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시인 박시하의 ‘너에게 시는 무엇인가?’는 뉴스레터 <위클리 수유너머> 38호(2010-10-26) ‘시 특집’에 실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박시하는 1972년 생으로,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작 ‘바닥이 난다’로 등단하였습니다. 박시하의 시 몇 편을 덧붙입니다.
너에게 시는 무엇인가?
이제부터, 나는 너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그 전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혹은 던지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오후의 전철 안, 기타를 들고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 그는 전철 통로에 앉아서 기타를 퉁긴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잠을 잔다. 누군가는 깨어 있어 노래하는 남자를 지켜본다. 누군가는 그의 앞에 놓인 상자에 동전을 던져 넣는다. 누군가는 책을 읽는다. 누군가는 깨어나지 못하고 잠을 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누군가들을 지켜보는 누군가이다.
지하에서 나와 지상을 달리는 지하철 안. 창밖으로 무심히, 반대 방향 열차가 빠른 속도로 스쳐간다. 아마도 그 안에는 다른 누군가들이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는 같은 열차에 타고 여행을 한다. 나는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로 지칭되는, 언젠가 스쳐 지나갔을 혹은 앞으로 스쳐 지나가게 될, 물론, 스쳐 지나갈 뿐인 사람들.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1)를 듣는다. 혹은 듣지 않는다.
이 열차는 S역 행 열차다. S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내린다. 열차는 텅 비었다. 여행은 끝났다. 같은 열차에 탔던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여행은 시간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하다. 기억이 되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하는, 공유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시공간. 그 안에 ‘우리’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된다. 그들이었지만, 또 우리이기도 하다.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알 듯 모를 듯한, 그들과 우리. 접점을 가진 듯도 하고, 접점이 전혀 없는 듯도 한. 그러나 분명히 한 순간, 같은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자, 그럼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2)이다.
1. 시는 노래인가? 들리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책을 읽고 있던 우리들에게 같은 시간에 다가왔던 어떤 느낌인가?
2. 시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열차인가? 보이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본 적이 있지만 본 적이 없는 지나감인가?
3. 혹은, 시는 공간인가? 우리가 함께 타고 있었던, 지하를 달리거나 지상으로 나와 달리는 열차의 공간. 목적지가 있지만 결국은 아무런 목적지도 없는 한 량의 열차 안인가?
4. 시는 짧은 여행인가? 삶과 비슷하지만, 정작 삶 그 자체는 아닌 시간인가?
5. 시는 보이는 것인가? 혹은 들리는 것인가? 만져지는 것인가, 또는 먹거나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정형인가, 비정형인가, 구상인가 혹은 추상인가?
6. 나는 이 질문을 너에게 던졌다. 그런데 너는 누구인가? 울며 지나가는 아이, 핫팬츠를 입은 소녀, 끝까지 눈 뜰 기색이 없어 보이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열차를 내리는 남자, 당신들이 너인가? 그리고, 나인가?
당연히, 이런 질문은 매우 모호하다. 이 질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때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모호하기 때문에 질문은 더 많은 것을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너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건물은 무엇인가? 이 건물이 보이는가?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지는 않는가?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들은 너인가, 혹은 나인가? 너이고, 동시에 나인가?
지금까지 나는 너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기는 한가? 게다가, 하필이면 왜 ‘시’인가?
보이는 것과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질문이라면, 그 질문에는 답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기엔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답을 찾아보자는 제안이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노력이나 제안에서, 아니면 그저 어떤 질문이나 차이에서 무언가를 본다. 그것은 ‘말’이다. 그림자가 있는 말들, 세상의 그림자 없는 것들에 대항하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말들이다.
강제 철거되기 직전의 건물, 단전되어 암흑으로 덮인 공간. 세상의 끝에 몰린 사람들, 그들을 살리고자 올라간 세상의 끝. 그것은 어떤 사실, 이미지, 혹은 감정인 동시에, ‘말’이어야 한다. 그 말들은 이윽고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말이 질문이 되고, 질문은 다시 말을 만든다. 질문과 질문의 틈바구니에서 생긴 말들이, 세상의 그림자에서 나온 말들이 던지는 질문. 그렇다면, 너에게 혹시, 저들이, 저 말들이 바로 ‘시’이지는 않는가? 비록 네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었거나, 또는 결국은 그냥 내린다고 해도 말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시는 무엇인가?
시는 너인가, 혹은 나인가? 시는 저들인가, 또는 그들인가? 시는 우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가, 없는가?
