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트 파이페 지음
송소민 옮김
서해문집 펴냄 2009.08.26
독일의 성실한 조경사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인 쿠르트 파이페는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치료도 불가능한 상태라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이었다. 쿠르트는 그러나 병원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독일의 쿠퍼뮐레부터 이탈리아 로마까지 3천350킬로미터를 홀로 걷는 대장정에 돌입하기로 한다.
나를 치유한 걷기 여행, 내적 평온을 만나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64세 되던 해에 받은 대장암 말기 판정. 그리고 6개월 시한부 삶. 아내의 만류도 뿌리친 채, 홀로 길을 떠났다. 가족에게 짐이 되어 죽는 날만 기다릴 순 없었다. 방금 수술을 하고 인공항문까지 찬 병약한 그가 3000㎞의 걷기 여행에 나섰다.
여행은 우리의 아집과 자존심을 녹인다. 길을 걷다 문득 눈물을 흘려본 이들은, 압도하는 자연의 힘에 경악해본 이들은 안다. 그때의 희열이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 시작하기만 하면 예감하지 못했던 내면의 능력이 깨어나, 당신의 삶과 생각을 바꿔놓을 것이다.
내 삶의 말년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좀 더 평화로운 노년을 꿈꾸었으나, 육체를 갉아먹는 병마에 시달릴 터. 의사가 냉정하게 내 삶의 남은 ‘유통기간’을 알려주리라. 그때 삶에 대한 미련으로 절대자를 원망하며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추억과 사랑과 상처와 마음의 짐이 있었겠는가. 곱씹어보고 떠올려보고 흘려보내야 한다. 화해하고 용서하고 후회하고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 자리, 이제 육체를 영원히 감금시킬 이 땅을 두루 밟아보기로 한다. 주변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기로 한다. 앉아서 운명을 받아들이느니, 걸으며 성찰하기로 해서다.
기왕이면 그 여행이 홀로 떠나는 것이 아니길 꿈꾸어본다. 구간마다 한때를 공유했던 이들과 보내고 싶다. 과거를 함께 한다는 것만큼이나 진한 동지의식을 느끼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숫기가 없어 입에 올리지 못한 감사의 말을 후회 없이 하고 싶다. 당신 덕에 기쁘고 즐거웠노라고. 지나는 길에 오랫동안 연락 끊긴 이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우연이었지만 필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연에 감사하며, 뿌리내리고 사는 이의 굳건함과 건강함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가족과도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아내와 걸으며 한평생 살아오며 겪었던 일을 회상하리라. 만사 까칠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 황혼기를 맞이한 남자의 너그럽고 넉넉한 인생관을 너스레 삼아 들려주고 싶다.
이제는 중년으로 접어든 딸과도 걷고 싶다. 아비가 걸어온 삶의 길이 자식이 가야 할 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고, 더 큰 꿈을 이루는 데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느덧 청년이 된 손자가 있다면, 분명히 나와 같이 길을 걸으리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웃의 고통에 눈 감지 말라고 말해주어야지.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말고 내면에서 솟아오른 진정한 목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고 간곡히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그럴 수만 있다면 통일된 이 나라의 정기가 담긴 산까지 이르고 싶다. 여기에 이를 수 있도록 허락한 운명에 감사하고 싶다. 거기서 강렬하게 깨달으리라. 내가 홀로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음을. 그 어느 곳에서 발원한 작은 샘물이 거친 강물을 이루고, 그것들이 서로 몸을 섞어 대양으로 흘러갔듯, 이 땅에 뿌리내리고 역사를 일궈낸 선배들이 있었기에 내 삶이 가능했음을. 그리고 그곳을 걷다 숨을 거둘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도 잠시 쉬려다 부름을 받아 무거운 육체를 훌훌 털어버리리라. 바라자면, 바람에 거죽들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늘을 떠받치는 저 거대한 나무를 감싸고 불어오는 우주의 입김이 내 삶에 묻은 열정과 욕망을 다 발라내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을 듯싶어서다.
뜬금없이 내 말년의 소망을 그려볼 수 있었던 것은 쿠르트 파이페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송소민 옮김·서해문집) 덕이다.
조경사로 58년 동안 일했다. 성실과 근면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64세 되던 해에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말했다. “6개월 남았습니다”라고. 수술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간 이승에 남아 있을 시간을 벌어주기는 할 터다. 그러나 병을 근본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았다. “차라리 반년이나 일 년 일찍 죽고, 남은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쓰는 게 나으리라”고. 은퇴하면 아내와 하고 싶었던 일을 감행하기로 했다. 유럽 장거리 걷기 여행.
1969년 유럽 국가 사이의 이해를 돈독히 하기 위해 유럽걷기여행협회가 발족하고, 노르트카프에서 시칠리아까지 길을 내기로 했단다. 그런데 아쉽게도 스웨덴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만 열렸다. 기실, 일반인들은 야콥스벡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터라 너무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었다. “혼자 있고 싶었고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고” 싶은 이에게는 덜 알려진 길이 안성맞춤이었다.
