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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란 무엇인가? (2) - 신비주의의 역사와 의미

라라와복래 2014. 8. 5. 07:58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2)

―신비주의의 역사와 의미

이전 글 <신비주의란 무엇인가?>(1)에서 설명한 신비주의를 둘러싼 여러 오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번 글은 그런 오해들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오해가 신비주의가 발전해 온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신비주의

신비주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종교’ 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디 ‘미스터리(Mystery)'라는 단어는 ’눈이나 입을 가리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무오(μνω)‘에서 유래했고, 이는 곧 비밀 엄수를 의미했다. 비밀스러운 지식을 핵심으로 삼는 신비종교는 입문자들을 신중하게 골랐으며, 입문자는 배웠던 내용이나 자신들의 경험을 외부인들에게 비밀로 지켜야만 했다.1) 비밀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신비종교의 구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그 전모는 오늘날에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런 측면이 바로 앞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비주의가 비밀주의로 오인되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신비종교가 인간 영혼에 신적인 혹은 초월적인 차원이 존재하고, 의식의 변형을 통해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핵심으로 삼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동시에 신비종교는 향정신성 약물의 사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그러니 신비주의가 초자연적인 혹은 엑스터시적인 체험만을 구하는 비합리적 종교 운동으로 비난받은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종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부상하면서 쇠퇴한다. 특히 확장일로에 있던 기독교에 맞서 고대의 신비종교를 부흥시키려던 황제 율리아누스의 시도가 실패하면서 신비종교는 그리스 철학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에드워드 아미티지(Edward Armitage), <여러 종파의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1875, 잉글랜드 워커 미술관 소장. 로마 제국 최후의 비기독교인 황제인 율리아누스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내리고 기독교 공인 후 다른 종교를 박해하던 정책을 중지시켜 후세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배교자 율리아누스’라 불리었다.

이후 16세기까지 ‘신비적(mystical)', '신비주의자(mystic)' 같은 단어가 조심스럽게 사용되었지만, 서구 종교는 신비주의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신비주의들의 영성이 찬탄의 대상이 된 동시에 전통적 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궁극적 실재와 인간 영혼의 동일성(identity)을 주장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은 적지 않은 탄압을 받았다. 신비주의들이 받았던 오해와 탄압은 신비주의가 주류가 아니었고 이단 혹은 나쁜 종교를 연상시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한참의 침묵을 거친 후 신비주의는 개신교의 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신비주의에 우호적이지 않은 개신교의 일방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달리 인간과 신 사이의 매개를 거부하는 개신교의 교리는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와 상통할 여지가 꽤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후의 신비주의

동서양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신비주의는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서구인들이 해외 진출을 통해 동양 종교를 접하면서 신비주의라는 일반명사가 다양한 종교를 비교하는 개념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3) 즉, 신비주의를 서로 다른 종교의 공통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기는 보편주의적 태도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비교종교학을 시작한 일군의 학자들과 종교인들은 신비적 합일 체험을 핵심으로 삼는 흐름이 동서양 종교에서 유사하게 발견된다는 점에 고무되어, 합일 체험이 주는 영원불변의 앎이 시공의 맥락 속에서 각기 다르게 표현된 것이 곧 제도로 성립된 종교라는 이른바 ‘영원철학’을 설파하기도 했다.4)

동시에 신비주의는 강력해진 유물론적 세계관에 맞서는 대항마로 등장하기도 했다. 과학과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된 유물론은 종교적 세계관을 비합리적이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이를 대체하려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를 옹호하고자 했던 일군의 사상가들은 인간 종교성의 뿌리를 개인 체험에 기초한 신비주의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특히, 교리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당시 각광받던 서구의 개인주의와도 일맥상통했기에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참된 종교성을 교리, 경전, 의례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체험에서 찾았던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 성스러움의 개념에서 종교성을 재발견하려 했던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 신비주의가 종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등이 이 입장을 취했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세계관이 부인하는 종교의 가치를 신비주의에서 재발견하려는 입장은, 신비주의가 인간 이성에 반한다는 오해를 낳는 데에 일조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와 신앙고백의 절대성을 부인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의 시조가 된 슐라이어마허. 그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사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인간의 종교 체험과 감정을 신학보다 우선시했다.

