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하늘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杞人憂天. 기인우천) - 신정근ㅣ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라라와복래 2014. 3. 5. 20:53

하늘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기인우천(杞人憂天)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지구와 혜성의 충돌을 다룬 영화 <딥 임팩트> 중 한 장면.

 

쓸데없는 걱정(?)

기우(杞憂)를 사전에 찾아보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기우’와 ‘쓸데없는 걱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기우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기우는 원래 기인우천杞人憂天 또는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줄임말이다.)

기우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나라 사람의 걱정’ 또는 “기나라 사람이 걱정하다”라는 뜻이다. 기(杞)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또 걱정은 무엇을 걱정한 것일까? 기나라는 은나라가 주도권을 장악한 뒤에 자기 이전의 하(夏)나라 후손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여 명맥을 잇게 해준 나라이다. 나라가 망했지만 후손이 조상을 기리도록 새 나라가 이전의 나라를 배려해준 조치인 셈이다. 이런 일은 민심의 통합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종종 있었다. 걱정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한 것을 말한다.1)

이렇게 보면 기우는 기나라 사람이 자신의 머리 위에 파란색을 띤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한 것을 가리킨다. 하늘이 무너지면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살아남기 어렵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1998)처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재앙’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걱정은 어찌 보면 사람이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가질 만한 주제인데 왜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할까?

보통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아니면 올해 뭘 먹고 살지를 걱정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살게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걱정한다. 하지만 기나라 사람은 하늘의 붕괴를 염려했다. 물론 과거에도 사람들이 하늘을 걱정한 적이 있다. 당시는 하늘이 나라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을까, 누구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을까, 농사철에 비를 너무 많이 내리지 않을까 등을 걱정했다.

반면 기나라 사람은 지금 당장 풀어야 할 현실 문제도 아니고 지금까지 해 오던 걱정도 아닌 전혀 새로운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질문에 익숙하지 않아 상당히 당혹해했고 당혹한 만큼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쉽지 내놓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야!”라는 배제의 논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우주목(宇宙木)

당시 사람들은 기나라 사람의 걱정을 듣고서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이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고 앞으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하늘은 모든 사물의 생명을 낳은 신적 존재이다. 그런 하늘(하느님)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하늘은 회의(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었다. 이런 숭고하고 존엄한 하늘을 두고 “무너지느니 어쩌니” 이야기를 떠벌린다면 그것은 불경죄를 짓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처음으로 던진 것도 아니고 불경죄가 아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땅 위의 사람들은 위의 하늘이 어떻게 될지 고민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나무를 통해 이 문제를 풀었다. 이 나무는 신수(神樹), 세계수(世界樹), 우주목(宇宙木, Cosmic Tre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오늘날 동화,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민화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에는 콩나무가 하늘까지 자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도 신수가 곧잘 나온다. 영국 민화를 바탕으로 한 동화책 <잭과 콩나무>의 중 영국 작가 월터 크레인이 그린 삽화.

이처럼 신화와 민화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나무의 기둥이 집을 받쳐주는 것처럼 땅의 나무가 하늘을 받쳐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신과 사람이 서로 오고 갈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경>과 <국어>에도 중원 지역에 일찍이 세계수가 있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2)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밝히고 있듯이 신수의 존재는 중원만이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공통된 사고의 원형이었다.

하지만 역사 시대에 들어서게 되면 ‘신수’가 하늘을 든든히 바친다는 신화만으로 ‘언젠가 하늘이 무너질지 모른다’라는 곤경을 속 시원하게 풀 수는 없다. 사람들은 점차 하늘의 인격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하늘을 물질(사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공중으로 던지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물질로서 하늘도 끊임없이 올라가는 단계에 있지 않다면 언제가 상승을 멈추고 하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강을 한다면 속도의 문제를 차지하더라도 하늘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 이성의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또는 사람이 하늘을 비롯한 자연물에 대해 신비의 옷을 걷어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나라 사람은 하늘의 신비와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궁금한 것을 궁금하다고 말한 용기 있는 과학자였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누구도 하늘에 대해 물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나라 사람이 오랜 침묵의 시간을 끝내고 하늘을 탐구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왜 하필이면 기나라 사람이 그 질문을 던졌을까? 다소 사변적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중요하다. 하늘에 대한 금기가 어디서 어떻게 깨어지는지 그 진원지를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나라는 망한 나라이므로 더 이상 하늘(하느님)이 자신을 부활시켜주리라 믿지 않게 되었다. 즉 그들은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어나 완전히 주변부로 밀려났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하늘은 신비한 권위로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열리자 기나라 사람은 이성과 과학의 호기심을 더 이상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나라 사람의 질문

이제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기우’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이 이야기는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나온다. ‘열자’는 <장자>에 나오는 전국시대의 인물 열어구(列禦寇)를 가리킨다. 하지만 <열자>는 열어구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위작으로 여겨진다.

보통 ‘기우’하면 기나라 사람이 어리석게도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천서’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풀지 못하는 문제로 끙끙 앓고 있는 기나라 사람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며 불안을 풀어주고 있다. 이제 기나라 사람의 이야기 전체를 찬찬히 살펴보자.

