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인터뷰: 《나를 만나는 시간》 펴낸 철학자 이주향 - “당신의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라라와복래 2015. 9. 8. 15:53

인터뷰: 《나를 만나는 시간》 펴낸 철학자 이주향

“당신의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글ㆍ사진 | 임나리

《나를 만나는 시간》을 읽는 동안 철학은 소리 없이 스며든다. 철학자 이주향이 읽어주는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한 장의 그림, 한 곡의 음악에는 무수히 많은 삶과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도덕경》, 《레미제라블》부터 영화 <설국열차>, <위대한 개츠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조용필의 <바운스>까지, 저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작품들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익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백과 침묵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을,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목소리들을, 철학자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를 만나는 시간》의 책장을 덮을 때쯤, 희미하던 그 실체는 점차 또렷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며 살아가는지,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건과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선택하는 것들은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용어들에 기대지 않고도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두었던 작품들을 펼쳐 보일 뿐이다. 자신을 매료시킨 어떤 것의 의미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와 당신과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철학자 이주향은 ‘낙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것이 아닌 짐을 지고서 힘겹게 걸음을 떼는 낙타. 그 눈빛을 떠올리는 것은 거울을 마주보는 것과 같다. 익숙한 피로감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안에서는 서투르기만 했던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된다. “위험하지 않은 모험이 없듯 어리석은 줄 모르는 사랑은 없습니다”라는 저자의 한 마디는 잊었던 사랑의 기억을 되살린다. 늘 관계 속에서 앓는 우리를 위한 조언도 빼놓을 수 없다. “만날수록 얽히기만 할 때는 ‘대범’을 가장하고 만나는 것보다는 그릇이 작음을 인정하고 도망가는 게 좋습니다”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뜨끔하다. 엉킨 실타래를 풀고야 말겠다고, 마치 수학문제를 풀 듯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도 당신도 지쳐버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나를 만나는 시간》은 명쾌한 해석으로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하고,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져 깊은 사유에 빠져들게도 한다. 그 순간들을 거치며 우리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가 포착해낸 오늘의 현실을 응시하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알게 모르게 지쳐 있었던 나를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저자의 통찰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질문과 갈등을 쌓아둔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각종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몸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것처럼, 마음과 감정 역시 관찰하지 않으면 그 상태를 알 수 없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자신 이외의 존재와 바깥세상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어들여 나의 안을 비추는 일이 필요하다. 《나를 만나는 시간》은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길어 올린 ‘철학의 지혜’를 들려줌으로써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시간을 선물한다.

당신이 지고 가는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동서양의 고전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생각해요. 《소학》만 보더라도 옛 사람들이 사람과 생명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한 예로, 유모는 아이가 처음 만나는 스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온화하고 말이 적은 여인을 선호했고요. 그런 배려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에요. 우리는 늘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한 태도를 가지려면 모범이 되어줄 존재가 필요하거든요.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어요. 깊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같잖아요.”

《나를 만나는 시간》에서 철학자 이주향은 예리한 시선으로 현실의 겉꺼풀을 벗겨냈다. 그러자 차갑고 불편한 세계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통쾌함과 서글픔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도태와 낙오라는 단어가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가능한 멀리 달아나려는 것처럼, 떠밀리듯 살아가는 나와 당신을 확인하는 일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토록 아픈 상황을 이해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몸속 시계가 작동하기 전에 알람에 맞춰 일어나, 깨지 않은 잠을 커피로 깨우고, 지옥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는 인생을 그래도 축복받은 인생으로 여기는 사회” 속에 우리는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남의 평가만 내면화하는 하인으로, 하녀로, 낙타로만 살게 되는” 줄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이 능력의 척도인 줄” 믿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낭만도 반납하고 정의도 외면하고 오로지 취업을 향해 질주했건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춘들”과 “취업은 됐어도 비정규직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듯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근사해 보이는 일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처럼 언제 낙오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외줄 타는 심정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필요를 ‘얼마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세상이죠. 그런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미생 아닌가요?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면, 지금의 사회는 봉건 사회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봉건 사회에서는 주인을 잘 만나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심리적인 부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현대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도 보장해주지 않죠. 그러면서 계약을 빌미로 사람을 쥐어짜요. 1년마다 혹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나를 만나는 시간’은 엄두도 낼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에요. 현대인들은 자신을 하인 취급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끝까지 하인 대우밖에 받지 못해요. 우리에게는 사람답게 경영하려는 노력,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나를 만나는 시간》에서 저자가 들려준 ‘낙타의 삶’이 떠올랐다. 미생들에게 허락된 삶은 낙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낙타는 열심히 짐을 지고 가는데, 그 짐은 주인의 것이지요. 오로지 주인의 짐을 지고 주인이 정한 길을 가는 낙타의 시간, 누구나 그 시기를 거치며 사회적 존재가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잡고 성과를 내는 일로 떳떳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살다 보면 남의 평가만 내면화하는 하인으로, 하녀로, 낙타로만 살게 되는 겁니다. ―《나를 만나는 시간》 92~93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이야기죠. 니체는 자기 짐이 아닌 것을 성실하게 지고 가는 낙타 같은 인간이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 찾아오면 사자로 변한다고 했죠. 사자 같은 사람은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닌 것의 삶을 살지 않고,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항해서 싸우죠. 엄청난 저항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이지만, 그 삶은 굉장히 긴장되어 있기도 해요. 중요한 건 사자가 어린아이로 변하는 과정이에요. 니체는 어린아이가 최초의 긍정이라고 했는데, 운명을 긍정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슬플 땐 슬픔과 놀고 기쁠 땐 기쁨과 노는 거죠. 희노애락애오욕이 없는 게 아니에요. 희노애락애오욕에 빠지지 않고 파도타기 하듯이 타고 넘는 거죠. 그게 긍정이에요.”

