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라라와복래 2010. 8. 3. 18:28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마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풀도 달팽이의 무게에 휘어버렸다. 삶과 죽음도 풀잎 건너가듯 넘나드는 게 아닐까? 이쪽에 있으나 저쪽에 있으나... 이승에 있으나 저승에 있으나 매한가지이듯이...” 제가 자주 즐겨 찾는 다음카페 <클래식 사랑방> http://cafe.daum.net/music7694  회원인 '주상'님이 ‘달팽이를 보며’라는 제목으로 올린 포토 에세이에서 글과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무단 전재함을 용서하옵소서, 주상전하^^

 

위 시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48쪽에 소개된 장 루슬로의 시입니다. 제목이 없는데요, 검색을 해보니 ‘세월의 강물’ ‘또 다른 충고들’ 등 여러 제목으로 올라와 있더군요. 프랑스어 원시를 찾아보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라라와복래는 그냥 첫 줄을 따서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이라 했습니다.

 

시인이자 작가인 장 루슬로(Jean Rousselot)는 1913년 10월 27일 프랑스 남부 푸아티에(Poitiers)에서 태어났으며,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 가던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15세부터 스스로 생계비를 벌어야 했으며, 33세에 이르러서야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시인 폴 엘뤼아르와 막스 자코브가 그의 시 스승이라네요. 시를 보니 스승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군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수여하는 문학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5월 24일 파리 근교 이블린(Yvelines)이란 곳에서 작고했습니다. (2000년 제50회 베를린영화제에서 ‘단편 황금곰상’을 받은 <알프레드 르프티에 바치는 영화>의 감독 장 루슬로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 확인을 못하였습니다만 동일인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는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도 ‘또 다른 충고들’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는 모양인데요(책을 못 읽어서...^) 몇 구절이 더 들어가 있군요. 위 번역이 좀더 멋들어진 것 같고, 류시화의 번역이 원시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다른 충고들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충고하려 들지 말라.

그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올 것이다.

너의 충고는 그를 화나게 하거나 상처 입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선반 위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별을 보게 되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위의 모든 것들처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추에게 달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

너의 말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문제들을 가지고

너의 개를 귀찮게 하지 말라.

그는 그만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류시화의 위 책에 장 루슬로의 ‘너무 작은 심장’이란 시도 소개되어 있는데, 참 가슴에 와닿는 시입니다...

 

너무 작은 심장

 

작은 바람이 말했다.

내가 자라면

숲을 쓰러뜨려

나무들을 가져다 주어야지

추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빵이 말했다.

내가 자라면

모든 이들의 양식이 되어야지

배고픈 사람들의.

 

그러나 그 위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비가 내려

바람을 잠재우고 빵을 녹여

모든 것들이 이전과 같이 되었다네.

 

가난한 사람들은 춥고

여전히 배가 고프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아.

 

만일 빵이 부족하고 세상이 춥다면

그것은 비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작은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