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자유와 저항의 시인' 김수영

라라와복래 2009. 6. 16. 23:04

‘자유와 저항의 시인’

김수영

(1921-1968)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오랜만에 김수영을 꺼내들었습니다. 처처시시 난국에 시절이 하수상하니 왠지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서일까요. 마침 오늘, 6월16일은 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날입니다. 1968년 6월 15일, 김수영은 시인 신동문, 늦깎이로 데뷔한 소설가 이병주, 한국일보 기자 정달영 등과 함께 1차 소주, 2차 맥주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는 이병주가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비웃듯 뿌리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 서강 버스 종점에서 내립니다. 인적 없는 어두운 길을 비틀비틀 걸어가던 그를 인도로 돌진한 버스가 뒤에서 들이받고 맙니다. 밤 11시 반경. 급히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을 거둡니다. 4ㆍ19혁명을 노래한 시 중에서 가장 절창인 시 ‘푸른 하늘을’(1960.6.15 발표)에서처럼, 시인은 그렇게 거친 시대에 거친 언어로 부침 많던 한세상을 고단하게 살다 갔습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은 죽은 뒤에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유명해졌으며,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현대시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2008년에는 40세 이하 젊은 시인 40명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오마주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이여>를 발간하고 40주기 기념문학제를 열었습니다. 올해 2009년에는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354면의 <육필시고 전집>이 발간되었습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입니다. 시인 최두석(한신대)은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 가운데 김수영만큼 주목을 받은 이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합니다. 유작으로 발표된 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입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후대 연구자나 창작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난닝구’ 차림의 김수영. 턱을 괴고 앉아 퀭한 눈으로 시인은 무엇을 응시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70년대 한국문학을 주름잡은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등 삼두체제에 의하여 한글세대 최고의 문인으로 만신전에 모셔진 지 오래되었다. 김수영의 현실 참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창비, 언어적 상상으로 새 꿈을 꾸고자 한 바를 승계한 문지, 유토피아에 대한 초월의 욕망을 특히 주목한 민음. 이 세 갈래는 그의 문학이 ‘현실 참여와 유토피아에 초월의 욕망’이라는, 지난 7, 80년대 문학의 화두를 온전히 함유하고 있는 젖줄이 되도록 했다.”

(오마이뉴스 편집위원 정윤수)

 

내가 김수영과 만난 것은 타계한 해인 1968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 가을호인가에 실린 ‘풀’을 포함한 유작시를 읽으면서부터입니다. 소년학생이 시에 대해 뭘 알았겠습니까마는 유작시라 해서 먼저 호기심이 일었을 터이고 단박에 시에 빨려든 나는 급우 이인성과 함께 시인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공부를 합니다. 그 후 민음사에서 나온 <거대한 뿌리>(1974)를 읽으며 방위 근무 시절의 고단함을 잊곤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시집이 헤져 다시 사야만 했을 정도로 끼고 살았죠. 이 시집만큼 나의 사랑을 받은 책은 없습니다.


그럼 시 몇 편을 감상하겠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리고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가 ‘풀’이지만 가장 김수영다운 시는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문학춘추, 1965)가 아닐까 합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려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夜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미술계에서 화가 이중섭의 눈이 유명하듯, 문학계에서는 시인 김수영의 눈이 유명하다.


김수영답다는 게 뭘까요. 자신의 옹졸함마저도 시 안에 들여놓고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이 모습은 김수영다운 모습만이 아니고, 바로 나의 모습이며,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시인이 무슨 투사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게 아니라, 설렁탕집에서의 옹졸한 소시민으로 비춰집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나 꼭 나 자신과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김수영은 불온(不穩)의 시인이며 반시(反詩)의 시인입니다. 김수영의 영혼은 늘 자유를 향해 목말라 있었으며, 관습과 타성을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이건 참여시인이건 간에 그 중심에는 항상 ‘자유와 저항’의 정신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시는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며, 가슴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유명한 선언을 합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식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1968,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나는 아직 앉는 법을 모른다 (...)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한 ‘거대한 뿌리’,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하는 ‘그 방을 생각하며’,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는 ‘사랑의 변주곡,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 말을 안 믿는다 (...)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는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다는 것이다”라고 진술하는 ‘파밭 가에서’,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라고 하는 ‘장시(長詩)1’,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절망’ 등 많은 절창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서정적 느낌이 짙은 ‘말’이나 ‘꽃잎’ 연작시와 같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꽃잎(一)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 같고

<1967. 5. 2>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1967. 5. 7>

 

지난해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김수영 시인이 남긴 미발표 육필 원고가 몇 편 공개되었는데. 그 중 ‘김일성만세’라는 시가 장안의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4·19가 있던 1960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자유문학>에 ‘잠고대’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발표하려다 좌절되었다가 이번에 부인 김현경 여사에 의해 공개된 것입니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 소개합니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이 한국 사회의 이념 강박증을 꼬집은 날카로운 대목인데,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이념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일종의 풍자시"라고 언급했습니다. 공감할 만한 해석입니다.