“기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몸 둘 곳이 없게 되리라고 걱정한 나머지 자고 먹는 것을 잊어버렸다.”(國有, 憂天地崩墜, 身亡無所倚, 廢寢食者.) 답을 찾지 못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답을 찾으려고 밤낮으로 자료를 찾고 생각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답은 쉬 나오지 않으니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편히 밥을 먹고 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족들은 ‘맹렬한 탐구자’의 건강을 염려하게 되었지만 그 사람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주위에 알려지자 이웃들도 그 사람을 걱정하게 되었다. 마침 어떤 착한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서 맹렬한 탐구자의 집으로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풀어주고자 했다. 착한 이웃은 먼저 맹렬한 탐구자가 왜 하늘이 무너질지 걱정하는 원인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맹렬한 탐구자는 하늘을 물질(물체)로 알고 있었다. 이에 착한 이웃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기(氣)에서 풀어갔다.

“하늘은 기가 쌓인 것일 뿐이다. 어떤 곳이든 기가 없는 곳은 없다.(天積氣耳, 亡處亡氣) 당신은 몸을 굽혔다 폈다 숨을 내쉬었다 마셨다 하면서 하루 종일 아무런 문제 없이 하늘 가운데서 어디를 가기도 하고 한 곳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걱정하는가?”

하늘은 물체가 아니라 기(氣)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하늘은 던지면 떨어지는 물체와 달리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맹렬한 탐구자는 하늘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맹렬한 탐구자의 걱정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 기(氣)라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하늘의 해, 달, 별들은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즉 맹렬한 탐구자는 해와 달을 하늘에 붙어 있는 물체로 보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접착제로 물건을 붙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착한 이웃은 다시 기(氣)를 끌어들인다. “해와 달, 별과 별자리도 기가 쌓인 것 중에 빛나는 것이다. 이들은 하늘과 달리 떨어질 수 있지만 무한한 기 속에 떨어지므로 무엇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日月星宿, 亦積氣中之有光耀者, 只使墜亦不能有中傷.) 맹렬한 탐구자는 다시 땅이 왜 꺼지지 않는지 물었다. 착한 이웃은 땅이 꽉 차 있으므로 무너지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맹렬한 탐구자는 착한 이웃의 대화를 통해 “하늘이 무너지지 땅이 꺼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았다. “맹렬한 탐구자도 의문이 눈 녹듯이 풀려서 크게 기뻐했고, 착한 이웃도 걱정이 사라져서 크게 기뻐했다.”(其人舍然大喜, 曉之者亦舍然大喜.)

이렇게 보면 기우는 결코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신화의 시대가 끝난 뒤에 사람이 하늘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기인(杞人)은 하늘의 신성성에 꼼짝하지 못하고 감히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질문 있습니다!”라고 손을 들어서 질문을 던진 인물이다. 이로부터 이성이 발동하여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기우는?

중국 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서울 하늘의 모습. 기우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는 여전히 많다.

기인(杞人)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 질문을 듣고서 나름대로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개천설(蓋天說)과 혼천설(渾天說)이 나오게 되었다. 개천설에 따르면 하늘은 우산(버섯) 모양의 둥근 뚜껑으로 되어 있고 땅은 평평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잘 나타내는 말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 있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주장이다. 개천설은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나서 한(漢) 제국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별은 하늘에 매달려 있다.

혼천설에 따르면 우주는 달걀 모양을 닮았다. 즉 달걀의 흰자와 껍질이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듯이 하늘이 땅을 둘러싼 모습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하늘의 반은 땅 위를 덮고 반은 땅 아래에 있게 된다. 태양은 하늘의 길을 따라 돌며 일주운동(日周運動)을 한다.

지금은 더 이상 개천설과 혼천설로 우주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론이 아무리 철 지난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우(杞憂)에서 비롯되어 하늘(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자 맹렬하게 탐구해 온 여정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근대의 화학이 연금술에서 시작되었듯이 후대의 기준으로 보면 과거의 시작(개천설ㆍ혼천설 등)이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인류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우(杞憂)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진보를 이룩해냈다. 그렇다고 우주와 지구의 모든 비밀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 봄이 되면 중국 발 황사는 우리를 괴롭혔다. 지금은 황사가 온갖 미세물질과 결합해서 사시사철 박무를 이루고 있다.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지만 우리는 황사와 스모그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해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해지자 지구 온난화의 현상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내려서 북극곰이 살아갈 터전이 줄어들고 해수면 온도의 상승으로 해양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일어난다고 말하지만 워낙 거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라 그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직접적이며 결정적인 대응 관계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과연 기우(杞憂)를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기인(杞人)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인은 하늘(우주)에 대해 과학적 탐구를 촉발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기인처럼 식음과 숙면을 전폐하고 지구 온난화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고 있는가?

주석

1) 역사에서 기(紀)나라는 망한 은(殷)나라를 기리는 송(宋)나라와 함께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의 나라로 자주 나온다. 예컨대 강을 건너는 적을 공격할 수 없다고 하다가 패배를 당한 송나라 양공(襄公)이나 벼가 늦게 자라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해서 벼 포기를 뽑아 올린 송나라 농부의 이야기 등이 있다.

2) 중국의 우주목(宇宙木)과 관련해서 신정근,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사계절, 2010, 68~72쪽 참조.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4.03.0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37&contents_id=50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