그러니까, 결국, 어쩌면, 시는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던지고 있는, 이 질문 자체인가?
p.s. 마지막으로, 어째서 내가 너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질문’이, 시의 ‘정치’이리라.)
(1) 여기서의 ‘노래’는 네가 생각하듯이 ‘시’에 대한 은유이다. 단, 이 노래는 ‘시가 너에게 무엇’인가’라는 문에 한해서만 ‘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 노래가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혹은 완성되거나 완성되지 않거나 하는 문제에 대한 은유는 전혀 아니다.
(2) 물론, 이 질문은 그 질문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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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난다
비둘기 날개 한 쌍이 바닥에 깔려 있어
몸은 잃고 상징만 남았네
썩지도 않고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평화가
바닥을 치고 있어
하늘을 날던 몸짓은 타이어에 으깨져서 더욱 가벼워
뒷골목 찌꺼기 먼지 속에서 자라난 깃털
바닥에 자꾸 새겨지고 있어
스릴이 없다면 한순간도 살 수 없지
날아 본 적 없는 아스팔트 위로
날개의 기억이 촘촘히 스캔되고 있어
구구구, 울면서
저렇게 너덜너덜한 비상의 무늬가
혹시 나에게도 있을까?
추락하던 내 날갯죽지가 문득 간지러워
구구구,
내일이 돋아나고 있는 걸까?
날개들은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어서
비상할 수도 있는 거, 맞지?
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거잖아
근데, 저 선명한 날갯짓은
얼마나 더 오래 추락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낮은 곳으로 깔리는 땅거미 구름
구름을 끌고 내려온 그림자
그림자 한구석에 박혔던 돌멩이들과 함께
구구구,
바닥이 떠오르고 있어
―<작가세계>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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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거울
사막과 별은 달라서 좋아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아서 좋아
나는 피투성이로 빛나네
되도록 멀리서 빛나는 게 좋아
어릴 적에 베어낸 두 발은
검은 풀 뒤덮인 정원에 묻고
난쟁이의 발자국처럼 비밀스럽게
밤마다 손톱에 달을 그리네
발뒤꿈치에서 뽑은 푸른 깃털로
높디높은 유리산을 쌓네
이 까마득함이 좋아
끝없이 미끄러지면서 되돌아오는 노래가 좋아
인두겁을 쓰고도 네 발로 기어서
죽은 달의 등뼈를 타고 오를 거야
당신의 거울이 될 거야
―<창작과비평> 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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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장
한쪽이 무거워진 새장은 기울어 있다
문은 닫혀 있고 열쇠는 반짝이지 않는다
낡은 철창에 푸른 번개가 치면
숨은 장소들이 삐걱삐걱 나타난다
뼛조각들을 희미하게 드러내며
별들의 어둠을 이어 붙인다
부유한 어제는 죽었다
가난한 내일이 홰를 친다
우리는 낮에만 태양이 타오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밤에만 별이 빛난다고 믿는다
너에게 나는 빛나고 있니?
빛나는 건 모두 멀리 있니?
우리는 말이 새어나올까 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잠이 든다
우리의 귀는 새를 닮아 있고
심장은 새장 모양이다
새장을 열고 날아간 새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문장 웹진>(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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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별의 유언이
바닥에 내리는 것을 보았어요
푸드득 푸드득
붉은 나비들이 날아올라요
별의 주검이 하얀 날개를 토해요
사라지는 입들이
사라지는 이름을 자꾸만 불러요
사라지는 사람이
웅얼웅얼 바닥을 들어올려요
8월의 혀처럼 뜨거운
바닥이 등을 구부리고 언덕이 돼요
우린 붉은 언덕을 사랑하고
푸른 죽음을 사랑했지만
바람으로 바람을, 순간으로 순간을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타오르는 다섯 망루를
별의 높이에 세우려 하나요?
기도문이 손을 흔들며 입 안으로 들어가요
입이 몸 안에 맺혀요
우리의 무게를 꽉 다물어요
저 깃털 같은 입들이
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소설가 김연수의 감상
밤하늘의 별자리들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하늘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별자리들도 있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별자리로 인정받지 못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고양이 자리.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 랄랑드란 사람의 추천으로 만들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사라졌어요.
또 다른 별자리로는 안티노우스 자리가 있습니다. 하드리안 황제의 연인으로 나일 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황제를 구하고 대신 죽은 미소년입니다. 그를 기려 황제는 밤하늘에 그의 자리를 마련했지만, 지금은 별자리 목록에서 사라졌지요. 보이는 세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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