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 이성복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이성복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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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산문은 <위클리 수유너머>에 ‘올드걸의 시집’을 연재하고 있는 ‘은유’님이 위 이성복의 시를 소개하면서 쓴 글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삼류 멜로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 순박해서 익살스러운 이것은 니체의 말이다. 니체가 평생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처음 보고 건넸다는 유명한 인사말이다. 38세의 니체는 21세의 루에게 변변한 데이트도 없이 청혼했다가 묵사발이 된다. 안타깝게도 루는 단 한 번도 니체를 사랑하지 않았다. 루가 꽤 매력적이고 총명했나보다. 루는 훗날 릴케, 프로이트까지 당대의 지성들과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니체가 루를 처음 봤을 당시에도 그녀는 철학도 파울 레와 동거 중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니체가 간청 협박편지를 보내기도 했단다. 아무튼 실연을 당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를 단 10일 만에 썼다고 전한다. 사랑의 몸살과 광기로 쓰여진 책. 차라투스트라 1부에 글을 쓰려면 피로 쓰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기가 밤새 쏟은 피눈물로 써서 그랬던 걸까. 가엾은 니체. 철학자로서는 멋진데, 한 남자로는 엉망이다. 철학의 대가도 울려버리는 사랑. 서툴어서 서러운 사랑.
오랜 동거 끝에 선배가 결혼을 했다. 여름날의 야외결혼식. 유명한 시인이 직접 축시도 낭송해주었다. 일과 사랑에서 성하의 시절을 보내는 두 사람. 둘은 처음부터 사랑의 고수로 보였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재주가 있는 남자. 외로움을 자기 살처럼 쓰다듬을 줄 아는 여자. 둘은 잘 어울리는 커플 아니라, 잘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사랑의 속절없음에 대해 흔들리지 않을, 흔들림을 놀이기구처럼 유희할 수 있는 강한 연인 같았다. 그래서일까. 막상 결혼식을 보는데 쓸쓸했다.’사랑’이 어울리는 그들에게 ‘결혼’은 어쩐 일인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 끝나고 결혼이 시작되는 슬픈 축제였다. 특히 하객으로 앉아 있는 저들까지 우르르 선배 인생에 개입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했다. 더 오래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위해 결혼을 택하지만, 결혼과 함께 사랑이 끝나는 아이러니. 부당한 거래. 어떤 제도로도 나의 사랑이 타자의 사랑을 영원히 강제하지 못하고, 사랑한 이유는 늘 헤어짐을 고민하게 한다. 자유로운 영혼에 끌려 결혼하면 무능력한 신체에 질려 헤어진다. 결혼은 친밀성의 장이 될 수 없는 온갖 그리움의 아수라장이거늘, 거기에 왜 하필 당신들까지. 하는 생각에 서러움의 박수만 정성스레 치다가 왔다.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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