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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 인상파 미술 속 개: 파리지앵들의 산책과 여가의 동반자

라라와복래 2018. 7. 29. 18:31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인상파 미술 속 개

파리지앵들의 산책과 여가의 동반자


귀스타브 카유보트, <프티 젠빌리에의 리차드 갈로와 그의 개>, 1884년, 캔버스에 수채, 89×116cm, 개인 소장


18세기 이후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회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화했다. 기계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농경사회에서의 동물들도 새로운 역할과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기차와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말은 교통수단이자 농업도구로서의 쓰임 대부분을 잃고 경주마나 사냥마처럼 여가와 스포츠 동물로 재탄생했다. 앵무새 등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혈통이 순수해서 고급 동물로 거듭난 개는 왕실이나 귀족들이 특히 선호해서, 야외 산책의 우아한 동반자로 거듭났다. 이런 시대의 변화는 회화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여전히 역사와 신화를 소재로 한 (신)고전주의의 힘은 강력했으나, 회화에 대한 혁신적인 관점을 가진 젊은 화가들이 인상파라는 이름으로 대거 등장했다.

개, 파리지앵들과 함께 산책하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교회와 왕, 귀족 등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화가들은 변화된 시대를 새로운 화풍으로 담아내려 했다. 사실주의를 계승하면서 회화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던 한 유파가 특히 두각을 드러냈다. 세상을 놀래킨 그들의 독창적인 화법은 당시 프랑스 화단의 주류였던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살롱파들에게 비아냥 섞인 명칭인 인상파라 불렸다. 대중들은 완전히 다른 그림 세계에 처음엔 거부하고 부정했으나 서서히 그 가치를 알게 됐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겠다는 사실주의자 쿠르베보다 어쩌면 시각에 대한 의존도는 인상파가 훨씬 높았다. 인상파는 풍경을 통해 눈이 느끼는 감각을 그림으로 잡으려했다. 빛은 시간에 속하고, 색은 공간에 속한다. 따라서 빛을 색으로 만들어내는 일에는 시공간에 대한 감각과 그것을 풀어내는 논리가 필요했다. 눈이 파악한 기계적 사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캔버스에서 형태와 색으로 변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네는 고전적인 화풍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표현해냈다. 마네의 성취를 밑거름 삼아 인상파들은 과거의 화법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그 길의 방향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길동무로서 그들은 함께했다.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두고 그들의 캔버스는 달라졌다.


클로드 모네, <생라자르 역, 열차의 도착(La Gare Saint-Lazare, arrivée d'un train)>, 1877년, 캔버스에 유채, 81.9x101cm, 케임브리지 포그뮤지엄

인상파에게 근대는 철, 철도, 연기(처럼 흩어지는 수증기)의 시대였다. 흙이 아닌 철로 이루어진 시대, 마차의 시대를 극복하고 수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을 탑재한 기차의 시대,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였다. 기술은 발전하고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수증기처럼 덧없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생라자르 역>에 그런 풍경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근대를 무어라 딱 꼬집을 수 없지만 그런 모호한 상징들이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철도>에서도 느껴진다.


에두아르 마네, <철도(Le chemin de fer)>, 1873년, 캔버스에 유채, 93.3×111.5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파리의 생라자르 역 근처에 마네가 애정했던 모델 빅토린 뫼랑(<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등의 모델)이 잠시 앉아 책을 읽다가 화가를 보고 있다. 그 옆의 흰 원피스에 푸른 리본을 묶은 소녀는 동료 화가 알폰소 이르쉬의 딸이다. 인물들 뒤로 세로로 곧게 뻗어내린 철장이 당시로서는 그림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과 구성이라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림은 예쁜 것을 예쁘게, 예쁘지 않은 것은 더욱 예쁘게 그리던 시절이라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면 여전히 저항감이 강했다.

파리는 19세기에 도시를 재정비하여 근대의 신도시로 변모했고, 신도시민답게 파리지앵들은 책과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이들의 여유롭고 한가한 순간을 인상파들은 개성적인 스타일로 표현했다. <철도>에서도 빅토린의 품속에 작은 강아지가 귀를 접고 고이 잠들어 있다.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강아지는 작고 연약해 제 주인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이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다.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초기의 사냥의 동반자와 비교하면 개와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이제 개는 도시의 집 안 동물로 자리 잡았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유럽 다리(Le Pont de l’Europe)>, 1876년경, 캔버스에 유채, 124.7x180.6cm, 제네바 프티팔레 박물관. 카유보트가 처음에 그린 데생 <유럽 다리>에는 개가 없다. 당시 도시의 남자 산책자들에게 개는 보편적인 동반자였기에 카유보트가 완성작에는 그려 넣지 않았을까?

