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不亦快哉 불역쾌재!) - 신정근ㅣ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라라와복래 2014. 7. 5. 12:02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불역쾌재(不亦快哉!)

<삼국연의(三國演義)>에 사용된 삽화.

 

사대기서(四大奇書)

교과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쓰는 교재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시대를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는 ‘인생 교과서’이다. 종이와 전자책의 꼴로 되어 있는 학교 교재는 수업이 끝나면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반면, ‘인생 교과서’는 살아가는 내내 곁에 두고 읽을 만하다. 이 교재는 책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스포츠, 사고, 체험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인생 교과서’를 읽어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책을 보면서 꿈과 낭만을 키운다. 지금 중년인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삼국연의(三國演義)>나 <수호전(水滸傳)> 등을 주로 읽었다. 이 책들은 고전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여 모두들 권장하는 필독서이기도 했다. 학교 교재는 안 읽어도 공통 교과서는 꼭 읽은 셈이다. 책을 읽고 나면 친구들끼리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오는 인물 중 누가 좋은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늘날 아이돌 가수의 팬끼리 간혹 다툼을 벌이는 것처럼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등장하는 인물을 두고 친구끼리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나 <수호전(水滸傳)>은 <서유기(西遊記)>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명(明)나라 ‘사대기서(四大奇書)’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금병매(金甁梅)>는 ‘19금’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다른 책과 달리 어른들 몰래 쉬쉬하면서 읽곤 했다. 그런데 왜 그냥 ‘소설(小說)’이라고 하면 되지 ‘기서(奇書)’라고 하는 것일까?1) 또 ‘사대기서(四大奇書)’가 소설이라면 왜 하필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생겨난 것일까?

뒤의 물음부터 풀어가 보자. 사실 ‘사대기서(四大奇書)’는 우리나라 드라마에 상투적으로 쓰이는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형태의 ‘사대기서(四大奇書)’는 명(明)나라 때 출현한 것은 맞다. 하지만 ‘사대기서(四大奇書)’의 주요 줄거리는 멀게는 당(唐)나라부터 가깝게는 원(元)나라까지 이미 이야기 형태로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걸치면서 원형의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서 장편이 되고, 그것이 다시 단락으로 나뉘면서 지금의 꼴을 갖추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사대기서(四大奇書)’는 명(明)나라 때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소설이 늦게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의 경우, 일찍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쓰였으며, 로마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 역시 장편 서사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그리스나 로마에 비해 소설이 늦게 등장한 것일까? 중국은 일찍부터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기록해 왔다. 그 글들은 시간과 사건을 중심으로 편집된 역사의 틀 안에 갇혀 문학이라는 옷을 입지 못했다. 물론 이를 문사일치(文史一致)의 사례로 취급하여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허무는 설명도 있다.

이처럼 소설이 늦게 등장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소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리가 정서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마주할 때 “사실이 아닐 거야!”라며 믿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금병매(金甁梅)>나 <수호전(水滸傳)> 등을 처음 봤을 때 그 이야기를 허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어떻게 이런 일을 버젓이 글로 표현할 수 있느냐?”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이 자신의 정서와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를 상(常)과 기(奇) 또는 정(正)과 사(邪)로 분류한다. 상(常)과 정(正)은 늘 보는 익숙한 세계라면 기奇)와 사(邪)는 새롭고 낯선 세계를 말한다. 또한 정(正)은 윤리적인 맥락에서 올바른 상태를 뜻하고, 이와 반대로 사(邪)는 타락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소설에 ‘사대기서(四大奇書)’라는 말이 붙은 것을 보면 당시 소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문예는 가치(이념)를 담아야 한다

사실 ‘사대기서(四大奇書)’가 모습을 나타내기 이전에 역사와 소설(산문)도 있었고 사(詞)와 시(운문)도 있었다. 이를 문예라고 본다면, 왜 이것들은 기이하거나 낯설다는 평가를 받지 않은 것일까? ‘사대기서(四大奇書)’가 출현하기 전에 문예 창작과 문예 비평은 신성한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개성과 특징이 드러나고 구성과 표현이 아무리 빼어나다고 하더라도 문(文)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감정이 마음에서 움직인다는 ‘정동어중(情動於中)’과 문예가 가치(이념)를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는 ‘문이재도(文以載道)’였다.

문예와 관련해서 가장 초기 문헌으로 <시경(詩經)>과 <예기(禮記)> ‘악기(樂記)’ 편을 주목할 만하다. <시경(詩經>은 민가, 연회와 제사의 노래 등 다양한 시가를 수록하고 있다. ‘악기(樂記)’는 음악의 기원과 목적을 다루고 있다. 둘은 각각 시와 음악이라는 다른 장르를 논의하고 있지만 문예 창작의 동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뜻을 같이한다.

