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둔황 - 이노우에 야스시 역사소설

라라와복래 2015. 9. 12. 01:08

둔황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49

2010

“이노우에 야스시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작가이다.” —도널드 리치(문화평론가)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역사소설의 거장 이노우에 야스시의 대표작. 20세기 초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전의 비밀에 착안하여, 경전이 둔황 석굴에 묻히게 된 과정을 상상을 통해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단순히 허무맹랑한 공상에 의존하거나 사료에 의한 객관적 실증에만 집착하지 않고, 빛나는 상상력과 탁월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역사적 사실에 접목시켜 둔황 경전의 배후에 묻힌 역사적 신비를 소설로 되살려냈다. 이 작품은 출간 당시 폭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얻으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뒤, 이듬해인 1960년 제1회 마이니치 예술대상을 수상했고, 1988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둔황(敦煌)은 중국 간쑤성(甘省)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요충지이다. 둔황은 크고 성대하다는 의미로, 그 옛날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수(隋)나라 때 서방 문화가 동쪽으로 유입되는 관문으로서, 이 지역에 꽃피었던 찬란한 문화를 상징한다. 둔황의 대표적인 유적인 막고굴(莫高窟)은 현존하는 가장 완정한 불교 예술의 보고로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 둔황 막고굴 속에서 엄청난 양의 고대 경전이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후 이 경전들은 제국주의 열강의 실크로드 탐험대들에 의해 거의 도굴하듯 약탈되었는데, 이들 경전들은 ‘둔황학’이란 말을 낳으며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수많은 경전들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매장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위대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역사적 유산을 소재로,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아름답고도 애절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완성해냈다.

위대한 역사적 유산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대서사시

소설은 송(宋)나라가 서하(西夏)의 잦은 변방 침입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1026년, 32세의 청년 조행덕이 진사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수도 개봉(開封)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이미 몇 단계의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합격을 눈앞에 둔 조행덕은 최종 시험을 놓치며 출세의 꿈을 날려버리고 만다.

실의에 빠져 개봉의 저잣거리를 걷던 조행덕은 우연히 벌거벗겨진 채 난도당할 위기에 처한 서하 여자를 구해준 후 답례로 서하의 통행증을 받고, 거기에 적힌 낯선 서하 문자를 보고 이 신흥국가에 호기심이 생겨 무작정 서하로 떠나지만, 서하군에 붙잡혀 영토 확장 전쟁에 동원되는 신세가 된다. 사막의 전장에서 조행덕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명의 인물을 만나는데, 서하군 한족 부대의 대장인 주왕례와 감주(甘州) 성벽에서 마주친 위구르 왕족 여인이 그들이다. 무지하지만 순수한 인간적 매력의 무장 주왕례가 백면서생 조행덕을 불굴의 용사로 탈바꿈시켰다면, 위구르 왕족 여인은 서하의 왕 이원호의 첩이 되었다가 조행덕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훗날 행덕으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소설 전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작가는 둔황 막고굴 경전의 배후에 묻힌 역사적 신비를 소설로 되살리면서 단순히 허무맹랑한 공상에 의존하거나, 사료에 의한 객관적 실증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주인공 조행덕을 비롯한 주왕례와 위구르 왕족 여인, 위지광 등 주요 등장인물은 가공의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서하의 왕 이원호와 무기력한 한족의 권력자 조현순, 태수 조연혜 등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아울러 조행덕이 편찬에 참여한 것으로 나오는 『번한합시장중주』라는 서하 문자와 한자의 대조 사전도 실존하는 책이다. 이 모두가 서역의 군소 민족에 불과했던 서하가 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에 불타던 당시에 대한 생생한 현실적 재현임에 틀림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노우에 야스시가 둔황을 처음 찾은 것은 소설 『둔황』을 발표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1978년의 일로, 소설을 발표하기 전 현지답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베일에 싸인 둔황 경전류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양자 간의 필연적인 ‘단절성’을 현지 견학을 통해 메우기보다는, 오히려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소설가적 감성을 동원하여 생생하게 과거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15년 신문기자 생활을 통해 다수의 신문소설을 성공시킨 탁월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 그의 역사소설에 훌륭하게 접목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소설의 1장부터 10장까지가 작가의 역사적 상상에 입각한 창작적 기술이라면, 마지막 11장에서는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둔황 석굴 속에서 잠자고 있던 방대한 둔황 문헌들이 1900년 처음으로 발견되어, 이후 스타인 등 외국 탐험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의 길을 제시

『둔황』의 특징적 서술구조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조행덕과 주요 등장인물과의 운명적 만남을 통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일관된 응시이다. 행덕은 진사시험 당일 뜻하지 않은 실수로 실격한다. 입신양명의 꿈이 한순간에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서 저잣거리를 걷던 그에게 연달아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나 그의 인생관을 뒤흔드는데, 알몸의 서하 여인과의 조우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집착하던 세속적인 명예와 부귀영화가 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서하로 떠난다. 수십 년 과거 공부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아무것도 확실하게 약속된 것이 없는 먼 변방으로 표표히 떠나는 조행덕의 모습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수도자를 연상시킨다.

