거졌다. 시인의 여동생 김수명씨와 부인 김현경씨의 입장이 갈렸다. 김수명씨는 문학관 개관 준비 운영위원회에 참여했지만 김현경씨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김수영 육필 원고와 유품을 도봉구에 기증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자칫 반쪽짜리 문학관이 될 뻔한 것이다. 김현경씨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내게 유품 기증 의사가 없다던 보도는) 오보”라며 “오늘 여기 와보니 문학관 시설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영준 교수는 “(김현경씨는) 독립 건물도 아닌 리모델링인데다 위치가 서울 외곽이라는 점을 싫어했다”며 “김수영 시인의 시 정신에 맞게 조촐하지만 격조 있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잘 합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시인인 이시영 이사장은 “문학관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지만 위치나 규모가 김수영 시인의 이름값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관식은 11월 27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현판 제막식, 기념행사, 축하공연, ‘시인들의 시인 김수영의 현대성’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도 예정돼 있다. [글ㆍ사진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