‘악기(樂記)’에서는 “감정이 마음에서 움직여서 소리로 형상화된다.”(情動於中, 故形於聲)라고 하고 ‘모시서(毛詩序)’에서는 “감정이 마음에서 움직여서 언어로 형상화된다”(情動於中, 而形於言)라고 말한다.

또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시는 뜻이 나아가는 것으로 마음에 있으면 뜻이 되고 언어로 드러나면 시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라고 말한다. 이로부터 ‘시는 뜻을 말한다’는 ‘시언지(詩言志)’라는 테제가 나오게 되었다. ‘악기(樂記)’와 ‘모시서(毛詩序)’의 내용을 종합하면 음악과 시는 정서적 반응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지는(動, 之)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보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악기(樂記)’와 ‘모시서(毛詩序)’는 개인의 순수한 감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악기(樂記)’와 '모시서(毛詩序)'는 정(情)과 지(志)를 정치적 교화와 연결시켜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즉 이 정(情)과 지(志)는 어떠한 외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개인의 순수한 내용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정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시와 시조를 보면 충신이 유배를 가서도 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악기(樂記)’와 ‘모시서(毛詩序)’가 말하는 정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위진(魏晉) 시대 혜강(嵆康, 223-262) 등은 ‘악기(樂記)’와 ‘모시서(毛詩序)’의 ‘정동어중(情動於中)’과 ‘시언지(詩言志)’의 테제를 뛰어넘어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시도했다. 그들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어느 정도 문풍을 변화시켰지만 하나의 완전한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는 궁정 생활과 귀족의 일상을 화려한 언어로 장황하게 수식하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나라 한유(韓愈,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지나친 형식성과 장식성에 빠진 문단을 비판하면서 선진(先秦) 시대의 문장을 본받자는 고문(古文) 운동을 주장했다. 이때 그들은 문예와 도를 연결시키는 ‘문이명도(文以明道)’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나는 젊었을 때 문장을 지으며 수사에 공을 들였다. 철이 든 뒤에 문장은 도를 밝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 이제 문예는 정치의 목적성을 벗어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문예가 정치의 존재 이유를 규정하는 도(이념)를 나타내자 우회적으로 정치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이다. 즉 문예는 현존하는 권력, 즉 협의의 정치를 찬양하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났지만, 현존하는 권력을 규제하는 이념, 즉 광의의 정치를 담아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통서(通書)> ‘문사(文辭)’에서 문예와 도(이념)의 관계를 한층 분명하게 규정했다.3)

“문예는 도(이념)를 싣는 바탕이다. 바퀴와 끌채를 예쁘게 꾸미더라도 사람이 쓰지(타지) 않으면 쓸데없이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 하물며 텅 빈 수레는 무얼 더 말하겠는가? 문예의 수사는 기술이고 도덕은 실질이다. 실질을 두텁게 하고 문예가 그것을 표현할 경우 아름다우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게 된다. 현자는 배워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가르침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이 문예에 담기지 않으면 퍼져 나가더라도 멀리까지 가지 못한다.” (文所以載道也, 輪轅飾而人弗庸, 徒飾也. 況虛車乎? 文辭, 藝也. 道德, 實也. 篤其實, 而藝者書之, 美則愛, 愛則傳焉. 賢者得以學而至之, 是爲敎. 故曰: 言之無文, 行之不遠.)

주돈이(周敦頤)는 중국 문예사에서 제일 먼저 문예와 도(이념)의 관계를 ‘문이재도(文以載道)’로 규정했다. 이 이래로 ‘문이재도(文以載道)’는 다양한 심급(深級)으로 문예의 창작과 비평을 규정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능력이 없다면 시 한 수를 지을 수 없었다. 또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문예 작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문이재도(文以載道)’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예컨대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은 검열과 심의의 대상이다. 70~80년대는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문예 작품을 판매 금지시키기도 했다. 요즘은 등급제를 통해 문예 작품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동심(童心)과 성령(性靈)의 진정(眞情)

‘문이재도(文以載道)’가 문예 창작과 비평의 규범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각각의 입장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문이재도(文以載道)’를 긍정하는 사람들은, ‘문이재도(文以載道)’를 통해 문예의 창작과 비평 기준이 뚜렷해졌다고 말한다. “어떻게 창작하고 비평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기 때문이다. 반면 ‘문이재도(文以載道)’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등장으로 문예의 창작과 비평이 이념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문예의 폭이 좁아졌으며, 이념을 저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풍부한 정신적 영역이 창작과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생에서 친구를 만나서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흉금을 터놓는 정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이재도(文以載道)’에 따르면 도와 어긋나지 않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문예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쌓이는 울분을 풀어 놓으면 얼마나 통쾌한가? ‘문이재도(文以載道)’에 따르면 도를 지키면서 겪는 삶의 고초도 문예로 나타낼 수 없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기쁘고, 부모가 노쇠해지는 모습이 얼마나 슬프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생업이 얼마나 자잘한가? ‘문이재도(文以載道)’에 따르면 도를 지키면서 느끼는 삶의 애환도 마음껏 문예로 풀어낼 수 없었다.

