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신작 장편 <강남몽>
황석영 지음 l 창비 펴냄 l 2010.06.29 출간
작품 소개
“우리의 뜨겁고 슬픈 꿈은 어디로 갔을까?“
2009년 9월부터 8개월간 인터파크도서를 통해 연재되면서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던 황석영의 <강남몽>이 출간되었다. 1995년 6월 29일,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강남몽>은 바로 그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시작해 현재의 우리 삶을 규정하는 역사적 출발점으로 거슬러올라가 수십 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강남몽>은 한 권의 소설에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와 오점투성이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커다란 스케일을 자랑한다.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은 ‘과연 황석영’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일제의 정탐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대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백화점 붕괴로 몰락한 김진의 생애는 ‘꺼삐딴 리’보다도 영악한 처세와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골 여상을 졸업한 뒤 고급요정과 쌀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었다가 무너진 백화점에 묻히는 박선녀나 70년대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사기로 돈을 버는 심남수 역시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홍양태 강은촌으로 대표되는 조직폭력배의 일대기는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한편 무차별적인 개발의 상흔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의 참혹한 현장을 거쳐온 임판수 부부와, 그의 딸로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붕괴 때 묻혔다가 구출되는 임정아의 시선을 통해서는 삶에 대한 뭉클한 감동을 던져준다.
숨가쁘게 전개되는 현대사처럼 박진감 넘치게 읽히는 이 소설은 작가의 소설적 구성과 필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거장 황석영이기에 가능한 대서사이자 강남 형성사,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가 독보적인 독서의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의 말
장편소설 <강남몽>을 낸 작가 황석영씨가 6월30일 서울역사박물관 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강남몽>의 시대적 배경은 3·1운동 직후부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긴 시간으로 보면 웬만한 대하소설 감인데 380쪽짜리 1권으로 압축했다.
황씨는 해방 후 부의 형성 과정이 얼마나 꼬이고 뒤틀렸는지를 짚어냈다. 일제 때는 미군정청이 적(일본)이 남긴 자산 즉 적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친일파에게 특혜를 줬고, 일제가 남긴 신사와 사찰은 기독교에 불하했다. 정권은 강남 개발을 통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남한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에 사기와 협잡이 있었다는 것이다.
황씨는 자신의 소설을 두고 불온하다고 했다. “모든 사실은 굉장히 힘이 있다. 중립을 지키려 했음에도 (소설은) 굉장히 불온하다. 팩트 자체가 불온하니까”라면서 “20대 초반이라면 가볍고 재밌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우리 현대사가 무게감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로 현대사를 몸으로 밀고온 작가 입장에서 가볍게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은 이 날 대담 중에 나온 작가의 말을 정리한 것이다.
“이 소설을 정의한다면 한마디로 우리의 욕망입니다.”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다뤘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썼지요... 살다 보면 구멍이 뻥뻥 뚫리게 되고, 대충 그걸 막아놓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다시 뚜껑을 열고 구멍을 들여다봐야 해요. 엄청난 속도에 꺾이고 부러진 것들을 한 번씩 짚어봐야죠.”
“강남 형성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게 몇 십 년은 됐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하 장편소설처럼 정색을 하고 리얼리즘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맞나 고민하다, 우리네 인형극의 주인공 꼭두각시, 덜머리집, 홍동지처럼 캐릭터화한 인물 중심으로 가면 되겠다 싶어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골랐습니다.”.
“소설의 80%가 팩트이며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 지난 4∼5년 사이 많은 자료가 공개됐어요.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고 자료에 근거해 등장인물을 그렸습니다. 박정희의 근대화 꿈과 현실이 어떻게 어긋나고 일그러져 가는가를 그린 부분에 그런 입장들이 잘 나타나 있지요... 근대화 과정 어디나 상처와 그늘이 있죠... 근대화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땀 흘리며 이뤄 온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맨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바뀌려면 그들이 읽어야 합니다.
추천사
우리들의 작가 황석영은 이야기꾼의 본때를 보인다. 탈서사가 판치는 시대에 이야기의 복원을 다시금 실험한 이 소설은 심포지엄적 구성을 통해 욕망의 연기(緣起)에 따라 생성된 거대한 거품으로서 강남을 정밀히 복원함으로써 우리 안팎에 도사린 ‘강남의 꿈’을 해체하매, <강남몽>은 과연 우리 시대의 신(新) 묵시록인저! - 최원식 문학평론가
<강남몽>은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지금 이 시대의 삶의 바탕과 내용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들추어서 보여준다. <강남몽>이 보여주는 시대 전체의 풍경은 거대한 가건물과도 같은데, 그 무너진 가건물의 잔해 밑에 지금 사람들이 깔려 있다. 깔린 사람들이 소리친다. “거기 누구 있어요?” - 김훈 소설가
줄거리
제1장 백화점이 무너진다
“나 계약 안해. 느이 사장 불러, 당장 불러!” - 박선녀
여상에 진학해서 모델일을 시작하던 박선녀는 화류계에 발을 들이며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룸쌀롱을 경영하며 부동산 투기를 맛보고 당시 주먹계를 주름잡던 홍양태에게도 주눅들지 않고 나이트클럽까지 꾸려가며 제법 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세력싸움에 가게가 넘어갈 위치에 처하자 중앙정보부 수사관의 도움으로 나이트클럽을 정리하고 새로 차린 룸까페에서 대성백화점 김회장(김진)을 만나 김회장의 후처로 부유한 상류층 생활을 누리던 중 백화점에 들렀다 난데없이 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해 지하에 갇힌다.