내 몸을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책 속에서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은 죄라고. 나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것은 죄라고. 죽비처럼 내리꽂히는 그 말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살피는 일이 선택의 영역 밖에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의무였고,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는 모두 유죄였다. 자신을 상대로 지은 죄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알아야 했다.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를 관찰하는 일의 시작은 내 몸을 관찰하는 거예요. 몸의 변화를 지켜보면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가라앉는지 보여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야기들이 추상적으로 들리죠. 굉장히 구체적인 이야기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든 신체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신체 어느 한 곳에 의식을 두면 보이는 흐름들이 있어요. 만약 명치끝이 막혀있는 게 보인다면 ‘내가 인생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것들을 명치에 차곡차곡 쌓아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한두 달이 지나면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막혀 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걸 느끼게 될 거고요. 그렇게 몸의 변화를 관찰하다보면 한결 차분해져요.”

무심코 짓는 표정, 습관적인 손짓까지도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손쉬운 방법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내 것이 아닌 양 몸과 마음을 내버려둔 채 지켜보지 않았던 시간들이 피부로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필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하죠. 일을 위해서는 24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30분도 할애하기 힘들잖아요. 자식을 위해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살지 않는 엄마들과 똑같은 거예요. 자식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 일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자식이든 일이든 자신이 애착하고 있는 대상에 빠져있는 거예요. 나를 볼 줄 알아야 내가 애착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내가 미워하고 있는 것이 보여요. 애착과 증오는 삶을 만드는 축이에요. 자신이 무엇에 애착과 증오를 느끼는지 아는 것과 모른 채 끌려가는 것은 굉장히 달라요.”

《나를 만나는 시간》 속에서 저자는 묻고 있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어 그녀는 담담하게 고백했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나만의 동굴로, 침묵으로 도망갑니다.” 언뜻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자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가 나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 대범한 척 나서기보다는 작은 그릇을 인정하고 도망가는 편이 낫다고 조언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생의 매듭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맺히고 풀리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내 손을 떠나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어떤 일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해결이 되기도 하고요.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끝까지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면 애착을 보이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느 순간 다시 챙겨져 있다는 걸 아니까요.”

《나를 만나는 시간》이 선사하는 변화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일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녀가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신부에게서 발견한 베풂이 지금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다른 이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없는 것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미리엘 신부를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을 믿고 수행이 된 사람들이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이야기한, 사자를 거쳐 간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죠. 그들은 네 것과 내 것을 나누지 않아요. 그리고 변화시킬 의지를 갖지 않고서도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켜요. 만약 미리엘 신부가 장발장을 변화시킬 의지가 있었다면, 장발장은 절대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미리엘의 삶은 개방적인 거죠. 마음을 열어놓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하룻밤이 굉장히 소중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거고요. 저 역시 미리엘 신부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저에게 오는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믿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종종 사랑한다는 말은 내 안으로 찾아들지 못하고 밖으로만 맴돈다.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사랑을 전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한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부족함 투성이로 규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불신이 나를 믿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들고, 진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하도록 만든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를 만나는 시간』이 전하는 진실을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당신은 46억 년의 세월이 기다려 온, 태양의 피워낸 꽃이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라고”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기 안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나를 만나는 시간

이주향 지음

사우 펴냄

2015.08.20

출판사 리뷰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는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끝없는 자기계발로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던 시대가 있었다. 명문대 졸업장과 더 넓은 집과 더 큰 차를 가지면 행복하리라고 믿고, 모두들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경주에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처지면 ‘루저’가 된다며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그만큼 여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왔건만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게다가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부단하게 자기계발을 해도 뒷줄에 서 있던 사람이 선두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장기 불황에 접어든 신자유주의 나라 한국 사회에서, 성공 신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들 눈치 챘다. 우리는 성공 신화가 사라져버린 자리에서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자 이주향은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다. 남과 비교하고, 소비하고, 파괴하고 건설하고, 경쟁하고, 과시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용히 멈춰 서서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문학의 시작이다.

