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중국 첫 노벨문학상 작가 가오싱젠 만난 불문학자 이인성

라라와복래 2011. 5. 30. 09:33
 

 

 

중국 첫 노벨문학상 작가 가오싱젠 만난 불문학자 이인성

“세계는 심각한 사상의 위기… 문예부흥은 지식인들 임무”


문학의 소외가 가속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치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문학과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계적 경제위기의 뒤에 도사린 사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예술적 대응은 어떻게 가능할까.


중국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한, 해서 또다른 ‘경계인’의 위치를 지닌 작가 가오싱젠에게 두어지는 질문이다. 2000년 중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2011 서울국제문학포럼’(24~26일)에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미술가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해온 가오싱젠은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 중 지식인 재교육인 ‘하방’을 겪었으며,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정면 비판해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문학에 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간섭과 함께 시장중심적 경제 질서를 견제하면서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와 작가 내면의 독립적 사고를 중시하는 문학론을 펼친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부터 한국의 초청을 받아오다 10년 만에 방한한 가오싱젠과 소설가이자 불문학자인 이인성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 26일 대담했다.

 

가오싱젠(오른쪽)과 이인성씨는 소설가이자 불문학자, 연극이론가란 점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지난 26일 가오싱젠을 만난 이씨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자신의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선물했다.


이인성=선생님이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행한 ‘이데올로기와 문학’이라는 강연을 통해 행간에 감춰졌지만 고통스럽게 겪어온 개인사를 느꼈고, 거기서 우러나온 문학에 대한 소중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학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성 중심적인 철학과도 구별되는, 고유한 심미적 감각이나 정감에 호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신념은 선생님의 실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요. 문학의 자유를 찾아 망명을 선택하면서 글쓰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가오싱젠=처음부터 망명을 하고자 한 건 아니었습니다. 파리에 머물고 있을 때 톈안먼 사태가 발발했고, 언론을 통해 중국 당국을 질책한 것이 못 돌아간 이유가 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제 작품이 모두 금지되고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82년부터 소설 <영혼의 산>을 쓰기 시작했는데 파리에서 완성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에 작품 자체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원래 길게 완성할 계획이었던 것을 톈안먼 사태 이후 한 달 만에 끝냈습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환경에 접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두 달 뒤 망명을 상징하는 <도망>이란 작품을 발표했고, 그 다음부터는 서구에서의 새로운 삶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인성=선생님의 작품은 현대적인 삶의 양상을 심도 있게 관찰하고 모순과 위기를 진단하는 한편 그런 진단에 대한 치유의 길을 구도자적인 자세로 찾아나선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와 관련해서 초월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초월이란 기독교처럼 인간 존재 바깥으로 나가는 초월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 숨겨진 본연의 인간성, 원초적 생명력을 되찾음으로써 얻어지는 초월처럼 여겨지거든요. 작품에서 ‘오염된 환경을 떠나서 진정한 삶을 찾아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구절이 나오고, 산속의 야생 진달래를 묘사하면서 순수한 상태인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순수한 자연으로의 회귀가 현대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가오싱젠=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나 고민은 정치에서 비롯됩니다. 또 시장경제가 우리 생활 곳곳을 간섭합니다. 본성으로 돌아가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치나 경제의 지배를 탈피해야 자아본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는 개인에게 내면과의 싸움이라는 괴로움을 가져다줍니다. 현대인은 자아의 무한한 팽창으로 인해 오히려 세계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인성=정치와 경제를 탈피하는 개인적 자각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문학이나 예술은 거기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가오싱젠=기본적으로 문학과 예술은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 보다 정확하고 냉정한 각도에서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즉 사회적인 트렌드, 흐름,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한 관점으로 자아의 독립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인성=작가가 마음속의 깊은 울림을 토해낼 때 진정한 문학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인데요. 그런 울림과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독자와 공명할 때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생님께서 지적했듯이 시장중심적인 경제·사회 질서가 작가나 작품과 독자의 진정한 만남을 방해하고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가오싱젠=사실 이 문제는 저희가 다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장경제가 잘못됐다고 질책할 수 없고, 시장이 가진 객관적 법칙을 작가가 좌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시대 조류에 맞는 작품을 쓰기를 선택한다면 작품의 가치는 좀 떨어질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외부 압력을 이겨내면서 본인이 쓰고 싶은 걸 쓴다면 작가로서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인성=문학 못지않게 극작가와 연출가로서 연극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야인>(1985년작)이란 희곡의 끝부분에서 아이와 원시인의 마음이 서로 통하면서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 환상적인 축제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보여주는 세계는 공감하겠는데, 제가 답답한 것은 현대사회의 구조가 그런 축제적인 어떤 것을 폐쇄회로 속에 가두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 작품을 실제 공연하면서 극장에서 관중들과 소통하는 체험을 한 것이 있습니까.


