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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 바로크 미술 속 개 (2): 초상화와 개

라라와복래 2018. 7. 23. 23:59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바로크 미술 속 개 (2)

초상화와 개


안토니 반 다이크, <제임스 스튜어트 공작의 초상(Portrait of James Stuart)>, 1632~40년, 캔버스에 유채, 216×130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동물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고 그에 기대어 동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에게 개가 충성과 의리를 상징하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자가 개를 아끼는 이유

바로크는 초상화의 시대였다. 인간 중심의 세속문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시기라, 화가들은 인물을 중심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사람 곁에 더욱 가까이 자리 잡은 개는 다양한 상징과 역할을 품게 되었다. 당시 초상화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대체로 권력과 부를 지녔다는 의미였다. 캔버스를 앞에 둔 화가는 모델이 가진 권력의 크기와 높이, 사회적 위치와 이미지 등을 잘 고려하여 초상화를 그려야 했다. 현실의 생김새를 닮게 그리기보다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잘 구현해내야 했다. 초상화 속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그림의 주인공에게 부족한 혹은 강조하고 싶은 이미지를 보완하는 조연으로 훌륭했다. 거친 사냥터를 떠나 왕과 귀족의 응접실로 뛰어든 개는, 점차 예술적 표현의 대상으로 발전해서 초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신분이 상승했다.

개의 조상인 늑대는 계급사회를 구성한다. 개의 유전자 안에는 권력에 대한 냄새와 본능이 담겨 있다. 한 집단의 대장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대장의 지배와 명령에 따라 집단 구성원들은 복종하며 살아간다. 천성이 그러하니 계급사회를 이루는 인간은 쉽게 개를 길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개는 어떤 상황에 처해도 그 집단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개는 충성심이 강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제 이익을 좇으며 한번 내어준 마음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배신하나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키우던 개를 내버리지만, 버려진 개는 제 주인을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미련할 만큼 우직한 충성심 때문에 개들은 비극적인 죽음에 내몰리기도 한다. 무모할 만큼 단순한 의리는 인간이라면 갖고 싶은 친구의 가치다. 사람에게서는 찾기 힘든 순결한 충성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개를 늘 가까이 둔다.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갈수록 친구보다 적이 많아지니, 모든 것을 듣고 보아도 아무 말하지 않는 개는 권력자들의 동반자로 적합하다. 위험에 처한 주인을 위해 제 목숨까지 바치는 희생심과 더불어, 고양이와 달리 순수 혈통이 확실한 점도 궁전에서 많이 길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

유럽 북부 바로크 화풍을 대표하는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가 그린 스코틀랜드의 젊은 공작 제임스 스튜어트는 당당하고 패기 넘친다. 젊은 귀족답게 세상에 대한 자신감에 자칫 오만함마저 서린 분위기를 풍긴다. 풍성한 검은 옷과 화려하게 빛나는 은장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반 다이크는 공작이 강건한 그레이하운드를 손으로 쓰다듬게 했다. 이를 통해, 공작은 동물(혹은 동물처럼 낮은 신분의 백성)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인물임을 표현하고 있다. 불편할 만큼 다소곳이 모은 두 발과 공작만을 바라보는 눈망울에서 공작을 향한 개의 충성심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목에 걸린 목줄은 개가 매어 있는, 즉 명령을 받는 존재임을 밝힌다. 이때 저 개는 신하들을 상징한 것으로도 보인다. 공작은 타고난 신분뿐만 아니라 그에 적합한 자질도 갖추고 있다고, 그림은 말하고 있다.

결혼식 신부 곁의 개가 암시하는 것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년, 오크 패널에 유채, 82.2x6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결혼식 장면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플랑드르(Flandre, 현재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친 지역)에서 진귀한 상품을 거래하며 성공한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가 그의 약혼녀 조반니 체나미(임신 상태)의 손을 잡고 실내에 나란히 서서 결혼 선서를 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인 실내 사물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각각에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1)

