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그림으로 읽는 철학] 모네의 '수련 연못'

라라와복래 2011. 7. 29. 09:10
 

 

 

[그림으로 읽는 철학]

모네의 ‘수련 연못’

우주가 깃든 한 송이 꽃, 수련

이주향 | 수원대 교수ㆍ철학

 

‘수련 연못’

1899년, 88×9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처음 연꽃을 보고 놀란 곳은 실상사에서였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시들어 꽃 피는 시기가 막 지났구나, 하며 아쉬워했는데, 다음날 아침 찬란히 피어나는 연꽃을 보았습니다. 연꽃이 햇살에 반응하며 살아나는 거였습니다. 소르르 소름이 돋았습니다. 꽃의 매혹! 그 무덥던 날, 얼마나 오랫동안 망연히 연못을 바라봤을까요. 폴짝거리며 연잎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구리는 물수제비를 만들고, 바람이 불면 물결이 생기는데, 눈부신 햇살은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맑고 투명하고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그 세상에 여왕처럼 도도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햇살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연못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꽃은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낸 후 꺾어도 되는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생리를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구나, 하고.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모네에게는 수련이 있습니다. 수련은 모네의 사랑이었습니다. 중년부터 이어진 평생의 사랑. 말년에 녹내장에 걸려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황색과 붉은색 없이 온통 블루인 말년의 그림들이 그의 병의 증거라고, 그 병에 걸리면 사물이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하지만, 그때 모네의 수련은 경계와 경계를 지우면서 훨씬 몽환적이고 훨씬 차분해지며 훨씬 신비해집니다. 그러니 의사들의 시각에서 병인 것이 쟁이의 시각에선 그것은 인생, 그것은 구도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녹내장 이후의 그림들을 더 좋아합니다.


저 그림, 좋지요? 참 좋습니다. 연못이 온통 생명 있는 것들로 꽉 차 있고 물밖에도 나무들이 무성한 것이 한여름입니다. 빛의 화가 모네는 빛 속에서 사물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즐겨 그렸다지요? 사실 본래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관념과 편견이 덧칠된 것인 경우가 대부분 아니겠습니까? 모네를 따라 연못가에 앉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풀잎은 푸르지만은 않고 연꽃은 희지만은 않다는 것을. 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존재하는 것들의 놀이가 달라지며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림 속의 저 일본식 다리는 모네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꽃을 심고,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집을 사랑하고 뜰을 사랑해서 돈만 생기면 정원을 넓히고 가꿨습니다. 처음에는 그림까지 그릴 생각은 아니었다지요?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아름다운 것에 압도당한 화가가 어찌 자기가 본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물과 반사광이 어우러진 연못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렇게 쓰고 있는 그는 마침내 자신이 본 아름다움을, 수련 연못을, 수련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수련이 왜 수련인지 아십니까? 물위의 꽃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수련(睡蓮)의 수는 잠잘 수(睡)입니다. 수련은 태양빛이 아주아주 강렬해야만 물속에서 천천히 도도하게 올라와 화사하게 피어나다가 빛이 조금이라도 시들해지면 물속으로 돌아가 잠들어버립니다. 재밌지 않나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는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차라리 고독 속에 침잠하면서 내공을 기르라고, 그것이 준엄한 생명의 법칙이라고 선포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모네는 수련을 모두 지베르니에서 그렸습니다. 지베르니는 원래부터 인연 있었던 터가 아니라 여행 중에 모네가 찾은 곳이었습니다. 1840년생인 모네는 1879년,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를 잃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생의 한 매듭을 짓게 되는 불혹의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소중한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모네는 기차여행을 하다 마음이 머무는 곳을 보았습니다. 그곳이 지베르니였지요. 모네는 지베르니가 아주 좋았나 봅니다. “지베르니는 정말 찬란한 곳입니다.” 마음이 동하는 곳에서 살림을 꾸리다 보면 장소가 내게 힘을 주고 있음을 느끼지 않나요? 43세의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사하고, 거기서 또 43년을 살다 그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저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햇살과 물이 만나 반짝이고 물결과 바람이 만나 일렁이는 세계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연꽃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햇살과 물과 바람 없이 연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한 송이 꽃 속에는 우주가 들었고, 우주는 한 송이 꽃, 세계일화(世界一花)입니다.

[이하 라라와복래] 모네의 수련 연작 몇 점을 더 감상합니다. 모네는 1908년 이후 수련 그리기에만 몰두하여서 모두 3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고 40점이 대작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위 그림과 같이 일본식 다리가 있는 수련 연못 그림은 모두 7점입니다. 모네는 꿈의 정원인 지베르니에서 제작한 수련 연작에 ‘넹페아’(Nymphea)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수련을 프랑스어로 ‘넹페아’라 하고 이는 ‘님프’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신화적 어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라는 미소년을 데리고 다녔는데, 미시아라는 곳에서 헤라클레스의 심부름으로 물을 길러 간 그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게 되죠. 힐라스가 연못에 이르렀을 때 그의 모습에 반한 님프들이 그를 연못 속으로 유혹해 끌고 갔던 것. 모네 역시 힐라스처럼 님프들에게 이끌려 그 연못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일까요.


The Waterlily Pond(Green Harmony), 1899, Oil on Canvas, 89.5x100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내가 심은 수련이지만 그 수련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저 보고 즐기려고 수련을 심었던 것이다. 그걸 그리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없었다. 하나의 풍경이 하루 만에 우리에게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법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연못의 신비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팔레트를 찾았다. 그 이후 이날까지 나는 다른 모델일랑 거의 그려 본 적이 없다.”


 Water-Lilies(Nympheas), 1904, Oil on canvas, 90x92cm, Private collection

 

“엡트 강에는 내 소유지의 경계에 있는 기소르로 내려오는 흐름이 있었다. 나는 내 정원에 파둔 작은 연못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수로를 열었다. 나는 물을 사랑하지만 또한 꽃도 사랑한다. 그래서 연못이 채워졌을 때 나는 식물로 그것을 장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카탈로그를 가지고 와서 아무것이나 골랐다. 그것이 전부다.”


Water-Lilies(Nympheas), 1905, Oil on canvas, 81x100cm,

National Museum of Wales, Cardiff Great Britain

 

“인상은 계절이 변할 때뿐만 아니라 매분마다 끊임없이 바뀌었다. 수련은 그 경관에서 유일하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실 그것은 단지 딸려온 것이었다.”


 Water-Lilies (Nympheas), 1906, Oil on canvas, 90x93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llinois, USA

 

“주제의 요점은 물의 거울이다. 경관이 그것에 반사되는 하늘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생명과 움직임을 불어넣는다.”


Water-Lilies (Nympheas), 1908, Oil on canvas, 92x81cm, Private collection

 

“이 경치와 물에 비친 그림자는 나를 사로잡는다. 그들은 내가 느낀 것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나는 어느 정도 파괴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많은 노력으로부터 마침내 무언가 나올 것이라고 희망한다.”


Water-Lilies (Nympheas), 1908, Oil on canvas, 92x89cm, Private collection

 

“나는 나의 수련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들을 기쁨을 위해 심었다. 나는 그들을 그릴 생각은 하지 않고 길렀다. 풍경은 언젠가 그 존재에 스며들지 않는다.”  [인용 출처_'Claude Monet Life and Art']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