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라라와복래 2011. 5. 26. 07:50
 

 

스님은 사춘기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이슬

2011-04-20


“이노무 자슥 봐라. 니 와 그리 빤히 쳐다보노? 우째 왔노?”(성철)

“무명번뇌를 자를 보검을 구하러 왔습니다.”(명진)

“야 임마, 너 그리 말하는 거 어서 배웠노? 어린 노무 자슥이 벌써부터. 니 몇 살이고?”(성철)

 

명진 스님이 40여 년간 법주사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등에서 좌충우돌하며 수행한 사연을 이야기하듯 들려주네요. 악동 같은 기행과 알쏭달쏭한 선문답 등 선승(禪僧)들의 내밀한 세계가 속속들이 드러나는데요, 직설과 촌철살인, 해학과 풍자가 곳곳에서 번득입니다. "존재에 대한 가장 순수한 물음은 못되고 엉뚱한 짓만 하는 사춘기 때 온다. 나는 영원히 사춘기로 살고 싶다"는 명진 스님. ‘스님은 사춘기’란 책 제목도 직접 지었다고 하더군요.


책 속으로

[이야기 하나_ 요약]

“소머리 하나에 얼마요? 그거 안 보이게 잘 좀 싸 주시오.” 안동 봉정사의 한 도반이 간염에 영양실조에 걸리자 시장에서 스님이 피 흐르는 소머리를 샀것다. 포교당의 주지스님이 “그래도 어떻게 절에서 소머리를 삶는단 말이오?” 항의하자 명진 스님의 대꾸 “그럼 스님의 머리를 삶을까요?”


[이야기 둘_ 요약]

한용운 스님의 제자 춘성 스님 다비식에서 천여 명의 스님들이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하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연신 불렀다. 그러자 명진 스님은 “거 춘성 스님께서 극락 지옥 그거 못 찾아갈까봐 지장보살을 염불합니까? 지금부터 전국 본사 수좌대항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나그네 설움’을 불러 다비식장을 순식간에 잔치판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 속의 명진 스님이 마냥 유쾌 통쾌 상쾌 좌충우돌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밑바닥에는 구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수행자의 고뇌가 배어 있고, 한국 선불교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도 들어 있습니다.


“선방에 점잖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도 마음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그건 정진하는 게 아니라 망상을 피우고 있는 것일 뿐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의 운영도 수행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천도재나 제사가 기본이 되는 ‘제사종’, 관람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관람료종’, 입시기도 위주의 ‘입시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다음 이치와 같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삿됨을 깨뜨리고 바름을 드러내라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말씀하셨다. 잘못된 것에 대한 꾸짖음이 사회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유마 거사도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했다. (...) 세상을 등지고 홀로 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듯 혼탁한 현실 속에서 참되고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


그는 불교를 통해 복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라고 충고합니다.


“병을 낫게 해달라, 좋은 학교에 붙게 해달라, 취직을 하고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부처님께 빈다. (...)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복은 누군가에 빌고 구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마음에서 힘을 빼라”

참선 공부도 사실은 마음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마음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분별심을 비우는 것을 말한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고정관념, 우리가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그리고 우리가 길들여져 있던 습관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분별심은 왜 생기는가? 무엇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는 걸 버리는 게 분별심을 비우는 것이고 그게 바로 마음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아는가? 모른다. 그러니 그 알 수 없는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 보라. 묻고 또 묻다 보면 자연히 힘이 빠진다. 내가 ‘안다’는 생각이 모두 비워지면 자연스레 ‘모름’ 하나만 오롯이 남아 있게 된다.


그렇게 모든 앎이 끊어지고 완전히 힘이 빠진 자리, 그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지혜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래서 구름이 흩어지면 둥근 달이 저절로 나타난다고 했다. 달을 따로 찾을 게 없다. 구름만 벗겨내면 된다. 턱 놓아버리면 본래 그 자리이다.


명진 스님_ 1950년 충청남도 당진 출생. 6살에 어머니가 자살하고 19살에 출가.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선방에서 40안거를 났다. 2006년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되자 천 일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고 매일 천 배씩 절을 하며 수행기풍을 바로 세웠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 불전함 열쇠까지 신도들에게 맡겼으며, 일요일마다 법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에게 불교가 무엇인지를 간곡히 설하였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늘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대상이 누구이든 호호탕탕 소신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비난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지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운 ‘자유인’이다. 현재 충북 월악산에 있는 보광암에 머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