한편 일군의 학자들은 신비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보편주의자들이 동일성을 발견하려는 의도 때문에 종교의 독특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체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도 입증하기 어렵거니와 유의미한 상호 비교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 종교가 궁극적 실재를 엄연히 달리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고 역설한다. 공(空), 도(道), 신(神), 천(天)과 같은 명백히 다른 표현이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로버트 포먼(Robert Forman)은 발생 빈도가 더 높은 ‘순수 의식 경험(PCE : Pure Consciousness Event)' 개념을 제시하면서 문화적 맥락을 초월한 경험이 가능하므로 신비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라고 반박한다.5) 이처럼 신비주의는 다양한 역사적 게기를 거쳐 형성되었으며, 그 개념을 둘러싼 논란은 역사적 측면들이 부분적으로 증폭된 탓이라 볼 수 있다.

신비주의는 체험, 수행, 사상으로 구성된다

그와 같은 논란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신비주의를 체험과 수행, 사상의 세 요소로 나눠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신비주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면서도 근본적인 특징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제안하는 개념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신비주의란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의식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통해 체험을 의도적으로 추구하고, 체험을 통해 얻어진 통찰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통합적 관계를 설명하는 사상으로 구성된 종교 전통이다. 그러므로 신비주의는 그 세부 요소로 ‘체험, 수행, 사상’을 갖는다. 각각의 요소를 자세하게 살펴보자.

1. 신비 체험

‘신비 체험(mystical experience)'은 합일 체험을 필두로, 보이지 않는 차원이 직접 경험되는 여러 사건들을 의미하다. 궁극적 실재나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직접적인 앎을 주는 체험은 무어(Peter Moore)가 주장한 바대로 비전, 엑스터시, 관조, 합일과 같은 여러 ’변형 의식 상태(ASC : 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에서 가능하다.6) 인간 의식이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상태로 변화될 수 있는 일련의 흐름(stream)과 같다는 견해는 제임스 이후 종교 체험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궁극적 실재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신비적 합일 체험은 그 핵심이다.7)

합일 체험이 주는 앎은 그 체험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얻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의 결정적인 요소다. 제임스가 강조하듯 신비 체험을 통해 얻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앎은 언어로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한 앎의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신비 체험이 주관적 체험이라는 점과 그 앎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점은 신비주의의 근본적 딜레마이다. 즉, 궁극적 실재가 개인의 주관적 체험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인식론적으로 취약하다. 나아가 앎의 내용이 언어를 초월한다는 입장은 소통과 공유라는 관점에서 신비주의의 입지를 불가피하게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2. 신비 수행

‘신비 수행(mystical practice)’은 의식을 변형시켜 신비적 합일 체험을 얻으려는 다양한 기법을 의미한다. 모든 신비주의 전통은 명상, 기도를 포함한 다양한 의식 변형 기법을 발전시켰고, 그 기법은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과 호흡 조절 같은 비약물적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의식 변화를 유발하는 향정신성 물질은 모든 문명권에 잘 알려져 있었다.8) 특히 효과가 신속한 향정신성 물질은 종교적 목적 외에도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도 널리 활용되었다. 하지만 약물은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로 인해 중독의 위험을 내포한다. 신비주의 전통은 이런 위험 때문에 향정신성 물질보다는 윤리적 수행과 함께 호흡과 같은 통제할 수 있는 기법들을 더 선호했다. ◀인도의 전통 무용수들은 춤을 통해 의식 변형 상태(ecstatic trance)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변화된다. 라스키(Marghanita Laski, 1915-1988)는 의식을 변형시키는 여러 요인을 총칭해 ‘방아쇠(trigger);라 불렀고, 명상, 만다라(mandala), 기도, 호흡 조절, 육체의 극단적인 통제, 만트라(mantra), 약물, 마취, 최면, 트라우마(trauma), 스트레스, 출산, 성행위, 각종 사고(事故), 미적 경험, 아름다운 자연 경관 등을 제시했다.9) 즉, 방아쇠란 일상적 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려 비일상적 차원이 드러나게 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변형된 의식이 주는 통합을 방아쇠와 동일한 것으로 환원해서는 곤란하다. 앞서 지적한 여러 요인들이 의식의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통합이 곧 방아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힌두의 만다라. 만다라는 종교 의례나 명상 시에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이다.  

 

네팔의 바위 위에 새겨진 만트라. ‘진언(嗔言)’, ‘밀언(密言)’ 등으로 번역되는 만트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언어를 의미한다.

신비 수행을 통한 의식 변형 과정은 통상적으로 ‘집중-비움-드러남’의 세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즉, 특정 단어나 어구의 반복적 음송, 화두(話頭), 참구(參究), 시각적 이미지의 활용, 호흡을 세는 것 등은 마음을 집중시키는 행위이고, 이는 분별적 사고에서부터 자아 개념에 이르는 의식의 모든 내용을 ‘비우는’ 조건이 된다. 이처럼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을 비우면, 일상적 의식에 가려져 있던 층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이 수행의 원리이다. 그 점에서 수행은 능동적으로 수동적이 되려는 역설적 노력에 다름 아니다.