가오싱젠=이 작품에서 아이와 원시인의 춤은 아이의 꿈, 즉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아름답고 생태적인 환경은 꿈에서만 가능해졌다는 현실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을 공연했을 때 동료작가의 10살 난 딸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느냐’는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반응이 매우 소중하고 기뻤습니다. 이 작품은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 독일에서 가장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인성=선생님은 사조로서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비판적이지만 새로운 언어체계를 창조하는 실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런 문학적 실험은 동서양의 소통과 상호 영향, 대혼합을 지향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실험정신을 실제 창작에서는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가오싱젠=예술활동에서 미학 창조를 늘 강조해왔습니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지나간 사조입니다. 이 사조를 도그마로 수용하는 대신, 신선한 표현 방식을 통해 창조적인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움을 위해 새로움을 창조하자는 건 아닙니다. 참신한 느낌에 맞는 형식을 찾아내 완성해야 합니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하느님께서 이런 언어를 선사해주셨다.’ 이는 창작을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과 노고를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느끼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새로운 언어체계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인성=앞서 행한 강연에서 문예부흥이 재현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예부흥이란 무엇이고, 그 우연은 언제 올 수 있을까요.


가오싱젠=서구에 살면서 문화와 사회 전체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경제적 위기의 이면에서 심각한 사상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 15~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은 유럽의 현대화를 이끌었고 전 세계의 현대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위기,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사상의 위기를 극복하는 문예부흥은 유럽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글로벌한 문예부흥의 시대를 기대하는 건 정치적 요소를 초월한, 전 세계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이 위기를 직시하고 자신의 사상을 토대로 신선한 사상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가들은 현실의 이익을 다루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초월한 작가들이 독립적 사고와 장기적인 시야를 통해 미래 인류의 생존가치를 인식하고 가치를 창조해야겠지요.


이인성=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중국의 자유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국력이 커지면서 주변국 입장에서는 중화중심주의가 부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장이머우 감독 같은 경우 출발은 문화대혁명을 비판하고 원초적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점점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지고 중국의 힘을 과시하는 듯한 퍼포먼스가 보입니다. 중국을 떠난 망명자의 눈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십니까.


가오싱젠=중국은 빠른 경제성장 속에서 많은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가 부족하고 중화중심주의를 벗어난 개방된 자세도 부족합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부활하는 중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지식인들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가는 권력 차원에서 암암리에 서로 다른 형태로 민족주의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국익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문화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위험한 요소입니다. 민족주의는 전쟁을 발발하고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붕괴된 자리에서 다양한 민족주의가 부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모습입니다.


가오싱젠 1940년 중국 장시성 간저우에서 태어나 베이징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 국영 중국재건발행에서 프랑스 출판물 번역가로 일하던 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10년의 재교육 처분을 받았다. 78년부터 단편·에세이·희곡을 발표했으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정면 도전하는 <현대소설기교초탐>으로 반체제 인사로 지목됐다. 86년 희곡 <피안>이 판매금지 조치된 뒤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 출간·상연되지 못했다. 87년 독일을 거쳐 파리에 체류했으며 톈안먼 사건 이후 망명했다. 날카로운 통찰, 언어적 독창성으로 가득 찼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 <영혼의 산>과 희곡의 새로운 길을 연 공로로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인성 1953년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80년 계간 ‘문학과지성’ 봄호에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 <한없이 낮은 숨결> <강 어귀에 섬 하나>, 장편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통해 실험적인 문체와 독창적 의식세계를 형상화했다. <연극의 이론> 등 연극 관련 이론서를 내기도 했다.

 

 

 

 

 

 

원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29211636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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