이후 각지를 전전하다 마침내 사주(沙州)에 이르기까지 조행덕이 목격하는 것은 인생의 무상함이다. 전방에서는 연일 전투가 벌어지고, 후방에서는 백성들이 전쟁 준비에 시달리다 허망하게 죽어갔다. 한족의 실력자 조현순 역시 서하군의 침략에 무력하게 패하고 조연혜는 자살한다. 불사신처럼 보였던 백전노장 주왕례 역시 전쟁터에서 허망하게 죽어간다. 평생 사막을 누비며 재물을 탐해온 위지광도 결국 벼락을 맞아 죽는다.

이처럼 허무와 방랑과 죽음으로 점철된 사막 한가운데에서 꽃피는 위구르 왕족 여인과 조행덕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인간 감정의 소중함을 일깨워는 동시에 소설적 흥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위구르 왕족 여인과의 만남이 단순히 개별적 사랑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녀의 죽음은 행덕으로 하여금 마침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의 무력함을 뛰어넘어 불교와 같은 종교가 지향하는 ‘영원한 어떤 것’을 추구하도록 이끌고 행덕은 위구르 왕족 여인을 공양하기 위해 한역 불교 경전을 서하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동란의 와중에 조행덕은 위구르 왕족 여인을 공양하기 위해 번역하던 불교 경전의 안전을 염려하여 경전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조행덕은 처음에 자신이 서하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서하로 왔던 것처럼, 경전이 타지 않고 보존되기만 한다면 세월이 얼마가 흐르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든, 누군가가 반드시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의 그녀를 향한 마음도 살아남을 거라고 믿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조행덕은 서하군의 침입으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던 사주 사찰의 경전들을 명사산(鸣沙山) 천불동(千佛洞) 석굴에 고스란히 은닉할 수 있었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다. 결국에는 ‘마음’이 전쟁으로 인해 재가 되어버리는 것을 막으려는 한 사람의 염원이 승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유구한 흐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을 인간이 노력을 통해 후대에 남기고 전달하려 할 때, 아무리 비정한 역사라 해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 법이다. 격동의 시대상황 속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역사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제시라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기보다는 역사이다. 참다운 역사만이 가질 수 있는 슬픔이 전편에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 가와카미 데쓰타로(문학평론가)

"『둔황』은 20세기 초 세계 인류 앞에 홀연히 등장한 경전류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자각하면서, 탄생의 신비에 대한 전설적 접근을 통해 인류의 보고(寶庫)에 대한 무한한 경외의 감정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역사 로맨스이자 서사시이다." —임용택(옮긴이)

둔황 명사산(鸣沙山)과 월아천(月牙泉)

모래는 울고, 이야기는 흐른다

글 오현종 (소설가)

어릴 적 할머니는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재미있는 건데, 좋아하면 왜 가난해지지? 예닐곱 살 꼬마로서는 알 수 없는 얘기였다.

할머니는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면서도 손녀가 잠을 못 이루는 밤마다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밤은 황금광인 줄 알고 재산을 털어 넣었다가 패가망신한 사내 얘기를, 또 어떤 밤은 미스꼬시 백화점 양식당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시아버지 될 사람을 발견하고 줄행랑친 경성의 ‘모던 걸’ 얘기를, 전등을 끈 캄캄한 방에 누워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궁금하고 이상한 일이 많아 잠이 더 달아났다. 겨울밤, 마루에 둘러앉은 노인들이 화로에 알밤과 쇠고기를 굽고 담배를 태우며 나누던 이웃 나라 이야기 또한 부엌에서 빈대떡을 부치던 며느리의 밝은 귀를 거쳐 밤잠 없는 아이에게로 왔다.

