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고진하 시집 <거룩한 낭비>에서

라라와복래 2011. 4. 25. 12:53
 

 

시인 고진하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 기슭 ‘살구꽃 언덕’ 행구동에서 산다. 목사인 그는 그 집에서 몇 안 되는 신자들과 함께 한살림교회를 꾸려가고 있다. 요가 수행자인 아내를 따라 아침저녁으로 수행하면서 인도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도와 네팔 등을 자주 여행하면서 쓴 글 모음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2009, 비채)을 펴냈다. 딸은 인도로 조각 공부를 갔다가 수피인 무슬림 청년을 만나 결혼하였다. 강원 영월에서 태어나(1953) 감리교신학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87년 <세계의 문학>에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숭실대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거룩한 낭비

고진하 시집

웅진 문학에디션 뿔 2011-04-15

 

    거룩한 낭비


    이 휘황한 물질적 낙원에서

    하느님

    당신은 도무지

    소용 없고

    소용 없고

    소용 없는 분이시니


    내 어찌

    흔해빠진

    공기를 낭비하듯

    꽃향기를 낭비하듯

    당신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거룩한 낭비


    적설 30cm, 때아닌

    폭설에 갇혀 모처럼 쉬다


    그렇게 맥 놓고 쉬는데,

    또 난분분 난분분 뜨는

    창밖의 잔눈송이들 보며

    詩情에 드니 모처럼 시다


    오늘따라 낭비를 즐기시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

    흰 눈썹을 낭비하고,

    흰 섬광의 시를 낭비하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


    내리는 족족 쌓이는 족족 공손히 받아 모시는

    겨울나무들처럼


    나 두 팔 벌려 하느님의 격정을 받아 모신다

    받아 모시니,


    시다!

 

고진하의 시집으로는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1990 민음사), <프란체스코의 새들>(1993 문학과지성사), <우주배꼽>(1997 세계사), <얼음수도원>(2001 민음사), <수탉>(2005 민음사) 등이 있으며 이번에 6년 만에 시집 <거룩한 낭비>를 펴냈다. 산문집으로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목사 고진하의 몸 이야기>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_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1997)과 강원작가상(2003)을 수상하였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 기슭 집 마당에 선 고진하ㆍ권기화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