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Verdi, Macbeth)

라라와복래 2018. 9. 11. 11:23

Verdi, Macbeth

베르디 ‘맥베스’

Giuseppe Verdi

1813-1901

Macbeth: Leo Nucci

Lady Macbeth: Tatiana Serjan

Banco: Giacomo Prestia

Macduff: Gabriele Mangione

Malcolm: Papuna Tchuradze

Orchestre et Chœur de l'Opéra Royal de Wallonie

Conductor: Paolo Arrivabeni

Opéra Royal Wallonie-Liège

2018.06.12


Opéra Royal de Wallonie 2018 - Verdi, Macbeth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대단한 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높은 지위에서 불행 속으로 추락해 비참하게 끝장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비극이라 말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1606년경) 역시 이런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비극의 주인공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극을 초래하는 성격상의 결함 말입니다. 햄릿은 자기성찰이 지나쳐 우유부단하고, 오셀로는 반대로 성찰과 의심이 부족해 남의 말을 쉽게 믿어버리죠. 열등의식이 강한 탓에 질투심도 유난히 강합니다. 리어 왕의 경우에는 지나친 자부심과 고집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비극 중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다는 마녀들의 예언을 그대로 믿어버린 맥베스입니다. 바라지 않았다면 믿지도 않았을 텐데요, 그 내면의 야심이 헛된 점괘를 믿게 만들어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었죠.

동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풍자작가 벤 존슨보다 셰익스피어 비극이 더욱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어떤 잘못과 악덕에 의해 비극이 초래되는가를 보여주면서 관객이나 독자가 교훈을 얻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세페 베르디는 워낙 책을 많이 읽는 작곡가여서 셰익스피어, 실러, 위고 등의 문학 작품에서 스스로 오페라 소재를 구했는데요, 그중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베르디 초기 걸작, <오셀로>는 말년 걸작 <오텔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가 영어로 쓴 작품이지만, 1847년 피렌체에서 초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대본은 작가 프란치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이탈리아어로 썼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맥베스는 막베토, 뱅코는 반쿠오, 맥더프는 막두프로 불리죠. 하지만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원작 속의 이름들을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인간을 현혹하는 운명의 점괘

1막

이야기의 배경은 11세가 스코틀랜드. 마녀들이 사는 숲속에서 1막이 오릅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던 맥베스와 뱅코 장군은 희한하게 생긴 마녀들과 마주치죠. 그들은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에게 ‘코더의 영주가 되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려주고, 뱅코에게는 ‘왕들의 아버지가 된다’고 말합니다. 곧 전령이 나타나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로 봉해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두 장군은 깜짝 놀라죠.


맥베스의 운명을 예언하는 세 마녀.

장면이 바뀌어 맥베스의 성입니다. 맥베스 부인이 남편의 편지를 읽으며 마녀들의 예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야심에 불타는 부인은 덩컨 왕이 맥베스의 성에서 묵는다는 전갈을 받자 왕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고(오세요, 당신에게 힘을 드릴게요 Vieni! t'affretta!),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덩컨 왕은 맬컴 왕자와 맥더프 장군을 거느리고 맥베스의 성에 도착합니다.

밤이 되고 성안의 모든 사람이 잠들자 맥베스는 단검을 들고 왕의 침실로 들어가죠. 부인은 일을 치르고 나온 남편을 격려합니다. 두 사람은 이중창 ‘내 운명의 아내여! Fatal mia donna!’를 노래하고, 부인은 증거 인멸을 위해 칼을 들고 왕의 침실 앞으로 가서 이미 죽은 호위병 손에 그 칼을 쥐어줍니다. 아침이 되자 왕의 죽음을 알게 된 모든 사람은 경악과 공포 속에서 ‘암살자를 찾아내 벌해 달라’고 하늘에 외칩니다(지옥이여, 입을 벌려라 Schiudi, inferno, la bocca ed inghiotti).

2막

2막입니다. 주위의 의심을 무마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 맥베스는 뱅코를 향한 마녀들의 예언이 마음에 걸리죠. 부인과 의논한 그는 뱅코 일가를 모두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아들을 데리고 숲길을 지나가던 뱅코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어린 아들의 걸음을 재촉합니다(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 Come dal ciel precipita). 매복해 있던 암살자들이 두 사람을 에워싸자 뱅코는 필사적으로 아들을 도망시키고 자신은 칼에 찔려 죽고 맙니다.

맥베스의 즉위를 축하하려고 귀족들이 연회에 모였습니다. 자객이 뱅코를 죽이고 아들을 놓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맥베스는 뱅코의 환영을 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실성한 듯한 행동을 보입니다. 귀족들은 맥베스의 말과 행동으로 그가 덩컨 왕을 살해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연회장에 나타난 뱅코의 환영을 보고 놀라는 맥베스. 테오도르 샤세리오 작품

3막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맥베스는 좀 더 자세한 예언을 들으려고 3막에서 다시 숲속 마녀들을 찾아갑니다. 맥베스를 위해 마녀들이 불러낸 귀신들의 예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맥더프를 조심하라. (2)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 (3) 버냄의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맥베스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맥베스는 이 말에 안심하지만, 뱅코의 자손들이 왕이 되느냐는 그의 질문 뒤에 뱅코의 유령이 나타나자 기절하고 맙니다. 예언 이야기를 들은 맥베스 부인은 뱅코의 아들과 맥더프를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4막

4막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국경의 황무지에서 시작합니다. 맥베스의 독재를 피해 국경지대로 온 망명객들은 짓밟힌 조국을 슬퍼하는 합창을 부릅니다. 맥더프가 없는 사이 그의 성은 불태워지고 처자식은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맥더프는 참담한 심정으로 ‘아, 내 아들들아 O figli miei’를 노래하지요. 죽은 덩컨 왕의 아들 맬컴 왕자는 군대를 이끌고 맥베스의 성을 습격하기로 합니다. 병사들을 버냄 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시킨 맬컴은 맥더프를 격려하며 그와 함께 ‘배신당한 조국이 우리를 부른다’고 노래합니다.

