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후고 심베리의 ‘상처 입은 천사’

라라와복래 2018. 9. 15. 07:53

후고 심베리의 ‘상처 입은 천사’


후고 심베리, 상처 입은 천사, 127x153cm, 캔버스에 오일, 1903, 헬싱키 아테네움 국립미술관 소장

상처를 입은 천사가 들것에 앉아 있습니다. 날개가 꺾였는지 축 처져 있고, 두 눈은 흰 붕대로 가려져 있습니다. 손에 들려 있는 꽃은 시들었습니다. 두 소년이 그런 천사를 들것에 태워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소년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앞장선 소년은 장례식에라도 가는지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앞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흑인으로 보이는 뒤의 소년은 허름한 옷에 가죽장화를 신고 있습니다. 배경의 호수와 땅도 빛을 잃었으며 꽃도 만발해 있지 않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이 그림의 작가 후고 심베리(Hugo Simberg, 1873-1917)는 핀란드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로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가득한 초자연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두 가지 캐릭터는 죽음과 악마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개 음울한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심베리는 상징성이 가득한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다만 “사람마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자신의 내면의 것을 볼 따름”이라고 짧게 대답했을 뿐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첫 전시 도록에 작품 제목 대신 줄 하나 달랑 그어 넣었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무언가 강렬히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듯한 이 그림을 두고 아마란스(Amaranth) 꽃이 생기게 된 사연이 담긴 핀란드 전설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는 둥 어른들의 지나친 기대에 상처 입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그림이라는 둥 갖가지 해석이 떠돕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작품이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기는 하지요. 아무튼 라라와복래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은 이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여기저기 웹서핑을 해보았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정보는 얼마 없더군요. 몇 가지 그럴듯하거나 흥미 있는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어쨌든 그림 감상은 자유!!~~

천사는 왜 부상을 당했을까?

흑인 소년의 눈빛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하나, 핀란드 전설 배경 이야기

눈에 상처를 입고 날개가 꺾인 천사가 마을 어귀 시냇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물가에서 놀던 두 아이가 그런 천사를 발견하고 치료하려고 들것에 태워 마을로 데려옵니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지고한 존재인 천사가 부상을 입을 수 없으니 천사로 가장한 마녀임에 틀림없다면서 불태워 죽이려고 합니다. 천사는 슬퍼하며 하늘로 되돌아갑니다. 천사의 눈에서 흘러 떨어진 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아마란스(꽃말은 ‘시들지 않는 사랑’입니다)로 피어납니다. 이상이 아마란스 꽃에 얽힌 핀란드 전설입니다. 다음 동영상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나이트위시의 뮤직뮤디오입니다.

NIGHTWISH - ‘Amaranth’

‘아마란스’란 제목의 노래를 부른 나이트위시는 1996년에 결성된 핀란드의 심포닉 메탈 밴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뮤지 비디오 배경으로 아마란스 꽃에 얽힌 핀란드 전설을 넣었습니다. 이 뮤직 비디오는 현재 조회수 1억 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둘,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설명

핀란드 화가 후고 심베리가 그린 ‘부상당한 천사’는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혼났을 때 그들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묘사한 그림입니다. 부상당한 천사.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천사는 머리가 깨져서 흰 천으로 머리를 감쌌습니다. 날개도 꺾여 안쪽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지만, 천사는 지금 날기는커녕 걷지도 못합니다. 두 명의 어린이가 이 불쌍한 천사를 어디론가 나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그들 역시 천사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의 아이는 슬프다 못해 화가 나 있습니다. 제발 우리를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림의 천사는 이렇듯 어른들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듣거나 혼이 나 풀이 죽을 대로 죽은 아이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이주헌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에서

그 셋, 인터넷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이야기(글쓴이 미상)

“아빠, 왜 천사의 눈을 가리고 가는 거야? 또 왜 저 소년은 불만에 찬 표정인 거야?”

“흐음, 그건 말이지, 저 천사에게 자신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야.”

“왜?”

“저 천사는 고결해서 자존심도 강하거든. 근데 자신이 평소 도움을 주던 생명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 속상할 테니까…”

“그럼 왜 소년은 화가 난 표정이야?”

“소년은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거든. 신이 눈을 가리게 한 이유를. 그것이 천사를 배려하기 위함이란 것을. 그래서 소년은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야. 추락한 천사들을 도와주는 건 지상에 살고 있는 자신들이란 걸. 자신들은 환한 광명도 우아한 흰 날개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 고결한 천사들이 다쳤을 때 도와주는 건 바로 이름도 없고 더러운 손과 얼굴의 자신들이란 걸 말하고 싶은 거란다. 하지만 신의 명령 때문에 그걸 말할 수는 없어서 조금은 화가 난 것이란다. 아들아,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도 이런 것이란다. 아름다움만이 선은 아니야. 너는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는 선도 찾아내야 하는 거란다. 물론 눈이 가려진 넌 진실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 하지만 말야, 네가 세상살이에 추락해버릴 때 너를 도와줄 투박한 손이 찾아온다면, 넌 그 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지 않는 선이 있을 뿐이니까 말야…”

2006년 핀란드의 국립미술관이 실시한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 설문조사에서 후고 심베리의 ‘상처 입은 천사’가 1위에 올랐으며 핀란드의 문화 아이콘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전하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