파리의 유럽 다리 아래로 지나는 기찻길은 생라자르 역을 향한다. 마네의 <철도>의 배경이 된 근처 다리에서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는 이 그림을 그렸다. 마네가 세로로 곧게 뻗어내리는 검은 철장을 그렸다면, 카유보트는 그림의 절반 이상을 다리의 철골 구조로 채우고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구조물을 따라서 소실점까지 향한다. 하늘은 푸르고 그림자가 짙게 바닥에 드리워져 검은 철골의 위압감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철골 난간에 기댄 남자가 기찻길 방향을 보고 있고, 옷을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 신사와 베일을 내리고 양산을 쓴 숙녀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온다. 설마 혼자 개가 산책할 리는 없을 테니, 아마도 전면의 개는 제 주인의 산책을 이끌고 있는 듯하다. 개가 주인의 산책로를 익숙하게 알 만큼 그들은 산책을 자주 하는 모양이다. 이것이 도시의 삶이다. 같은 길을 걷지만 서로 엇갈려 지나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오늘 거리에서 본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모르는 숨막히는 익명성을 근대사회의 핵심이라고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썼다. 농경사회의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아는 대신, 산책을 하지 않는다. 산책은 도시의 시민, 부르주아의 삶의 방식이었다.

이 그림에서 화가의 시점은 개 바로 뒤에 선 사람과 일치한다. 마치 저 개의 주인이 화가로 느껴진다. 시점과 구도가 이전의 회화들이나 다른 인상파들과도 확연히 차이난다. 카유보트는 드가와 더불어 사진적인 시점과 구도를 회화에 자주 적용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이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잘 찍은 스냅사진처럼 현대의 관람객들에게 다가온다.

뱃놀이의 분위기 메이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점심(Le déjeuner des canotiers)>, 1880-1881년, 캔버스에 유채, 130.2x175.6cm, 워싱턴 필립스컬렉션. 남자에게 개가 산책의 동반자였다면, 여자에겐 좋은 놀이 상대 혹은 살아 있는 인형이었다.

근대적인 개인의 사적인 삶의 풍요를 위해 여가(loisir)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식사 모임, 소풍, 산책, 보트 타기, 경마, 휴가, 축제, 극장 관람 등이 일상화되었다. 특히 주말과 여름휴가 동안 야외에서의 여가생활이 빈번해졌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뱃놀이 점심>은 파리 도시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속화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던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목욕하는 디아나>를 통해 화가로서 소명을 느꼈다고 밝힐 만큼, 18세기 프랑스 회화를 좋아했던 르누아르는 처음에는 신화적인 모티프를 즐겨 그렸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고전적인 화풍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살롱전에 낙선하면서 새로운 화풍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인상파 시기를 대표하는 이 작품을 그리던 무렵, 미래는 어두웠다. 경제적으로 궁핍했기에 130x173센티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슬픈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거장이라는 말처럼, 특유의 낙천성으로 이 그림 어디에도 당시 자신이 겪던 생활의 곤궁함이 보이지 않는다.

1880년 4월부터 7월 동안 파리 근교 도시 샤투(Chatou, 동료 화가 모네와 함께 그림에 대한 탐구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에서 작업했는데, <뱃놀이 점심>은 태양이 환히 내리쬐는 여름 오후에 와인을 곁들인 선상 파티를 즐기는 청춘남녀를 담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자. 저 멀리 강에는 흰색 요트가 떠다니고, 붉은 줄무늬 차양막이 드리워져 햇빛을 막아주는 동시에 그림에 붉은 톤을 잔잔하게 깔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와인에 가볍게 취한 듯 청춘남녀의 얼굴은 더욱 발그스레하며, 하얀 테이블보와 투명한 유리잔에 빛이 반사되어 떨린다. 전체적으로 풍족하고 여유로우며 생기로 충만하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의 구체적인 생김새를 잡으면서도 얼굴과 몸에 산란하는 빛의 움직임을 밝은 색채로 더하고 있다. 여기에 풍경을 구성하는 나무 등은 인상파 특유의 붓질로 마무리해서 그림은 현실감으로 생생하다.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하며 예쁜 것이어야 한다. 가뜩이나 불쾌한 것이 많은 세상에 굳이 그림마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그의 고백처럼, 르누아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삶의 어두움보다는 환희를 노래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동그란 얼굴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림 전면 왼편에 붉은 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몸집이 작은 테리어 강아지와 즐겁게 놀고 있는 여자도 그러하다. 그녀는 알린 샤리고라는 여인으로, 훗날 르누아르와 결혼한다. 테이블 위에 올라앉은 테리어는 마치 살아 있는 인형처럼 혹은 아기를 어르는 엄마처럼 알린의 훌륭한 놀이 상대로 보인다. 로코코 시대에 주인의 연애 현장의 증인이었던 강아지는 이제 여가를 즐기는 도시 중산층의 동반자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앙토니 아주머니의 여인숙에서>, 1866년, 캔버스에 유채, 193x130cm, 스톡홀롬 내셔널뮤지엄