제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말이지... 천벌을 받아 마땅하군.” - 김진
열 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김진은 헌벙대의 밀정으로 일하다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청 산하 특무기관인 CIC요원으로 취직한다. 김진은 해방공간에서 전평 탄압, 제주 4.3항쟁 진압, 여순항쟁 진압, 박정희 좌익혐의 조사와 구명활동 등 굵직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한다. 미군과 선이 닿아 있던 김진은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현대사의 뒷무대에서 영리한 처신을 거듭하며 살아남고 5.16군사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 창설에 간여한 후 군을 떠나 건설업을 시작하고 군사정권과 결탁해 큰 성공을 거둔다. 미군에게 불하받았던 서초동 땅에 아파트와 백화점을 지어올리면서 백화점이 무너지는 1995년까지 순탄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제3장 땅재기 놀이
“지금 한강 남쪽 땅값이 얼만지 아십니까?” - 심남수
백수로 빈둥거리던 심남수는 어느 날 부동산업자 박기섭을 만나 인생행로를 바꾸게 된다. 제3한강교 건설을 앞두고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되던 때 타고난 수완을 발휘해 갖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청와대가 정치자금을 은밀히 마련하기 위해 지시한 부동산 투기를 실행하고 남서울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 그리고 70년대 말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정보를 듣고 한국을 떠나고 십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던 심남수는 그날 대성백화점 붕괴현장이 비치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망연히 바라본다.
제4장 천둥벌거숭이
“인자 두 번 다시 오먼 니가 내 형여...” - 홍양태
광주 충장로파의 홍양태는 이십대 초반이던 60년대 말 상경해 북창동과 무교동 일대에 터를 잡고 호남파 패권시대를 가져오면서 전통적인 주먹의 시대가 가고 사업과 이권을 쫓는 근대적인 폭력조직의 등장이 시작되었다. 폭력조직 간의 전쟁으로 교도소에서 출감한 후 강남 호텔 사업을 확장한다. 유신체제가 끝난 뒤 신군부가 사회기강확립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전성기도 끝나고, 군사정권 치하의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다시 긴 수형생활에 처해진다. 대성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모두 털리고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제5장 지나쳐간 사람들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 임정아
대성백화점 지하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는 임정아는 어려운 살림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던 중 백화점 붕괴사고를 당해 박선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갇힌다. 임정아의 부모는 혈혈단신 상경해 공사장과 편직공장에서 일하다 살림을 차리고 광주대단지(성남) 사업 소식을 듣고 천막생활을 지작했다가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을 한가운데에서 겪고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집이나마 마련한다. 임정아의 어머니는 강남 건설 붐이 일 무렵 파출부로 일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딸의 첫 월급에 행복해한다.
작가 소개
1943년 12월 14일 만주 장춘에서 출생하고, 8·15광복 후 귀국,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 때 말로 인텔리였던 황석영의 부모님은 북에서 월남해 내려와 영등포의 공장 지대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영등포시장에 나가면 피난 보따리와 개인의 서재에서 쏟아져 나온 책을 책꽂이째로 노점에 내놓고 책을 빌려주는 대여점이 많이 생겼는데, 작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그런 책들을 빌려다 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피난 갔던 얘기를 쓴 '집에 오는 날'이라는 작문이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하였지만, 1970년에 '탑'이 조선일보에 당선되면서부터 정작 문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창작과 비평>에 중편 '객지'(1971)가 발표되면서부터 리얼리즘에 입각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아우를 위하여'(1972), '한씨연대기'(1972) ‘삼포 가는 길’ 등의 작품을 거쳐,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 최고의 민중 역사소설로 불리는 '장길산'을 74년 7월부터 84년 8월까지 신문에 연재하며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삶의 밑바닥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생명력을 포착하여 민중적 전망을 추구하고자 했던 작가이다. 1976년부터 85년 사이에는 해남, 광주 등지로 이주하며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 동안 소설집 '가객'(1978), 희곡집 '장산곶매'(1980), 광주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무기의 그늘'(1985)을 저술한다. 간척공사장에서 일했고, 구로공단에서 일당을 받으며 직공 '시다'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작가로 독일에 체류했으며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사면 석방된 후 '오래된 정원'(2000), '손님'(2001), ‘바리데기’(2007), ‘개밥바라기별’(2008)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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