우선 부부 사이에 놓인 후경의 거울에 화가의 모습이 비친다. 이것은 화가가 결혼식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모피와 실크 옷, 최고급 목가구와 베네치아제 거울, 터키산 카펫, 스페인산 오렌지 등을 통해 부부가 상당한 부자이며, 특히 남자 옆으로 열린 창문을 배치하여 남편은 바깥일을 하고, 여자 곁의 침대는 부인이 집안을 지키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이런 식의 해석을 주창한 이는 19세기 대표적인 서양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슈키(Erwin Panofsky, 1892-1968)였다. 그는 그림에 묘사된 결혼식 모습이 법적으로 혼인하였음을 기록하기 위해 그려졌다며, 남자가 오른손을 들고 왼손으로 여자의 손을 잡는 동작(결혼 서약식)과 대낮인데도 불 켜진 샹들리에와 촛불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시선을 그림 가장 아래로 내리면 신랑과 신부 사이에 검정 그리폰(griffon. 벨기에 원산의 애완견 일종)이 서서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림 밖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폰은 사랑과 신뢰의 상징 혹은 위신과 명망의 근거, 초상화 속 인물이 가진 강한 남성성 또는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파노프슈키는 당시 개는 충성과 성실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며, 이 그림에서 개는 부부 사이의 충성과 성실 그리고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심정을 표현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식의 주장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그의 주장은 나름 타당한 면이 있고,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면에서는 나름의 가치가 분명하다.

갤러리에서 아옹다옹하는 두 마리의 개


1. 다비트 테니르스, <브뤼셀 갤러리에 있는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1651~63년, 동판 위에 유채, 104.8×130.4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2. <브뤼셀 갤러리에 있는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부분)

색깔이 다른 두 마리의 테리어가 하나의 막대기를 물고 있다. 앞 발을 약간 당기고 서로 곁눈질을 하며 이빨로 꽉 물고 서로 자신의 막대기임을 맹렬히 주장하는 중이다. 이것은 천장까지 가득한 그림들을 사기 위해 벌였을 치열할 경쟁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개들 근처에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가 컬렉션의 주인 빌헬름 대공이다. 저 개들의 경쟁이 암시하는 바를 받아들여 해석하자면, 대공은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치르거나 남들보다 재빨리 그림을 사들여 자신의 미술관 벽면을 채웠다. 대공의 컬렉션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크 시대 북유럽 지역에서 유행한 화풍은 이탈리아 회화였다. 지금으로 치면 이런 종류의 그림은 당시 카탈로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그림을 사고파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귀족뿐만 아니라 시골 농부까지도 그림에 투자했다. 영국인 존 에블린(John Evlyn, 1620-1706)의 여행기에는, 당시 이 지역에서 열린 그림시장의 분위기가 잘 담겨 있다. “그곳은 그림으로 가득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림은)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흔한 상품이기 때문에 일반 농민도 기꺼이 그림에 200~300브라반트 파운드씩 지불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신의 집을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2)

개의 우아한 초상화


1. 알렉상드르프랑수아 데포르테, <흰 개(Chien blanc)>, 캔버스에 유채, 파리 사냥과 자연 박물관

2. 알렉상드르 프랑수아 데포르테, <딱총나무 수풀 앞의 흰 암캐(Chienne blanche devant un buisson de sureau)>, 1714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사냥과 자연 박물관

라스코 동굴과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그려지던 무렵부터, “사냥꾼들은 동물을 하나의 개체로서, 인격을 갖춘 피조물로서, 물질적이고 의식적인 면에서 사람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생명체로 대접했다.”3) 개는 특히 그러했다. 사냥을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사냥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동지였다. 목숨을 걸고 함께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때, 인간에 앞서 달려들고 죽을 때까지 그 먹잇감을 강한 턱과 이빨로 물고 놓지 않는 개에 대한 인간의 고마움은 말할 수 없이 깊었을 것이다.

또한 사냥감의 행동과 반응은 사냥꾼의 예상과 달라질 가능성이 컸다. 예측 밖의 일이 생길 때 곁의 동료를 믿어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 시대지만, 개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는 인간의 존중이 그에 바탕을 둔다. 그랬기에 원래 사냥꾼과 사냥개의 관계는 동등했다. 개가 집에서 가축으로 길러지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안전한 집과 먹을 양식을 보장해주면서 개는 인간의 소유물로 지위가 낮아졌다.

프랑스 바로크 시대 회화에서 동물, 특히 개와 사냥에 가장 이름이 높았던 화가는 알렉상드르 프랑수아 데포르테(Alexandre-François Desportes, 1661-1743)다. 명성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루이 14세의 개 <발타자르 초상화> 등 ‘개 초상화’도 탁월했다.