그래, 그런 경로로 이야기는 내게 소설보다 먼저 왔고, 역사보다 앞서 도착했다. 몇 해 전 전봉관 선생의 『황금광시대』를 읽고 나서야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이는 거짓이든 참이든 상관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자립한 뒤였다. 나는 역사 이전에 이야기로 한 사내의 불가해한 삶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사내는 이야기를 좋아한 만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을 테고, 그러니 모험을 좋아했겠지. 모험을 좋아했다면 분명 황금광을 발견했다는 친구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내가 땅을 날리고 월급을 차압당하다 요절하게 된 사연은 옛날이야기가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할아버지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이야기 덕분이다.

호기심이 많아 모험을 택하고, 그래서 모진 운명을 겪는 사내는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에도 있다. 송과 서하와 거란이 땅을 뺏고 뺏기던 옛날 옛적 조행덕이란 사내다. 해독할 수 없는 글자를 읽고 싶다는 욕망은 송나라 선비 조행덕을 머나먼 사막의 땅 둔황까지 이끌어간다.

옛날이야기가 늘 그렇듯 『둔황』에도 사랑에 목숨을 거는 여자가 등장하고, 외인부대의 용감무쌍한 무사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남자와 왕위를 잃어버리는 남자 역시 빠질 수 없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태어날 때부터 내 핏줄 속에서 돌고 돈 피 같은 이야기가 누군가는 역사 로맨스나 서사시라 부른다지만, 나는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은 소설이 바로 『둔황>이다.

읽을 수 없는 글자로부터 시작한 긴 행로는 조행덕이 둔황 명사산 천불동에 5만여 점의 경전과 제 손으로 쓴 필사본을 파묻는 것으로 끝난다. 한 작가의 상상에 의해 펼쳐진 세계가 둔황 석굴이라는 실제의 공간, 공백으로 남은 역사와 맞닿는 지점이다. 『둔황』은 역사적 뼈대와 유적 위에 지은 소설이지만, 이원호를 제외한 인물들이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란 언제나 사실과 거짓을 넘어서는 것 아니던가. 그러니 이야기는 역사에 충실히 복무하지 않아도 좋다.

글자로 인해 시작된 모험, 즉 이야기가 결국 글자로 돌아간 것은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도 목숨이 아닌 경전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의 욕망은 기이하다. 서쪽에선 회교도의 코끼리 떼가, 동쪽에선 서하군의 말발굽이 밀려오는 고립된 성 안에서 경전을 두고 피난갈 수 없다고 고집하는 승려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읽은 경전은 극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아직 읽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단 말입니다. 읽기는커녕 펼쳐보지도 못한 경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린 경전을 읽고 싶습니다.” ―『둔황』 189쪽

읽고 싶다는 그들의 욕망은 지나치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과연 그들만의 욕망이었던가.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야기에 들려 있은 지 오래인데, 이 병에 약이 있다는 풍문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모래가 우는 산’이라는 뜻의 명사산(鳴沙山)에서 사라져간 인물들의 삶을 나는 단순히 허무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거센 바람에 모래가 날아가듯 그들은 자취 없이 사라져갔지만, 생(生)을 걸고 묻어 놓은 글자들과 이야기는 사막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았으므로, 이런 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한때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 했던 것과 같은 목적이다. 나에게 이야기는 과거에도 지금도 슬픔을 받아들이게 하는 유일한 방식인 것이다.

"제물과 목숨, 권력은 한결같이 그것을 소유하는 자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달랐다.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에 타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무도 경전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었다." ―『둔황』 199쪽.

나는 소설 속 이 문장에서 ‘경전’을 ‘이야기’로 바꾸어 읽었다. 오독이어도 상관은 없었다. 사막의 밤에 수많은 별이 뜨고 지지만, 별들 사이로 흐르는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 뜨겁게 달궈진 모래알이 바람결에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 어느 밤잠 없는 아이의 베개 위에 내려앉으리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노우에 야스시 (井上靖, 1907-1991)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군의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대 시절 글쓰기를 시작하여 고등학교 때는 지역 잡지에 시를 투고하기도 했다. 교토 제국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1936년 <선데이 마이니치>에 역사소설 유전을 투고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마이니치 신문사에 입사, 10여 년간 종교ㆍ미술ㆍ출판 등 여러 분야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60년 투우로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했고, 이후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풍도(風濤)는 고려 말 원나라의 일본 침공 때의 우리나라 사정을 치밀하게 그린 걸작이다. 1976년 일본문화훈장을 받았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일본의 국보급 작가로 평가받았다. 1991년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오현종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9년 월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 장편소설 『나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거룩한 속물들』, 『달고 차가가운』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세계문학의 고전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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