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원 - 김기택 직선과 원 김기택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 문학 산책 2015.02.21
혼자 밥 먹다 - 이명수 혼자 밥 먹다 이명수 가을 한철 ‘자발적 유배’ 살이를 했다 추사는 내가 기거하는 고산과 이웃한 대정 귤중옥(橘中屋)에서 9년간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살이를 했다 가시방석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며 추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키이스 페라지의 <혼자 밥 먹지 마라>를 읽으.. 문학 산책 2015.02.13
예언자 - 황인찬 예언자 황인찬 차를 마시고 싶어서 찻잔을 만지려다 연거푸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알아차린 것이다 찻잔이 죽어 버렸다는 것을 눈이 많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고, 두 사람은 충분하다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을 안아 줘야지, 나는 생각했지만 그러다 알.. 문학 산책 2015.02.09
새의 위치 - 김행숙 새의 위치 김행숙 날아오르는 새는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는지,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겨울 코트엔 온통 깃털이 묻고, 공중에서 죽어가는 새는 중력을 거절하지 않네. 우리는 죽은.. 문학 산책 2015.02.04
당신의 날씨 - 김근 당신의 날씨 김근 돌아누운 뒤통수 점점 커다래지는 그늘 그 그늘 안으로 손을 뻗다 뻗다 닿을 수는 전혀 없어 나 또한 돌아누운 적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출 수 없어 나 또한 그만 눈 감은 적 있다 멀리 세월을 에돌아 어디서 차고 매운 바람 냄새 훅 끼쳐올 때 낡은 거울의 먼지 얼룩쯤에.. 문학 산책 2015.01.25
밤, 기차, 그림자 - 김경미 밤, 기차, 그림자 김경미 밤은 무엇을 하는가 기차는 무엇을 하는가 좁은 골목은 무엇을 하는가 물을 건져 올리는 그물 손닿지 않는 바다와 하늘은 무엇을 하는가 사과는 썩고 피부약은 뚜껑 밖으로 흘러넘치고 내의는 뒤집히고 구두는 떠나가고 어둡던 보관창고가 한꺼번에 열려버린 그.. 문학 산책 2015.01.11
먼지의 밀도 - 한용국 먼지의 밀도 한용국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그가 평생 벌어 온 것은 먼지였을 뿐 한낱 먼지들을 모으기 위해서 그의 운동화는 그렇게 낡아 왔다. 그의 운동화 끝에 앉은 표범은 발톱과 근육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기억이란 쓸모없는 것, 어떤 기억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 문학 산책 2015.01.06
세계의 명시/ 도연명 - 복사꽃 마을의 이야기와 시 세계의 명시/ 도연명 복사꽃 마을의 이야기와 시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 지방 사람이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얼마나 멀리 왔는지 잊어버렸다. 홀연 복숭아나무 숲을 만났다. 시내의 양 언덕 수백 보 되는 땅 안에 다른 나무.. 문학 산책 2015.01.01
눈사람 여관 - 이병률 눈사람 여관 이병률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문학 산책 2014.12.27
겨울 금파리에 가야겠네 - 이경교 겨울 금파리에 가야겠네 이경교 금파리에 가야겠네 금파리는 언제나 낯빛 파리하게 질려 있어 마음 헐거워져 몸이 삐걱거리는 날은 금, 금파리가 생각나 임진강 물길은 구불구불 지탱하기 힘겨운 추위에 떠밀리며, 정신만 새파랗게 응고되어 있으리 흔들리며 언 강물 위에 텅 빈 손 적시.. 문학 산책 2014.12.02