3. 신비 사상

끝으로 ‘신비 사상(mystical thought)'은 합일 체험에 수반되는 직관적인 통찰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현상 세계의 관계, 궁극적 실재와 인간 본성의 관계, 수행법과 체험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이론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리와 같은 인간의 지성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모든 신비주의 전통은 신비 체험에 입각해 우주론, 인간론, 수행론과 같은 이론적 틀을 반드시 제시한다. 즉,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하는 궁극적 실재를 비롯해 인간과 현상 세계가 궁극적 차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또 수행과 체험이라는 주관적ㆍ체험적 차원을 이론화시킴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요약컨대 신비주의 전통은 ‘체험, 수행, 사상’의 세 요소를 갖는다. 다시 말해 신비주의는 신비적 합일 체험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체험의 가능성이 갖춰져 있음을 설명하는 사상적 체계, 그리고 체험을 얻기 위한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이 중에서도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해 직관적 앎을 체득한다는 체험믜 차원은 신비주의에 가장 결정적이다.

신비주의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신비주의는 인간과 신,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 등의 대극적 쌍을 통합(coincidence of opposite))하려는 움직임이다. 신비주의들은 그 통합이 신비적 합일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주관적 체험이 절대적 진리 주장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인식론적 관점에서 당혹스럽다.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나 ‘존재의 본성’과 같은 절대적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 당혹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비주의들의 목소리에 더 충실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종교사에서 신비주의라는 이름의 종교는 없었지만, 신비주의들은 적지 않게 존재했으므로. ▶로렌초 베르니니, <성녀 데레사의 환희>, 1647~1652, 대리석,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 소장. 신비적 합일을 주관적으로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신비주의들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적지 않게 존재해 왔다. 객관적으로는 입증할 수 없지만 유사한 사례가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비주의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치열한 수행 혹은 신의 은총을 통해 비범한 체험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그 체험을 공유하기 위해 영감에 찬 시어(詩語)를 비롯해 사변적인 철학, 심지어 침묵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던 사람들로 정의될 수 있다. 한편으로 이성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그것의 전적인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때로는 교리보다 체험을 강조한 탓에 배척당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 일부는 궁극적 실재 앞에서 성별, 인종, 신분, 지식과 권력의 유무 같은 어떠한 구별도 힘을 잃는다고 역설했다. 즉, 신비적 합일 체험은, 모든 것이 중심이므로 중심 아닌 것이 없다는 역설적 앎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급진성은 종교사가 증언하듯 숱한 논란과 스캔들로 이어졌다. 그 점에서 신비주의는 급진적 자유의 씨앗이자 동시에 불화의 원천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들의 강력한 주장이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에 기초한 탓에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보여준 비범한 삶의 모습과 더불어 유사한 주장이 종교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한편 대극의 통합과 전체성을 지향하는 신비주의는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현대에 이르러 대인적 세계관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그러나 초자연주의에서 비밀주의에 이르는 신비주의의 다면성은 우리에게 신중함과 균형을 동시에 요구한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개념을 둘러싼 오해가 걷혀져야만 한다. 그런 연후에야 신비주의는 인간 종교성의 신비(mystery)를 엿보게 만드는 렌즈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Angus(1975), "The Mystery-Religions: A Study in the Religious Background of Early Christianity"

2) 통음(痛飮)으로 이름 높았던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대표적이다.

3) Michael de Certeau(1992), "Mysticism"

4) '영원철학(perennial philosophy)'은 헉슬리 등이 주장했다.

5) Robert C. Forman(1990), "Introduction: Mysticism, Constructivism, and Forgetting

6) '변형 의식 상태‘ 개념은 찰스 타트(Charles Tart) 등이 제안했다.

7) William James(1904),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8) 향정신성 물질은 버섯류, 코카나무 등의 자연적인 것과 화학적으로 합성한 물질로 나뉜다. 자연적인 것에는 있는 그대로를 취하는 방식도 있고, 코카인과 헤로인처럼 자연물에서 정제하기도 한다. 이창기(2004), <마약 이야기>

9) Marghanita Laski(1961), "Ecstacy in Secular and Religious Experience"

성해영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Rice) 대학에서 플로티노스의 종교 체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종교 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다. 특히 개인의 종교 체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가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종교학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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