화면 가득 개 한 마리가 증명사진을 찍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흰 그레이하운드를, 데포르테는 야외에서 봤던 모양이다. 딱총나무 수풀 앞에서 자고새(꿩과의 새)를 주시하고 있다. 사냥을 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마치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신기한 것을 발견한 표정의 눈빛이다. 어쩌면 저 멀리에서 개가 새들의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다. 개의 후각은 인간보다 수백에서 수천 배 발달해 있다. 개 앞에서 인간의 후각은 보잘것없다. 그러니 개가 지각한 세상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고 세밀할 것이다. 개는 까만 코를 내밀어 주위의 모든 것들에 최대한 코를 밀착시켜 냄새를 깊이 빨아들여 몸을 채운다. 때로는 짐짓 눈까지 감고서 제 몸 안으로 들어온 냄새들을 하나씩 하나씩 음미할 것이다. 그렇게 쌓인 감각들로 가득한 개들의 내면의 풍경은 어떠할까. 인간으로서는 가 닿을 수 없고 그려낼 수 없기에 데포르테는 그 모습만이라도 그려야 했으리라.

개는 주인을 닮는다


윌리엄 호가스, <화가와 퍼그>, 1745년, 캔버스에 유채, 90X69.9cm,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화가는 그림 밖 우리를 보고, 개는 아마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보고, 우리는 개를 보고 있다. 서로 엇갈리는 시선이 묘한 삼각형을 만들어 낸다.

12,000년 전부터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한 인간에게 동물은 단순히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인간에게 필요한 뿔과 가죽을 제공하는 재료원이 아니었다. 일상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자 사회적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축제와 제의의 대상이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잣대이자, 연결점이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의 자화상을 보자. 만약 그림 속에 개가 없었다면 그림은 그저 한 화가의 특색 없는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 퍼그(몸이 작고 납작한 얼굴에 주름이 많은 품종)는 우리와 화가, 그리고 현재와 당시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다. 사냥과 노동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족 구성원이 된 최초의 동물, 개의 역할이 그러하다. 그림에서 주된 소재였던 종교가 물러선 자리를 도덕이 차지했을 때, 가장 탁월한 영국 화가는 윌리암 호가스였다. 유럽에서 미술의 변방이었던 영국의 지위를 단숨에 끌어올린 호가스는 마치 그림 속 개가 자신인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닮게 그렸다. 화가의 눈매와 퍼그의 주름진 눈, 화가의 붉은 모자 장식과 상의, 개가 내민 붉은 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호가스의 유머가 깃든 이중 자화상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고양이와 달리 개의 품종이 많아진 이유


토머스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Mr. and Mrs. Andrews)>, 1748~49년, 캔버스에 유채, 70x119cm, 런던 내셔널갤러리. 개는 귀족 부부의 늠름한 동반자이자, 배경으로 보이는 드넓은 평야와 더불어 풍부한 재산목록을 상징한다.


토머스 게인즈버러, <세인트 제임스 공원의 나무 그늘이 우거진 산책로(The Mall in St. James's Park)>, 1783년

캔버스에 유채, 120.6x147cm, 뉴욕 프릭 컬렉션

호가스의 퍼그는 아마 편안하게 살다가 제 수명을 다하고 죽었을 테지만, 한 세대 후 무렵에 프랑스 귀족 집에 있던 개들의 처지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으로 귀족들이 키우던 많은 개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가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으니 개들의 처지도 급변했다. 좋다면 좋은 점은, 18세기 말 이후로 새로운 품종들이 유럽과 프랑스에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와 달리, 인간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종의 개를 계속해서 만들었다. 그것은 인간이 키우기를 바라는 품종의 개의 유행을 초래했다.

“니스(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는, 행동 특성상 전투견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를 구입하는 것이 유행이다. 자연 선택의 원리가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4)

지금처럼 100여 가지가 넘는 많은 품종의 개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인간들 탓이다. 이런 이유들로, 바로크 시대 이후 초상화 속 개의 종류는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바로크 시대에는 확실히, 집 밖에 있던 개가 집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실내 동물이 되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개에게 사회화(socialisation)와 사교화(sociabilisation)의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아기 강아지는 엄마 개에게 개로서 필요한 행동 양식, 위계질서에 따른 제약과 대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사회화이다. 또한 함께 살아갈 인간에 대해 친숙해져야 하는 것은 사교화다. 이 두 과정을 어떻게 거치느냐가 성견의 성격과 태도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 애완동물(pet)로서 개의 인기는 탁월한 사교화 능력에 기댄다.

주석

1) 아르놀피니의 결혼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2) 양정무, 『그림 값의 비밀』, 매일경제신문사, p.247~8참조

3)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반니, p. 9

4) 피에르슐츠, 『개가 주는 위안』, 초록나무, p.118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파리 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 『파리 로망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뮤지컬 토크 2.0』, 『뮤지컬의 이해』,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등을 쓰고, 『파리 스케치북』,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번역하고,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사진을 찍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미술의 세계> 테마로 보는 미술>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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