한편 성 안의 맥베스 부인은 의사와 시녀가 숨어서 지켜보는 가운데, 물을 떠서 손의 핏자국을 씻으려 합니다(여기 아직도 핏자국이 Una macchia e qui tuttora). 물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핏자국이지요. 부인이 실성해 혼자 독백을 이어가는 이 장면을 보고 의사는 왕의 시해를 짐작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와 연합한 맥더프의 반란군이 마침내 맥베스의 성으로 쳐들어옵니다.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을 믿고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지요. 그는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Pieta, rispetto, amore’라는 아리아로 ‘사랑 받지 못하고 철저히 고립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시녀가 부인의 죽음을 맥베스에게 알립니다. 그런 다음 버냄의 숲이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지요. 맥베스는 맥더프 장군과 정면으로 맞서 승부하다가 그의 칼에 쓰러집니다. 맥더프는 어머니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였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새 왕 맬컴을 찬양하는 승리의 합창과 함께 막이 내립니다.

드라마틱 오페라를 위한 음색의 혁명

<맥베스>는 러브스토리가 결여되고 오페라의 미학적 원칙을 위반한 독특한 오페라로 평가됩니다. 주인공에게 열정 대신 병적인 영혼을 부여했기 때문이죠. “<맥베스>는 정말 위대한 비극입니다. (중략) 우리가 (이걸 토대로) 대걸작은 못 만든다 해도 일상적 수준은 피해봅시다.” 베르디는 대본작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음색의 혁명’이라는 요소가 중요한데요, 베르디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맥베스 부인 역에 음색이 거친 소프라노를 기용해서 관객을 놀라게 했습니다. 분노와 격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맑고 고운 음색은 곤란하다는 것이 베르디의 견해였답니다.

<맥베스>의 무대 연출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11세기 중세 유럽의 요새를 오페라 무대에 재현하려면 시종 어두운 조명으로 일관하게 되어 관객을 피로하게 만들죠. 그래서 아예 무대를 현대로 옮겨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주인공의 성격을 살펴보면,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두려움에 떨고 망설이는 맥베스에 비해 맥베스 부인은 마치 악을 타고 난 듯 당당하고 의연하죠. 그러나 극의 후반으로 가면서 맥베스 부인 역시 양심의 가책으로 실성하고 맙니다.

그럼 이 극의 핵심 요소인 마녀들의 예언을 조명해볼까요? 그들의 예언은 전부 적중했고, 모든 예언은 맥베스에게 긍정적인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맥베스는 파멸했습니다. 운명의 호의를 믿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연극과 오페라의 차이를 보면, 반역자 코더 영주의 처형 등 오페라에서는 연극의 세부사항들이 많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반면, 오페라에서는 합창을 이용해 원작보다 마녀 장면 및 군중 장면의 효과를 더 생생하게 살리는 게 가능합니다. 셰익스피어 원작은 덩컨 왕 살해 전 무대가 일곱 곳이지만, 오페라에서는 두 군데로 압축했습니다.

맥베스는 11세기에 실존했던 스코틀랜드의 통치자로, 1040-1057년 사이에 왕좌에 있었습니다. 당대의 연대기와 전기적 사실 등을 자유롭게 조합해 만든 비극이니 다른 작품들에 비해 현실과의 연관성이 뚜렷한 작품이죠. 주인공 맥베스는 원래 왕의 충직한 신하였다가 마녀들의 예언과 야심만만한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악인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맥베스를 용감하고 강인하면서도 살인 전후에 망설임과 회한을 느끼는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 관객의 연민을 얻도록 했습니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왕위를 찬탈하는 행위는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왕권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왕권신수설(divine kingship)이 아직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왕이 부족한 점이 많거나 폭군이라 해도 신이 그를 교정하거나 폐위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인간의 의지로 왕을 몰아내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베스의 왕위 찬탈은 그 자체로 죄악시되며, 결말에 가서 덩컨 왕의 아들 맬컴이 즉위하는 것은 당연한 질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Verdi, Macbeth

Macbeth: Carlos Álvarez

Lady Macbeth: Maria Guleghina

Banquo: Roberto Scandiuzzi

Macduff: Marco Berti

Malcolm: Javier Palacios

Orquestra Simfònica e Coro del Gran Teatre del Liceu

Conductor: Bruno Campanella

Gran Teatre del Liceu di Barcellona

2004.03.30

추천 음반 및 DVD

1. 피에로 카푸칠리/셜리 버렛,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음반, 1976년 녹음, DG

2. 레오 누치/셜리 버렛, 리카르도 샤이 지휘. 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클로드 다나 연출. DVD, 1987년 영화판(한글 자막), DG

3. 토마스 햄프슨/파올레타 마로쿠, 프란츠 벨저-뫼스트 지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데이비드 파운트니 연출. DVD, 2001년 실황(한글 자막), 스펙트럼

4. 사이먼 킨리사이드/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코번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필리다 로이드 연출. DVD, 2011년 실황. Opus Arte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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