마음먹었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독일의 쿠퍼뮐레에서 이탈리아의 로마에 이르는 길이었다. 나중에 따져보니 166일에 걸쳐 3350㎞를 걸었다.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몸 상태는 만신창이였다. 반대가 없을 리 없었다. 자신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수술을 했는데! 지금 내 상태에서! 게다가 인공항문 기구까지 차고 있는 마당에! 여행 경비는 또 어떻고! 그 밖에 많은 일들은! 그것도 혼자서!”
그럼에도 떠나기로 했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돼 아무 할 일 없이 죽는 날만 기다릴 순 없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부재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이른 시일 안에 아내 곁을 영원히 떠나야 할 운명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부재를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자신도 몰랐다. 여행이 순례가 될 줄은. 위로 받고 격려 받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다른 이를 위안하게 될 줄은. 더욱이 자연과 우주와 하나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줄은 몰랐다. 그저 천천히 걸었고, 길을 찾아 헤맸을 따름이며, 아름다운 풍광에 경탄했을 뿐이다.
걸으며 그는 자신의 삶이 길 위에서 시작됐음을 환기했다. 1945년 1월, 전쟁이 나고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다. 러시아 군대가 동쪽에서 밀고 들어오는지라 피란을 떠나야 했다. 서둘러야 했다. 군대부터 퇴각하느라 피란 행렬이 늦게 시작됐다. 세 살 때 “짧은 다리로 스스로 걸어 전쟁에서 도망쳤다.” 아버지는 감옥에 갇혀 있던지라 22세의 어머니와 함께였다. 자신의 삶은 도망에서 시작한 듯싶었다. 지금도 도망가고 있는 것일까? 죽음에서,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났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잠자리에 드는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신 말이 있었다. “걱정 말고, 살아라.” 그 말을 바꾸었다. “걱정 말고, 걸어라”라고. 아마도 놀라운 마술이 벌어졌을 터다. 그가 떠난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시작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늙은 몸에 돈은 없고 병까지 든 이가 하는 여행이라 청승맞은 일이 자주 벌어진다.
자주 무릎은 욱신거리고, 인공항문은 속 썩이고, 텐트 칠 자리를 찾느라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여행은 유쾌하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상은, 언론이 보도하는 것만큼 살벌하거나 타락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에 놓이고 모험에 나선 이를 도울 만큼 충분히 이타적이었다. 땅을 침대보 삼고, 하늘을 천장 삼으며 떠난 여행이었으니 가능한 깨달음도 얻었다.
“이날 밤, 나는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전 우주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생물과 물질세계의 한 부분이다. 나는 광활한 하늘 아래에 있으면서 집에서처럼 편안했고, 이 순간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숭고함 때문인지 어느 결에 흐르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난 후, 이날 밤이 여행의 진정한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시점부터 나는 그저 마냥 기능하며 돌아가던 사람에서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체험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단순한 명료함 속에서 비밀스러운 베일을 벗은 삶의 진정한 모습을 짐작하게 되었다.”
주마간산 격으로 여행 다니는 이들은 절대 경험하지 못할 감상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을 담보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어떤 대가를 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존재를 걸고 하는 일에는 영적 깨달음의 순간이 오는 법이다. 길을 걷다 문득 눈물을 흘려본 이들은 안다. 압도하는 자연의 힘에 경악을 금치 못한 이들은 안다. 그때 느꼈던 희열이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바뀐다. 산전, 수전 두루 겪는 여행을 하며 “낙관, 희망, 미소, 흥미로운 인상, 인간적으로 깊은 만남”의 기회를 잡는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그는 처음에는 물병을 채워주거나 먹을거리를 주거나 잘 곳을 마련해주면 거절하거나 돈으로 갚으려 했다. “누가 나에게 뭔가를 주면 나도 반드시 뭔가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친절과 배려는 다른 무엇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의를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쁨을 앗는 일이었다.
여행은 녹인다, 우리의 아집과 자존심을.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는 것도 경험한다.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 편견이나 선입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흥미를 보이며 마음을 열고, 긍정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로마에 도착하는 순간, 읽는 나도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읽어본 여행기 가운데 가장 병약한 이가 떠난 여행이었다. 한 신문에 소개되며 그는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그 덕에 이 여행기를 펴내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자만하거나 교만해진 그를 볼 수는 없었다. 여행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단련시키나니, 그까짓 유명세에 들뜰 리 없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더 악화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졌다. 책 제목대로 천천히 걸었더니, 그 끝에 치유와 희망이라는 선물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대장정을 마친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음처럼 말해준다.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란,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이다. 비록 당신의 소원이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턱없이 미친 짓으로 보인다 해도 상관없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당신 내면에 있는 예감하지 못했던 능력이 깨어난다. 굉장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당신을 사로잡으며, 당신의 삶과 병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다. 당황스러운 모든 일도 자신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써 최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야 큰 충족감과 깊은 내적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시달리고 사람에게 치인 이들이라면, 당장 봇짐 싸고 여행에 나서야 한다. 길에 돈을 까는 여행이 아니라, 땀과 눈물을 뿌리는 여행이어야 할 터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리라. 삶이란 “빵에 붙어 있는 맛있는 건포도만 쏙 빼서 먹을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을. “사람은 고통을 통해 강해지고 진실”하게 된다는 것을.
원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27185919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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