이 모든 즐거움, 아름다움, 울분, 통쾌함, 슬픔, 기쁨 등이 하나같이 서슬 푸른 ‘문이재도(文以載道)’의 기준 앞에 무참히 넘어졌다. 글을 쓰려고 해도 의식할 것이 많으니 차라리 붓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 세계가 비록 진지하고 엄숙할지는 몰라도 사람의 숨통을 조일 정도로 꽉 막힌 억압의 특징을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명(明)나라 중기에 이르면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문이재도(文以載道)’의 규제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지면서 그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예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사대기서(四大奇書)’는 바로 이렇게 느슨한 공간에서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수호전(水滸傳)>의 108명 영웅 중 임충이 양산(梁山)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살펴보자. 임충은 원래 경호 부대의 촉망받는 중진급 교관이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악묘(岳廟)에 분향하러 갔다가 고관대작의 수양아들 고아내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고아내는 임충의 아내에 반해서 희롱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고아내는 임충을 없애고 그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온갖 흉계를 꾸몄다. 임충은 모함을 당해 유배를 가면서도 유배 생활이 끝나면 아내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고아내는 사람을 시켜서 고의로 화재를 일으켜 유배지의 임충을 죽이려고 했다. 그제야 임충은 자신이 고아내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양산으로 귀의하게 되었다.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히는 소설 <수호전(水滸傳)>의 한 장면.

고관대작의 탐욕과 부정 그리고 처벌은 일찍이 <좌전(左傳)>과 <사기(史記)>의 역사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처음에 악이 승리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선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구조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선징악의 해피엔딩도 일어나지만 정의에 대한 신뢰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부조리가 있다. 이처럼 강고한 악이 활개를 쳐서 웬만한 관리조차 벼랑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유일신의 심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므로 임충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은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는 세상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염원과 상상은 도덕과 법에 ‘발칙하게’ 보일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꿈틀거릴’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사대기서(四大奇書)’가 도덕과 법으로 재단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힐 즈음에 ‘청언소품(淸言小品)’도 그 모습을 보였다. ‘청언소품(淸言小品)’은 생활에서 우러나는 체험으로 짧은 경구 형식을 빌려 자의식을 강하게 표현하는 글이다. 구분을 하자면 ‘청언소품(淸言小品)’은 술에 취한 듯 놓치고 사는 인생의 포인트를 일깨워주는 성미(醒味)와 읊조리면 입에 감기는 맛을 주는 운미(韻味)가 있다.4) 예를 들어 장조(張潮, 1659-?)의 <유몽영(幽夢影)>에 나오는 한 구절을 살펴보자.5)

“세상 사람들이 바쁘게 구는 일을 느긋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세상 사람들이 느긋하게 하는 일을 바쁘게 할 수 있다.”(能閒世人之所忙者, 方能忙世人之所閒.)

이 글을 읽으면 우리는 앞으로만 달리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일어서려던 다리를 다시 눌러앉게 된다. 이 글이 꼭 진과 선을 말하지 않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맛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쓰는 ‘청언소품(淸言小品)’에 해당된다.

‘사대기서(四大奇書)’와 ‘청언소품(淸言小品)’ 등이 왜 유독 명(明)나라 말기와 청(淸)나라 초기에 쏟아져 나오게 되었을까? 그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이전에도 세속적인 사람도 있고 탈속적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닮은 사람을 문학과 같은 예술로 담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외부의 검열도 있었겠지만 검열을 넘어서야 한다는 도전 정신 또한 약했다. 검열의 형식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전 정신의 발로가 명나라 말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명(明)나라의 양주(楊朱, BC 440?-BC 360?)이고 혜강(嵆康)이고 디오게네스인 것이다.