중절모를 쓴 부르주아 남자가 카페에서 신문을 읽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즘 도시인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근대사회에서 외식과 카페 문화는 널리 퍼져 나갔다. 흰 털이 수북한 개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여인숙에 묵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인지, 여인숙의 개가 투숙객인 부르주아 남자의 의자 밑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저 개로 인해 그림 속 장면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현대의 우리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줌은 확실하다. 또한 저곳에서 가장 귀염받는 분위기 메이커였을 것이다. 개가 있는 공간에서 어색함은 좀체 없다. 낯선 상대들과 개를 빌미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가 드가, <무용 수업>, 1871~74년, 캔버스에 유채, 85x7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인상파전에 일곱 번이나 출품했지만, 그림 자체는 고전주의자의 면모가 더 강하다.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몇 안 되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법학을 공부한 후 그림으로 방향을 틀었다. 살롱의 거장 앵그르에게 직접 배웠던 탓에 전체적인 화풍에서는 그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외골수의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의 드가는 평생 그를 존경했다.

드가는 탁월한 데생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발레리나와 말처럼 순간적인 대상의 움직임을 아주 잘 포착했다. 여기에 카유보트와 마찬가지로, 사진 카메라의 화각처럼 캔버스를 구성했다. 두 가지 특징이 결합되어 드가는 막 시작되던 근대사회의 속살을 독특하게 포착한 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에드가 드가, <마구간의 말과 개>, 1861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이탈리아 여행을 한 후 르네상스 미술에 관심이 있을 무렵에 완성된 초기작 <마구간의 말과 개>는 후기 작품과 비교할 때 드가만의 특징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그는 즐겨 그린 말과 아주 드물게 소재로 삼은 개의 이중 초상화로 구성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당시 말은 마차와 같은 운송 수단의 쓰임은 거의 없어지고, 도시 근교에서는 승마로 이용되었다.

건초를 한 입 물고 있는 말은 휴식 중이고, 전통적으로 사냥의 동반자인 개는 두 다리를 모으고 화가를 보고 있다. 사냥과 승마는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였고 그것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함께 그렸지만, 들판을 달려야 할 말은 마치 개처럼 주인에게서 잘 가꾸어진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아마 말의 당시 처지가 그러했을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그림의 비애감은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여성 인상파 화가와 개


베르트 모리조, <쥘리 마네와 그녀의 그레이하운드 라에르트>, 1893년, 캔버스에 유채, 73x80cm,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인상파의 등장으로 ‘화가=남자’라는 오래된 현실은 과거가 되었다. 매리 카셋과 수잔 발라동,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 등이 자기만의 예술적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흔히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부드러운 표현이 돋보인다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편견에 가깝다. 그녀들은 그동안 남성 화가들에 의해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던 세계를 그렸고, 그것이 서양미술사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 모델을 바라보는 남성 화가들의 시선에는 애정과 욕망, 관음과 두려움 등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성 화가들이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다르다. 화가가 엄마이고 모델이 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림에 담긴 따스함은 그런 특수한 관계와 더불어 그레이하운드가 제 목을 주인에게 내밀고 쥘리는 손으로 턱밑을 쓰다듬는 행위에서 기인한다. 엄마와 딸이 그러하듯,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도 ‘보호자와 피보호자’를 넘어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 ‘감정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개는, 근대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더 이상 애완동물이라 부를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상대는 인간인데, 개는 그런 상처를 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관계를 인간과 맺기 때문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파리 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 『파리 로망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뮤지컬 토크 2.0』, 『뮤지컬의 이해』,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등을 쓰고, 『파리 스케치북』,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번역하고,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사진을 찍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미술의 세계> 테마로 보는 미술>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201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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