“인문학의 궁극은 자기성찰이고, 수심(修心)이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거둬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 나답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또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을 알아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삶도 유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조용히 사색하고, 독서하고, 쌓아둔 물건을 정리하고, 친구의 이야기에 진심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자고 조언한다. 참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줄 철학의 지혜를 조곤조곤 일러준다.

문학, 고전, 만화, 음악, 미술, 영화, 드라마에서 찾아낸 철학의 지혜

시인의 감성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건져낸 삶의 아포리즘

철학자 이주향이 안내하는 철학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그는 난해한 철학을 영화, 만화, 문학, 고전 등과 접목시켜 쉽게 설명하는 철학자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아 성찰과 삶의 태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문학작품과 고전, 음악, 미술, 영화 등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다양한 소재를 갖다 쓴다. 《도덕경》, 《서경》, 《소학》 등 동양 고전부터 《파이돈》,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 서양 고전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철학을 풀어내지만 편안하게 읽힌다.

그러나 풍부한 독서와 오랜 명상, 시인의 감성이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그의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철학의 지혜를 아름답게 표현한 한 편의 시이기도 하고, 삶의 정수를 알차게 담아낸 아포리즘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는 편안하게 읽어 내려가는 가운데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기도 하고, 아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할 것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는 동안 조급하던 마음은 어느새 차분해지고, 화나고 억울하던 마음에는 성찰의 지혜가 생겨나고, 불안하던 마음에는 고요함이 흐를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1장 나는 누구인가

우주는 왜 나를 공들여 키웠을까

모든 문이 닫힐 때 해야 할 일

허무와 절망의 세상을 건너는 법

“나는 내 방식대로 살기 위해 태어났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

이토록 깊고 큰 사랑, 받아보셨나요?

갠지스 강가에서 기도하다

손오공과 함께 길 위에서 길 찾기

하루 10분만, 그저 고요히

나의 존재 이유를 알아내는 법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삶은 누리는 자의 것

눈부신 어둠

고갱이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욕망과 구원, 뫼비우스의 띠

무식한 남자의 힘

2장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밥상을 대하는 태도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은 둘이 아니다

내 아버지가 넘어진 자리를 살핀다

자식 키우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

어떻게 죽음을 잠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의 힘을 빌려 쓰는 방법

화, 억누르지 마시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

당신 주위에는 누가 있나요

신은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삶이 송두리째 진화하는, 이런 사랑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다면

격정으로 미쳐본 당신을 위해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세계다

어리석은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사랑을 강요할 때 생기는 일

아름다운 사람,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나니

손해와 이익을 제대로 계산하는 법

3장 희망해도 되는가

평생 누리는 기쁨은 없다

꿈은 인생을 잡아먹고 꽃핀다

희망을 가져도 되는가

내 집에서 소외된 아버지들에게

배신에 대처하는 자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지옥에는 천상으로 오르는 문이 숨어 있다

진짜 실력이란, 행운도 불운도 소화하는 능력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

낭송에는 치유력이 있다

거울 앞에 선 당신, 마음에 드십니까

두려움이 가득하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다람살라에서 발견한 것

운명은 왜 하필 상처를 건드리는가

책 속으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이 빚어낸 오묘한 세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고 말입니다. 당신은 46억 년의 세월이 기다려 온, 태양이 피워낸 꽃이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만 해도 4천만 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합니다.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꿈은 우리와 다른 별에서 또 다른 문명을 건설한 존재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에만 생명이 산다는 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공간 낭비일 테니.

그러나 철학자인 나의 꿈은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무엇이 있어 우주가 겁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을 공들여 나를 키웠는지 그걸 알고 싶은 것입니다. ―‘우주는 왜 나를 공들여 키웠을까’ 중에서

메르스 사태에 움츠려 있는 동안 다시 한 번 인간의 조건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분명히 예정된 파멸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는 인생도 어리석지만, 종말만을 염두에 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쉽게 자포자기하는 인생도 보기 싫습니다.