 

 도봉산 기슭의 김수영 시비(사진 김영남)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선린상고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에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그 무렵에 학도병 징집이 있어 이를 피하여 귀국했다가 만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때 귀국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8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가까운 문우이자 애증이 교차한 친구인 시인 박인환은 김수영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인환이 경영하는 고서점 ‘마리서사’에서 김기림, 김광균 등과 만나면서 50년대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지게 된다. 명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50년대 문학사에서 김수영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30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후에는 전형적인 문필업자가 되어 시 창작, 번역, 산문 기고 등에 전념했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표했다.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한 이후에 간행된 것이다. 1981년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발간되었고, 올해 5월29일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이 출간되었다.


 

 

 

 

거대한 뿌리 l 김수영 지음 l 민음사 l 1995년 11월1일 초판 발행


온 사력을 다해 '자유'를 노래하고 옹호했던, 보다 정확하게는 '민주주의'를 현실화하고자 시로써 항거했던 김수영의 시선집이다.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비겁한 자신을 질책한 시편 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싸우고자 입을 악무는 시인이 있다. 무엇과 싸울 텐가, 무엇을 지킬 텐가, 왜 싸워야 하는가는 너무나 명확하다. 문제는 어떻게 '적'을 넘어뜨릴 것인가일 뿐. 때로 적과 대적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연민과 탄식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시종일관 이 대결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김수영 시의 생명은 이러한 긴장에 있다. 스스로 안일에 빠지지 않으려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인하는 냉철함 또는 결의. 시대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폭포', '눈', '풀' 등의 시편을 비롯해 시인의 일상에서 시상을 취한 35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김수영 전집 1. 시 2. 산문 | 김수영 지음 | 민음사 l 2003년 6월25일 개정판 발행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학 속의 가장 벅찬 젊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과 같은 초현실주의적 환희의 비전에 낭만주의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그의 젊음을 얘기하는 것은 그가 낭만주의자였다고 시사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준열하고 우상파괴적이며 가장 유연한 시적 양심이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30대에 맞은 김소월의 죽음보다도 40대 후반에 당한 김수영의 그것이 더욱 요절로 느끼게 하는 것은 거푸 태어날 수 있었던 그의 젊음 때문이다. 그 점 김수영은 탕진됨을 모르는 가능성이자 안타까운 미완성이다.

― 유종호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다. 그것은 그의 초기 시편에서부터 그가 죽기 직전에 발표한 시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끈질긴 탐구 대상을 이룬다. 그는 엘뤼아르처럼 자유 그것 자체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시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 김현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l 김수영 지음 l 이영준 엮음 l 민음사 l 2009년 5월29일 초판 발핼


현대 한국문학사의 ‘거대한 뿌리’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영인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이 민음사에서 최근 출간되었다. 민음사에서는 그간 두 차례에 걸쳐(1981, 2003) <김수영 전집>(시 177편 수록)을 발행한 바 있으나, 이번 책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은 기존의 원고뿐 아니라 초고에서 시상 메모까지 현존하는 354편의 육필 시 원고를 모두 담은 새로운 정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시인의 육체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원고지를 통해 시의 수정과 가필, 행갈이의 조정 과정 등 착상에서부터 최종 발표본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김수영 시인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시인 중 하나이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김수영 연구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영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이 엮은 이 책은 김수영 시인 연구의 초석이 될 방대한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좀 더 폭넓은 연구의 가능성을 열었다. (사족: 자료를 겸해서인지 책값이 엄청나네요. 김수영 시를 읽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김수영 전집> 1, 2권을 추천해 드립니다.)




'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 김진규   (0) 2009.09.19
마지막 기도문  (0) 2009.07.14
젊은 날의 곁 • 황동규  (0) 2009.06.13
긍정적인 밥 • 함민복  (0) 2009.06.13
결혼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0) 200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