이 시대의 양주(楊朱)들은 도대체 왜 검열의 형식을 돌파해야 한다는 내적 충일을 품게 되었을까? 여기서 원굉도(袁宏道, 1568-1610)의 성령(性靈)과 이탁오(李卓吾, 1527-1602)의 동심(童心)에 주목할 만하다. 당시 일군의 문인들은 특정한 시대의 문예를 기준으로 삼는 복고적인 창작 원칙을 외쳤다. “한(漢)나라 이후의 글에서 한 구절도 가져오지 않았고, 한 글자라도 한(漢)나라 이전의 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無一語作漢以後, 亦無一字不出漢之前.) 이러한 복고적 경향에 대해서 원굉도(袁宏道)는 형식과 이념에 의해서 거르지 않고 성령(性靈, 성정)에서 저절로 풀려나오는 감정을 중시했다. “오직 성령(性靈)을 펼쳐내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 자신의 속마음에서 흘러나온 게 아니면 붓을 놀리지 않겠다.”(獨抒性靈不拘格套, 非從自己胸臆流出, 不肯下筆.) 이 성령(性靈)과 흉억(胸臆)은 다른 어떤 것을 고려하는 기관이 아니라 문예 창작의 일차적인 근원이다. 성령(性靈)과 흉억胸臆은 과거의 언어나 특정한 형식으로 번역될 필요가 없다. “지금 말과 속어를 쓸지언정 다른 사람의 말을 한 글자라도 주워서 쓰지 않겠다.”(寧今寧俗, 不肯拾人一字)6) 이렇게 성령(性靈)과 동심(童心)은 과거의 언어와 형식을 넘어서는 진원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살다보면 좋은 날보다 궂은 날이 많다. 이렇게 삶에 치이다 보면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든다. 괜히 기분이 무거워지고 표정이 무뚝뚝해진다. 우리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어 친구를 찾았지만 겉도는 말로 실망하기도 한다. 결국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겠다는 생각이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명말청초(明末淸初)를 살다간 김성탄(金聖嘆, ?-1661))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길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불역쾌재삼십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이다. 오늘날 읽어도 무릎을 두드리며 “맞아! 맞아!” 하며 살며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세상 번뇌를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이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빚을 다 갚는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32칙 還債畢, 不亦快哉!)

“들불을 바라본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31칙 看野燒, 不亦快哉!)

“줄이 끊어진 연을 바라본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30칙 看人風箏斷, 不亦快哉!)

“나그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데, 멀리 집의 대문이 보이고 이곳저곳에서 아이와 여인들이 모두 고향 말로 떠들고 있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24칙)

“상자 속에서 뜻하지 않게 친구의 자필 편지를 손에 들게 된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20칙)

“겨울밤 술을 마시다 보니 문득 방안 공기가 싸늘하다. 창문을 열어보니 함박눈이 내려서 이미 발목까지 쌓였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16칙)

“무더운 7월 붉은 해가 중천에 있고 바람은 일지 않고 구름도 보이지 않는다. … 처마로 빗물이 우두둑 떨어지니 끈적이던 몸의 땀이 달아나고 후덥지근하던 땅의 열기가 사라지고 파리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이제 밥숟가락을 들 만하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1칙)

구구한 말이 필요 없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 어딘가에서 생겨난 여유가 내 심신을 감싸는 느낌을 준다. 이 글을 읽었던 이는 어찌 가만히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불역쾌재행이십수(不亦快哉行二十首)’를 지어서 자신의 소소한 행복을 자축했다. 응원하던 팀이 막판에 극적인 동점을 하고 한 손에 맥주와 한 손에 오징어 다리를 집어 드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주석

1) ‘소설(小說)’이란 용어는 <장자(莊子)> ‘외물(外物)’에서 처음으로 쓰인다. 당시 ‘소설’은 사람들이 사실에 살을 붙여 꾸며낸 이야기라는 뜻으로, 누구나 쉽게 떠들 수 있고 이야기에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대도(大道)와 구별되었다. 소설은 사람들끼리 나누는 잡담에 가깝지만 그 속에 사회의 실상을 담고 있었다.

2) ‘답위중립논사도서(答韋中立論師道書)’ “始吾幼且少, 爲文章以辭爲工. 及長, 乃知文者以明道.”

3) 주돈이의 ‘문이재도’와 관련해서 자세한 논의는 소현성, ‘주돈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그 경계’, <중국학보> 64집, 2011 참조. 조선시대 정조의 ‘문체반정’도 ‘문이재도’를 근거로 시행된 정책이다. 정조는 개혁 군주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보수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4) 한영규, ‘명청과 대비한 조선후기 청언소품의 특성’, <고전문학연구> 21, 2002 참조.

5) 번역은 장조, 정민 옮김, <내가 사랑하는 삶>, 태학사, 2001 참조.

6) 송철규, <중국고전이야기 ― 송대부터 청대까지>, 소나무, 2000, 341~342쪽 참조.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철학의 숲>동양철학 읽기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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