분명 인생은 유한하지요.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지구별에 왔습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만남에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과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만남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상대가 묻는 말에 진심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떠한지. 나에 대해 진지하지 않고 상대에게 진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허무와 절망의 세상을 건너는 법’ 중에서

어떤 이는 사랑도 숨 막히는 집착으로 바꾸지요. <레미제라블>의 신부 미리엘은 의혹을 평상심으로 바꾸고, 도둑질도 자비로, 사랑으로 바꿉니다. 장 발장이 위악의 가면을 벗고 말갛게, 괜찮은 자기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괜찮은 사람 미리엘 덕분입니다. 미리엘은 긴긴 부조리의 세월을 마르지 않은 사랑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마법사였습니다. 미리엘을 만나 전환점을 맞으며 장 발장은 우뚝 성장하고 고독 속에서도 빛이 나, 조용한 사랑, 깊은 사랑, 큰 사랑을 할 줄 아는 진정한 사내가 된 것입니다. 그렇듯 사랑은 사랑으로 흐릅니다.

따스한 사랑의 온기에 삶이 바뀐 적이 있으신지요? 억울해서 소화가 되지 않고 명치끝에 걸려 있기만 했던 버림받은 시간들이 그 온기로 인해 진실하고 다부진 에너지로 전환될 때 비로소 우린 ‘존재 이유’를 믿게 됩니다. ―‘이토록 깊고 큰 사랑, 받아보셨나요?’ 중에서

당신은 왜 어머니의 아들 혹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머니,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여인으로서, 남자로서 이해하는 거라고. 이해하게 되면 관대해지고, 관대해진 만큼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그랬습니다. 나 자신을 관대하게 풀어주는 일이야말로 인류 전체를 관대하게 풀어주는 일이라고.

부모는 참 희한합니다. 아무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죽어서도 스승이니까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꿈이 일어나 춤을 춥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제사는 나 자신과의 교감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중에서

템플스테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밥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먹을 만큼만 담기, 침묵 속에서 오로지 씹는 감각만 관찰하기! 밥과 멀건 국,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 생각해보면 초라한 밥상이었으나 한 번도 초라하게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은 그것이 바로 공양(供養)이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처음엔 밥 먹는 일을 모셔 올리는 공양이라 하는 데 놀랐으나, 놀라고 나니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밥을 먹는 일은 내 영혼을 공양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동안 나는 밥을 먹고 있을 때조차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칼로리를 먹고, 정보를 먹고, 사교를 먹었습니다. 밥과 나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가로막고 있어, 공양을 받아 공양을 함으로써 일상을 공양하는 마음을 잃었던 것입니다. 밥을 받는 태도가 바뀌니 생활이 바뀌네요. ―‘밥상을 대하는 태도’ 중에서

사실 명치끝에 걸려 소화되지 않은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털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몸살처럼 잘 앓고, 화두처럼 잘 품으면 됩니다. 따뜻한 마음은 그 사람이 대답하지 않는 걸 캐묻지 않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모두 알려 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되지 못해 묶이고 끊어진 이야기들이 그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흐를 수 있도록 그저 모닥불을 피워주면 됩니다. 불빛에 힘입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도록. 그리하여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귀 기울여 해답을 구하도록. 그렇게 얻은 자신의 이야기는 불빛 따라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 중에서

저자 소개

이주향 (수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대학 시절 사물과 현상의 배경을 탐색하고 해석하는 철학에 빠져들었고, 이후 전공을 바꿔 동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하며 석 ·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어렵고 난해한 철학 강의를 명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모교 강사 시절 강의했던 ‘문화와 사상’과 ‘현대 문화의 조류’는 늘 수강생이 몰려들어, 8백 명이 수강 신청을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서 대중에게 철학을 안내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BS ‘철학 에세이’, KBS 제1라디오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화두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풀어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저서로는 《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등, 주요 논문으로는 〈니체, 아타 그리고 비극의 탄생〉, 〈낡은 서판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시선과 그림자 이론 : 망상으로서의 선악의 구도를 깨는 차라투스트라의 노래〉, 〈기독교의 ‘죄’ 개념에 대한 니체의 비판과 ‘죄’ 사유의 긍정적 실천〉, 〈니체와 예수, 그리고 금강경 : 실체성 부정에 관한 고찰〉, 〈인간중심적인 대상적 차별을 넘어 : 니체의 헤라클레이토스와 원효의 일심을 비교하여〉, 〈누가 심성실재론자인가?〉, 〈불교적 자아와 21세기〉 등이 있다.

출처 : 문화웹진 채널예스>예스 인터뷰 > 만나고 싶었어요! 2015.09.04

http://ch.yes24.com/Article/View/29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